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초코쿠키 Dec 09. 2020

16. 먹고 싶은 대로 다 먹으면 된다면서요

하루아침에 해결된다고 말하진 않았다

 폭식증을 벗어나려고 노력하며 유튜브 영상을 많이 찾아봤다. 나와 같은 폭식증을 과거에 겪었던, 혹은 지금도 겪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부터 정신과 의사 선생님의 조언까지 '폭식증', '폭식', '식이장애' 등의 검색 키워드로 보지 않은 영상이 거의 없었다. 대부분의 영상에서 공통적으로 '네가 먹고 싶은 대로 먹어라.'라고 말하고 있었는데 '그래도 되나?'라는 의문과 '정말 먹고 싶은 대로 다 먹으면 지금보다 더 심해질 걸.'이라는 걱정에 차마 시도할 수 없었다. 그렇게 그 조언들을 무시하고 스스로에 대한 규제를 풀지 않은 채 시간이 흘러갔다. 폭식은 말할 것도 없이 계속되었다. 그래서 속는 셈 치고 그 조언을 믿어볼까라는 생각으로 '그래, 그럼 좋아. 먹고 싶은 대로 다 먹어보지 뭐.'라고 결심했다. 결과적으로 억압된 욕구가 충분히 해소되고 음식에 대한 강박으로부터 자유롭기 위해 '먹고 싶은 음식을 다 먹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은 사실이었다. 다만 그때 내가 간과한 것이 하나 있었는데 그들은 결코 '하루아침에 해결된다'라고 말한 적은 없었다는 점이다.


 먹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먹은 첫 번째 날에 나는 생각했다. 이 방법은 아니라고. 폭식하는 것을 '지금 먹고 싶은 것을 먹으며 폭식증을 치료하는 중이야'라고 정당화하는 건 아닐까라는 의구심에 여기서 그만두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2018.4.30. 월


 오늘은 그냥 먹고 싶은 거 다 먹었다. 폭식증을 고치려면 음식에 대한 집착을 없애기 위해서 먹고 싶은 것을 참지 말고 다 먹으면 된다는 말을 듣고 실천했다. 정말 살찌는 것도 이제는 상관이 없었고, 폭식증만 나으면 된다고 생각했으니까. 근데 이 방법 나는 개인적으로 별로인 것 같다. 오늘 먹은 것들은 다음과 같다.


 아침-소고기 장조림, 달걀 등 여러 반찬과 밥 1 공기를 든든히 먹고 참 붕어빵 1봉지도 다 먹었다.

 점심-딸기잼이 맛있어서 식빵 5장을 순식간에 먹었다.

 간식-초코파이 3개랑 막대사탕 1개

 저녁-불닭볶음면 컵라면에 피자치즈를 듬뿍 넣어서 맛있게 먹었다. 참치마요 삼각김밥도 1개 먹었다.

 야식-고구마 말랭이 4 봉지, 견과류 1 봉지, 막대 사탕 4개, 감자칩 1 봉지, 편의점 빵 2 봉지, 아이스크림 2개


 11시가 넘어 늦은 밤에 보이는 대로 먹고 싶은 것을 먹기 시작하자 도저히 멈출 수 없었다. 다 먹고 나니 속이 쓰리고 뜨겁다. 내가 좋아하는 음식이나 자주 먹는 음식들은 거의 설탕과 밀가루로 만든 것들이 대부분이다. 이런 음식들은 혈당을 급격하게 높였다가 낮추고 배부름이나 만족감을 느끼지 못하게 만든다. 먹을수록 더 먹고 싶고 절제하기 힘들다. 먹고 싶은 것을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먹는 것과 평소에 폭식하는 것이 뭐가 다른 거지? 11시 47분. 드디어 먹기를 멈췄다. 내일 아침에도 속이 쓰리겠지. 속상하다. 울긋불긋 벌써 여드름이 오르고 얼굴이 빨개지는 것 같다. 이렇게 자유롭게 먹는 게 맞아?


 일기장을 되짚어보며 '이게 맞아?'라고 묻는 과거의 나에게 지금의 나는 '응, 그거 맞아. 잘하고 있어. 그런데 조금 오래 걸릴지도 몰라.'라고 답했다. 폭식증을 고치기 위해 한번은 꼭 거쳐가야 한다고 생각되는 과정이 바로 '마음껏 먹는 것'이다. 폭식은 음식에 대한 집착으로부터 나온다. 당연한 욕구인 식욕을 여태껏 참고 억누르고 부정한 까닭에 결국 폭발한 상황에서 자책과 스스로를 향한 채찍은 되려 상황을 악화시킨다. 성나고 상처 입은 식욕에게, 내 마음에게 먼저 사과를 건네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서 어떤 규제와 힐난 없이 순수한 식욕을 그저 받아들이는 과정이 중요한 것이다. 빵, 감자튀김, 초콜릿, 쿠키, 푸딩, 아이스크림 등 무엇이든 다 좋다. 항상 그러했듯이 참는 대신에 그 순간에 먹고 싶어 하는 것을 허용하고 선택해보자.


 몇 년을 참아온 식욕이 어떻게 하루 만에 모두 해소되겠는가. 일주일이고 한 달이고 자유롭게 집착이 사라질 때까지 원하는 음식을 먹으면 된다. 순간적으로 살이 더 많이 찔 수도 있는데 다시 빠지는 살이니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폭식증을 고치고, 내 마음을 잘 추스르고 나면 더는 토하고 싶을 때까지 음식을 원하지 않을 것이다. 그때까지 억누른 식욕과 화해하기 위해 파도처럼 몰려오는 욕구에도 죄책감을 느끼기보다 인정하고 받아들이면 된다. 폭식증을 고치고 식습관이 정상화되니 이 과정에서 찐 살들도 결과적으로 다 빠지고 건강도 되찾을 수 있었다. 스스로를 긴 시간 억압해온 이들에게 자유가 얼마나 두려운 것인지를 안다. '먹고 싶은 대로 먹어도 나중에 폭식 나으면 살 빠져요.'라고 지금의 나처럼 말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전에 유튜브에서 본 적이 있다. 과거의 나는 그 말을 듣고 '그 말 따라서 먹었는데 만약 살이 다시 안 빠지면 어떡해요. 온전히 당신의 경우에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닐까요?'라는 의심을 품었다. 나라는 한 사람의 표본이 추가되었다고 해서 그대의 불안과 근심을 덜어주기 충분하진 않겠지만 음식과의 관계에서 당신도 자유를 얻기를 바란다.


 건강한 음식으로 대체제를 찾으려고 노력할 필요도 없다. 대체제를 찾는 것은 폭식증을 고친 이후에도 충분히 만들어갈 수 있는 습관이다. 그저 정말 먹고 싶었던 것을 꼭꼭 씹어서 맛있게 먹으면 된다. 시간에도 집착할 필요도 없다. 저녁 10시가 넘어 먹어도 좋고, 자기 전에 쿠키 몇 조각을 먹을 수도 있다. 그렇게 일주일 간 마음껏 먹으며 나는 나와, 그리고 내 억눌린 식욕과 화해했다. 일주일이 걸릴 수도 있고, 한 달이 걸릴 수도 있다. 그동안 부정당한 식욕에게 충분한 자유의 시간을 주자. 몸매에 대한 집착이나 '습관'으로 굳어진 폭식으로 인해 식욕과 나름의 화해를 한 이후에도 나는 온전히 폭식증을 고치지까지 더 오랜 시간을 필요로 했다. 그러나 식욕과 화해한 일주일은 자가치료의 좋은 출발점이었다.


 다음은 식욕과 화해하는 일주일 중에 스스로에게 쓴 편지다. 나를 사랑하고, 내 몸을 사랑하고, 당연한 식욕을 부정하지 않는 연습을 통해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2018.5.1 폭식증을 겪고 있는 나에게, 너에게


 미안하고 사랑해. 아프게 해서 미안해. 너 진짜 멋진 사람이야. 폭식증을 고치는 과정에서 많이 실패하기도 했고, 우울하고 죽고 싶을 때도 있었지만 여전히 포기하지 않았잖아. 꼭 나을 수 있을 거야! 앞으로 맛있고, 좋은 것들로 배를 채워줄게. 너는 충분히 사랑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이야. 폭식한다고 해서 하찮은 사람이 되는 거 아니야. 괜찮아. 더 아프지 않게 좋은 것들로 네 마음, 네 몸을 채워 줄게. 다이어트라는 이유로 다시는 괴롭히지 않을 거야. 속상한 일이 생겼다고 음식을 입에 밀어 넣지도 않을 거야. 조금 두꺼운 허벅지도 좋고, 볼록 튀어나온 뱃살도 괜찮아. 다 나니까. 너니까. 사랑해. 내일은 더 건강하고 행복하게 먹자. 무엇이든지 먹을 수 있어. 두려워하지 말기. 너는 사랑받을 만큼 충분해. 누가 너를 미워한다고 해도 너를 사랑하는 내가, 또 다른 누군가가 있다는 거 잊지 마.


이전 15화 15. 8가지 규칙과 시행착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