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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코쿠키 Dec 09. 2020

17. 의지를 탓하는 대신 상황을 바꾸는 것

<넛지>와 <슬림 디자인>

 먹는 음식을 바꾸기로 했다. 평소 식단의 90%가 탄수화물로 내 몸이 설탕과 밀가루에 절어있다고 느낀 순간이었다. 설탕과 밀가루가 중독성이 강하고 절제하기 힘든 음식이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늘 폭식하는 음식들도 빵, 과자, 초콜릿, 아이스크림 등으로 항상 똑같았다. '입맛을 바꾸면 몸도 바뀌겠지?'라는 생각으로 설탕을 줄이고 밀가루를 끊어보기로 마음먹었다. 계속 먹을수록 허기지고 더 먹고 싶은 음식 대신에 좋은 음식들에 집중해서 1달 동안 식단을 조절해보기로 결심했다. 설탕 줄이기와 밀가루 끊기의 1달 프로젝트. 내 몸은 얼마나 바뀔 수 있을까? 먹는 음식의 종류를 바꾸는 식으로 식습관을 교정하면 폭식 증상도 완화될 것이라는 기대에 부풀어올랐다.


 안타깝게도 설탕과 밀가루를 끊겠다는 나의 결심은 정확히 16시간 만에 깨졌다. 매일 빵을 달고 먹었던 나에게 항상 먹던 음식들이 금지된다는 것은 큰 스트레스였던 것이다. 참을수록 먹고 싶은 욕구는 더 강해졌다. 지금으로서는 불가능한 도전이라고 느꼈다. 그래서 극단적인 1달 프로젝트를 바로 접고 대신에 조금씩 그 양을 줄이는 식으로 입맛을 바꾸어보자고 스스로와 타협을 봤다. 그러나 먹고 싶은 음식을 제약 없는 먹던 것은 계속 이어나갔다. 늦은 밤에 운동을 마치고 기숙사에 돌아와 시리얼 2 봉지와 초콜릿 우유를 먹는 날도 있었다. 하지만 ‘먹고 싶은 것은 언제든 다 먹을 수 있어’라고 생각하고 나니 전처럼 토할 정도록 먹지는 않았다. 기분도 그렇게 우울하지 않았다. 급하게 허겁지겁 욱여넣고 삼켜대지도 않았다. 단지 좀 많이 먹었을 뿐이다. 폭식이 아닌 과식으로 그친 것에 만족했다.


 예전에는 10시가 넘은 밤에 무언가를 먹으면 미쳤다고 생각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스트레스를 끌어모아 머리에 얹어놓는 기분이었다. '먹고 싶은 것을 언제든 먹어도 좋아'라는 허락에서 오는 자유가 낯설고 두려웠던 시간이 지나가고 어느새 나는 그 자유를 즐기고 있었다. 다만 늦은 밤에 시리얼과 초콜릿 우유를 먹고 조금 후회스러웠던 이유는 '먹고 싶은 음식'이어서 먹은 것이 아니라 '있는 음식'이 그것이라서 먹었기 때문이었다. 딱히 몸도, 머리도 원하는 음식은 아니었다. 그저 마땅히 먹을 것이 없어서 먹었던 것이다. 냉장고에 사과나 포도 같은 신선한 과일이 있었다면 그것을 선택해서 더 맛있고 가볍게 먹었을 게 분명했다. 단지 기숙사에 남은 간식이 예전에 대량으로 사둔 시리얼뿐이었고, 서랍에 사서 넣어둔 음료가 초콜릿 우유였기에 나는 그것들을 먹은 것이었다. 정말 먹고 싶어서 먹은 것이 아니었기에 음식으로부터 얻는 만족감도 그리 크지 않았다.


 그 순간에 나는 의지와 욕구보다 '상황'이 먹는 음식을 선택하게 만든다는 것을 깨달았다. <넛지>와 <슬림 디자인>이라는 책을 읽으며 뇌가 우리의 식욕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치는지와 그것을 의지로 통제하는 것이 매우 어려운 일이라는 것에 대해 알게 되었다. 좋은 식습관을 만들기 위해서는 뇌와 욕구를 금지하기보다 건강한 음식을 스스로, 그리고 마음껏 선택할 수 있는 '환경'과 '기회'를 만들어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설탕과 밀가루 금지'처럼 ‘먹어서는 안 되는 것’들을 규정하는 대신에 ‘먹을 수 있는 신선하고 건강한 음식’들에 초점을 두고 고민을 시작했다.


 나만의 넛지를 만들어 건강한 음식을 쉽게 선택할 수 있게 '상황'을 디자인하기로 마음먹었다. 다음의 사항이 내가 스스로 생각해본 전략들이다.


1. 신선한 과일, 채소 등을 언제든 쉽고 편하게 먹을 수 있도록 냉장고에 손질해 보관해둔다.
2. 고구마 말랭이, 건자두, 견과류 등 건강한 간식을 가방에 넣고 다닌다.
3. 라면을 먹든, 치킨을 먹든 간에 상관없이 샐러드 채소를 한 끼 이상 같이 곁들여 충분히 먹는다.
4. 입이 심심할 때 먹을 차 티백과 껌을 사서 서랍에 넣어둔다.


 '먹어서는 안 되는 음식' 대신에 '먹을 수 있는 좋은 음식'의 선택지를 늘려갔다. 이전의 음식을 제한하며 느낀 강박을 버리되 식습관을 나의 속도와 상황에 맞추어 천천히 변화시켜 가고자 했다. 그렇게 나는 더 이상 나의 의지박약을 탓하지 않았다. 나의 '의지'를 문제 삼는 대신에 '상황'과 내게 주어진 조건들을 긍정적으로 바꾸어가고 있었다. 의지가 부족해서 그런 거라며 나를 힐난하길 멈춘 그때 나는 스스로를 미워하는 일을 그만둘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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