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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코쿠키 Dec 13. 2020

18. 누구에게나 사랑받고 싶었다

폭식증은 그리 단순하게 설명되지 않았다

 폭식증을 겪으며 그동안 자각하지 못했던 내 안의 수많은 문제들에 대해 깨달을 수 있었다. 그동안 나는 스스로 문제없는 사람이라고 자부했지만 사실 내 안의 감정들을 솔직하게 들여본 적이 없었을 뿐이었다. 단순히 과거의 잘못된 다이어트 때문에 식이장애가 생긴 것으로 추측했지만 실은 나의 삶 기저에 억누르고 외면한 나의 잘못된 가치관과 상처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이 문제들에 대해 알게 된 후 하나씩 마주하며 고쳐나갔고  스스로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마음의 치유를 얻기까지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근본적인 폭식의 문제를 이해한 뒤 보듬고 나서야 지독한 나의 폭식증은 마침내 끝을 맺을 수 있었다. 이 기록은 나를 집어삼킨 우울, 그리고 왜곡된 가치관들로 스스로를 옥죄온 시간들에 관한 고찰이다.


 누구에게나 사랑받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나는 어릴 때부터 '착하다'는 말을 주변에서 듣는 순한 아이로 평가되었다. 미움받는 것이 두려워서 화를 내거나 고집을 피우지 않았다. 남들이 원하는 것을 그대로 따랐고, 친구들이 좋아하는 것에 나를 맞췄다. 친구와 싸우는 것이 무서워서 싸울 법한 어떠한 여지도 만들지 않았고 혼자 상처 받더라도 조용히 속으로 삭히는 것에 익숙했다. 그렇게 나는 '착한 사람'이 되면 사랑받을 줄 알았다. 그런데 '착함'은 사랑받기 위한 이유로 충분하지 않았다. 중학교 1학년 때 친하다고 생각한 친구로부터 '너 왜 착한 척해'라는 말을 들었다. 도저히 그 말의 의도를 이해할 수 없었다. 아니, 애써 이해하려 하지 않았다. '나는 사랑받고 싶으니까, 남들이 나를 대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방식으로 너를 대한 건데 너는 왜 나에게 그런 적대감을 표하는 걸까? 너와 친구가 되고 싶고 너로부터 사랑받고 싶으니까 그런 것뿐인데.' 친구로부터 그 말을 들은 이후 나는 사랑받기 위해서는 '착함'만으로 충분하지 않으며 다른 것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남들이 좋아하는 것을 관찰했고 그것을 얻으려고 부단히 노력하는 무서운 아이였다. 잦은 부모님의 싸움 속에 자라며 항상 충분히 사랑받지 못한다고 느꼈던 나는 누군가로부터 충만한 사랑을 끊임없이 갈구했다. 사람과의 관계에서는 물질적인 것이든, 정신적인 것이든 '어떤 이유가 있기에' 사랑받고 사랑하는 것이라고 처음 생각한 것이 중학생 때였다.


 날씬하고 마른 몸을 가져야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중학생 시절 어린 내가 생각하기에 사랑받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아름다움이라고 생각했다. 그때 나는 예뻐야 사랑받는다고 생각했다. 사람들은 멋지고 아름다운 가수와 연예인을 좋아했다. 그들은 하나 같이 날씬했다. 또 뚱뚱한 사람은 미움받았다. 초등학교 때 뒷자리에 앉았던 남자아이가 자신에게 고백한 여자아이가 살집이 있다는 이유로 비웃는 것을 들으며 나는 날씬하고 예쁜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되내었다. 성공하기 위해서, 사랑받기 위해서 살을 빼야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지금 충분히 사랑받지 못하는 이유는 내가 예쁠 정도로 마르지 않아서라고 생각했다. 어느 책에선가 다음의 비유를 읽은 적이 있었다. 세상에는 다이아몬드 같은 사람과 진주 같은 사람이 있는데 항상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 것은 다이아몬드 같은 이들이라는 내용이다. 이유는 진주 같은 사람의 아름다움과 가치를 알아주는 사람은 많지 않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를 읽은 나는 '반드시 다이아몬드 같은 이가 될 거야'라고 결심했다. 그 비유의 원래 의미는 진주 같은 이들의 가치와 아름다움이 결코 다이아몬드에 비해 모자라지 않음을 전하고자 한 것이며 사람들의 주목과 시선이 누군가의 가치를 결정하기에 충분하지 않다는 교훈일 것이다. 중학생이었던 나는 그 의미를 충분히 이해했지만 그럼에도 다이아몬드가 되고 싶었다. 나의 가치를 알지 못하고 겉으로 판단할 이들로부터 빛나지 않는 진주로 치부되는 것이 두려웠고 진주를 닮은 나를 사랑해줄 누군가를 찾는 일은 '진주의 가치를 알아보는 이들이 드물다'는 비유의 내용처럼 매우 어렵고 가능성이 희박한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는 진주처럼 동글동글한 나를 깎아 뾰족한 다이아몬드를 닮고자 노력했다. 날씬한 사람이 되기 위한 다이어트가 그중 하나였다. 그래서 16살의 나는 하루에 한 끼를 먹으며 굶기 시작했다.


 완벽한 사람이 되기 위해 끊임없이 남과 비교했다


 고등학교 시절에 좋은 대학에 가고 싶었던 이유 역시 사랑받기 위해 충분한 사람이 되고 싶어서였다. 누군가로부터 이유 없는 미움을 받으면 내가 그만큼 완벽하지 못해서라고 생각해 원인을 스스로에게 돌리곤 했다. 부모님은 한 번도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한다거나 좋은 대학에 가야 한다고 말씀하신 적이 없었다. 학업에도 큰 관심이 없으셨고 네 하고 싶은 대로 해라며 키우시는 방임형 양육이어서 부모님으로부터 입시 스트레스를 겪어본 적은 없었다. 그러나 가난한 가정형편 속에 나는 내가 보통의 사람들만큼 살기 위해 무엇이든 뛰어나게 잘하는 것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완벽한 사람이 되기 위해 스스로 끊임없는 강박들을 만들어나갔다. 예쁘지도 않고, 특출 난 예술적 재능이 있는 것도 아닌 내가 성공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 공부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열심히 공부했고 좋은 대학에 갔다. 좋은 대학에 가니 훌륭하고 똑똑한 동기들 사이에서 나의 부족함이 계속해 눈에 밟혔다. 비교의 대상과 범위가 넓어지기 시작했다. 돈이 많은 친구, 공부를 특출 나게 잘하는 천재 같은 친구, 다른 재능까지 겸비한 빛나는 친구, 연예인처럼 정말 예쁜 친구들과 나를 끊임없이 비교하며 자존감은 계속해 낮아져 갔다. 이들 속에서 사랑받기 위해, 의미 있는 존재가 되기에 나는 초라하고 보잘것없는 존재였다. 그래서 나는 나를 더욱 몰아붙였다. 그중 하나가 몸매에 대한 끊임없는 집착이었다. 가난한 형편 속에 내 힘으로 눈에 띄게 외적으로 나를 바꿀 수 있는 방법이 살을 빼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대학에 가서도 나는 다이어트에 대한 강박을 놓지 못했고 끊임없이 나를 옥죄며 죽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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