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봄
종이로 만든 사물은 그 자리에 앉아 있다
어떤 이는 삼천 원짜리처럼 보인다 했고
어떤 이는 가보로 물려주고 싶다 말했다
부드러운 그림자도 없이 누워있는 것에
면밀한 구멍이 뚫리고 금강이 관통하여
살가죽을 꿰어 옭아 묶으니 단단해졌다
매일매일,
움직임 없이 고요한 상태이므로
금세 산이 되고 숨이 들고 났다
손에 막대기를 들어 종이와 강철을 기르고
혀끝으로 쓰는 글은 섬유질로 번져 나갔다
아무개는 거액을 주고도 덩어리를 소유할 수 없으며
누구는 대대로 그 사물 속에서 태어나 죽는다고 한다
해가 툭 튀어 오를 때,
서로 길들이지 않는 것들이 산비탈을 오르고
님만 님이 아니라, 기룬 것은 다 님이다* 노래하니
멀리 이른 봄을 길어 올리는 메아리가 서서 돌아온다
*한용운의 시 '기룬 것은 다 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