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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eroon Mar 21. 2024

그을린 사진

dialog with certain negative

bw 문구점이 오늘 폐업한다. 40년 만이라고 한다.

좁은 골목 오르막길 끝 모퉁이에 있다가 사라진다.

햇빛에 그을리는 동네 작은 집들의 옥상과 지붕들. 

타들어가 흩날리는 기억과 감정의 시간, 감히 말할 수 없는.

sun rises


셔터의 '찰칵' 만큼 노광(露光)이 그린 negative 표층이 이글거린다.

different layers of selective greys are carefully revealing in the dark.

화학작용과 손놀림이 연동을 시작하면 때때로 지워지는 언어의 개념,

빛에 그을린 기록의 두께가 상(像)을 개척한다. 신대륙의 발견.

미(未) 노광 된 땅이 투명해질 때 즈음 동네는 긴 노동으로부터 깨어난다. 




셔터는 신중하게 누른다. 사진의 구성과 분위기를 대부분 미리 편집하며 누르는 행위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아날로그적 현상(現象), 오직 하나의 물리적 상을 만드는 것이므로 잉여의 확률은 낮아진다. 느린 반복적 패턴의 sepuence를 거치는 만큼 이미지에 대한 미지의 기대와 발견의 기쁨이 있다. 호기심이 발동한다. 지리(地理) 학적으로도 지(知)적으로도. 매우 개인적인 주장이다.




문구점 창가에서 진열장이 묻는다. 

"우리 이제 만나게 된 건가? 고마워 이렇게 와줘서."

사물에게로의 끌림. 이상한 감정이 툭 튀어 올라온다. 대답은 당장 나오지 않고.


30년 된 소나무 집성목은 묵직하다. 해체해서 버릴 때 일정 금액도 지불해야 한다는 주인의 푸념에 그럼 제가 가져다 사용해도 되겠습니까 하고 여쭈니 선뜻 그러면 너무 좋지요 얼른 가져다 쓰세요 하신다. 이웃이 오랫동안 사용하던 물건_손때와 흠집의 역사가 새겨진 값진 가구를 선택한 것은 처음이다. 


밀고 당기니 삐비익 목(樹) 소리를 낸다. 차곡차곡 묵은 먼지를 닦아내고 작업실 한편에 놓으니 마치 늘 거기 있던 것처럼 친밀하다. 종이와 책, 여러 가지 도구를 품어줄 서가이자 보관함, 장식장 겸 테이블로서의 여러 가지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뿌듯하다. 진열장 입장에서는 30년 만에 은퇴하자마자 바로 재발령이다. 일하는 것이 쉼이 되고 쉼도 일하는 것이 되시기를 바라요.


뜻밖의 끌림 때문인가, 기분이 싱그럽다. 함부로 해체되어 버려지는 가구들이 넘쳐난다고 한다. 누군가는 버릴 것이고 또 누군가는 새롭게 간직할 것이다. 30년을 진열장으로 살아왔으니 오늘부터는 multi-functional furniture로 또 다른 세월을 이어가도록 합니다. bw는 계속된다!

take ca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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