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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eroon Mar 14. 2024

까만 개

스승이란

대체적으로 스승 된 것은 빛이 없는 외딴 공간_에서 나는 시큼한 냄새, 졸졸졸 흐르는 물소리 또는 삐걱거리며 작동되는 오래된 도구(道具)_에서도 마주친다. 


구멍 없는 camera obscura, 암실은 그런 곳이다.

모든 빛으로부터 차단된 공간 

수직으로 굽이도는 암막커튼 

darkroom enlarger is presented 

현상액에 적당히 반응하는 호흡 

누르면 시작되는 타이머의 신호음


붉은 전구가 켜지고 눈과 마음에 이는 감각의 열 손가락이 더듬거리며 익숙을 구(求)한다. 일일이 만져보고 확인하고 쓰다듬어 돌리면서 열고 넣어 잡아당기면서 올려보고 빼내어 담가 적시고 건져내서 옮기고 다시 씻어 헹구어 건져 닦아주고 건조하는 일련의 과정을 거치는 번거로움을 기꺼워하는 삼사 분. 다크룸, 넓이와 높이, 면면밀밀(綿綿密密) 깊이가 생긴다. 수십 수백 번의 삼사 분이 되풀이된다. 적요하다.




임인년의 한 여름을 함께 보낸 스승이 있는데 까만 개다. 진도 믹스견으로 태어난 곳은 소백산 자락, 견생 2개월 즈음 입양되어 서울로 왔다. 비구니 스님이 어린 강아지를 구멍 난 과일 박스에 넣어 단양 고속버스 터미널에서 버스 짐칸에 실어주고, 입양자가 동서울 고속버스 터미널에서 박스를 받아왔단다. 용감한 놈, 생후 2개월 된 아기 강아지가 난생처음 오롯이 혼자 여행을 하다니! 달리는 내내 덜컹거리고 캄캄했을 버스 밑칸에서 그것도 좁고 어둑했을 상자 안에서 말이다. 어디에서 어디로 가는 건지도 모르는 채. 구멍 밖으로 얼굴 내밀기를 반복하며 밖으로의 탈출을 시도했을까? 아니면 느긋이 엎드려 잠을 청하셨을까? 귀남은 아주 어렸을 적에 이미 camera obscura를 알아버린 얼리 어답터다. 도착한 박스를 열자마자 마주쳤던 까맣고 작은 강아지의 강렬한 첫 눈빛이 심각하게 카리스마 있었다고 들었다. 물론 지금도.


사람이나 다른 개들과 친해지는데 많은 시간이 필요한 귀남의 경계하는 견성이 그의 첫 암실_구멍 난 과일박스_에서 경험한 어둠에 대한 기억 때문일지도 모른다. 느긋한 제자는 그렇게 스승이 되고 스승은 또 다른 제자들을 만난다. 배우고 가르치고 가르치며 또 새롭게 배운다. 귀남 씨는 평상(平牀) 시 아무 말이 없다. 수염 난 턱과 짧은 네 다리, 크고도 작은 네 발과 뱃가죽을 바닥에 편평하게 밀착시키고 주로 미동 없이 엎드려있기를 즐겨하신_졸 시 '아무의 소모'에 잠시 등장하는 흙바닥에 엎드린 바로 그 스승_다. 


다크룸에서 작업할 때마다 귀남과 함께 보냈던 뜨겁고 습했던 여름이 자주 떠오른다. 

보고 싶어, 귀남 씨! 암실과 귀남은 까맣게 닮아있다.




재깍재깍 이 십여 초가 지나가면

숨어있던 잠상(潛像, latent Image)이 그(其) 모습을 서서히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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