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kieroon Mar 28. 2024

호응

landscape is doing a thing

wash-out


흐르는 물에 종이가 씻기는 동안 물소리가 연주된다. 여울가에 앉아 있기라도 한 것처럼 하염없어진다. 어지러운 생각들을 정리하고 닦아내는 구간이기도 하다. 투명한 물이 쏟아지고 모여든다. 일렁거리는 물비늘을 바라보는 재미는 덤이다. 물이 흘러간다. 사진의 얼굴에 누런 얼룩이나 잡티가 생기지 않도록 일정 시간 동안 흐르는 물에 담가놓는다. 인화지의 종류나 화학용액의 혼합비율 등에 따라 수세 시간을 달리 하기도 한다. 


negative_a


살아 있어 호응을 하는 것들은 아름답다. 물에 비친 구름이 산이 되고 산이 구름이 되기도 하듯. 필름 사진은 호응의 자연스러운 깊이를 표현하기에 좋은 장르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자연의 상태를 밝고 어두운 무수한 알갱이들로 제시한다. 사진들을 바닥에 펼쳐 놓으면, 삶에서 믿고 있는 것들이 눈앞에 홀연히 나타나기도 한다. 유령처럼. 현기증 같이.


negative_b


반복의 미학에서 벗어나고 싶을 때는 망설임 없이 카메라를 메고 밖으로 나간다. 산으로 바다로 들판으로 나가도록 하자. 돌이 많은 곳도 좋을 것이다. 풍경은 무엇인가를 하고 있다. 그것은 반복에 대한 것이 아니다. 변신한다. 불가사의하다. 살아 있는 것을 멍하니 바라보는 일에 시간을 들인다. 돌아다니면서 끌리는 대로 포착하고 발견하는 대로 호응의 기쁨이 쌓인다. 하늘과 땅 사이, 숲과 흐르는 물, 그 표면으로 드리워지는 빛과 바람. 움직임을 주시하다 보면 또 다른 '나'가 된다. 




이전 03화 그을린 사진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