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된 가을_이별이 익숙한 계절.

이 계절을 두려워하지 않을 너에게.

by Juco


새로운 출발을 앞둔 너에게 이런 말이 어떨지 모르겠지만. 너라면 분명히 너만의 그림을 계속해서 그려나갈 거라고 믿으니까. 그런 너에 걸맞게, 나도 이번엔 좀 화끈해져 볼까. 그렇긴해도 이번 대화는 우리만의 비밀로. 혹시 그가 알면 쥐도 새도 모르게 나를 없애버리려 할지도 모르니.



족히 한 달은 윙윙대던 에어컨이 언제 그랬냐는 듯 시치미를 뚝 떼고 잠잠해지면, 해 없는 하늘을 틈타 온몸의 털을 삐죽 세우는 한기가 칼바람을 몰고 온다. 그러면 우리는 그 칼바람이 기어코 우리를 멀어지게 하는, 이별의 계절이 돌아왔음을 안다.


방출, 그리고 은퇴.


이맘때면 우리의 원함이든, 원치 않음이든 우리는 이별을 맞이한다. 매년 반복되는 새로운 만남 뒤에 찾아오는 정해진 이별. 떠나는 자도, 떠나보내는 자도 '프로'라는 유니폼에 모든 것을 욱여넣고 담담하려는 데에만 여념이 없다. 지금에서야 하는 이야기이지만. 비록 단 세 번의 이별 밖에 경험해보지 못한, 흔히 '뭣도 모를' 바깥의 입장일 뿐이겠지만 오늘은 말하련다. 오늘은 내가 화끈한 날이니까.


매번 당연하게 반복되니 무심하게 켜야 할 초만 늘어나는 귀 빠진 날과 같이, 이 계절의 이별은 그 과정과 방식이 습관처럼 반복된다. 아무도 탐탁지 않음을 티내지 않는다. 하지만 실은 모두가 알고 있으리라. 이제는 이별을 대하는 자세가 바뀌어야하지 않을까.


경험, 그리고 시작.


내가 관찰한 바에 따르면, 우리는 미안함과 배려를 앞세워 애써 이별의 발표를 쉬쉬하며 희망고문하거나, 마치 큰 죄라도 지은 것처럼 쫓기듯 빠져나간다던가, 갖가지 상황과 이유를 앞세워 우리가 서로를 안녕할 수 있는 자리조차 만들어내지 못한다. 재밌는 사실은, 우리는 언제나 '원팀'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또 내가 관찰한 바에 따르면, 너는 이별 후 새로운 너의 팀을 꾸리기도 하며, 무엇보다 뭔가를 시작했다. 사람들은(때로는 너 스스로조차) 이 이별이 너로하여금 지금까지 애써온 것을 멈추게 한다고(흔히 실패했다고) 여겼지만 실제로 너는, 줄리아 컬리가 퀴팅(Quitting)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무언가를 그만둔 모습이라기보다 무엇인가를 새롭게 시작한 모습에 가까웠다. 그리고 그것은 이제까지 해왔던 것을 그대로 이어가는 것보다 적어도 한 뼘만큼의 더 큰 용기와 노력을 대가로 했다.


또 내가 관찰한 그 어떤 너도, 그 자리에 멈추거나 주저앉지 않았으니, 우리는 떠나는 너에게 그동안의 수고와 앞으로의 격려를 충분히 나눔이 보다 합당해 보였다. 더구나 떠난 너도, 남은 너도 우리는 여전히 서로를 우리라고 불렀고, 각자의 모습대로 자신의 성장을 지속했다. 그런데 어찌 떠나는 자, 떠나보내는 자 모두가 불편한 지금의 이별 방식이 우리에게 어울린다 할 수 있을까.


또 내가 관찰한 너에 따르면, 우리는 이 계절을 헤어짐과 끝남의 이별이 아닌 새로운 곳으로의 합류, 변화의 시작으로 축복해야 한다. 왜냐하면 너의 입에서 나온 표현들이니까. 그러니까 그저 보다 바람직하다거나 긍정적이기 위함을 넘어, 사실 그것이 원래 이 계절이 품고 있던 진의일지 모른다. 성장으로의 탈피.


또한 떠나는 너도, 남아 있는 너도. 야구 따위에 목숨 걸지 않기를 바라.


이게 아니면 죽는다는 생각으로. 모든 걸 내걸고서. 승리 아니면 죽음을 달라. 필사즉생 필생즉사. 전쟁에 임하는 장수의 마음으로. 임전무퇴. 배수의 진. 벼랑 끝 간절함. 또 뭐가 있더라. 그게 뭐든. 젠장, 다 지겨워. 자꾸 어디다 뭘 갖다 대. 야구가 제아무리 고귀한 가치를 들이대도, 아무렴 너만 할까.


그러니 제발토록. 진심. 진정으로 니가 야구를 안 할 수 있기를 바라.


온종일. 야구만 생각하는. 공과 배트를 손에서 놓지 않고. 야구에 살고 야구에 죽기. 듣고 보기에 좋은 빛 좋은 개살구. 결국 할 것 많고, 하지 말아야 할 것도 많은 이 세상을 야구만 익혀 살아내고자 하는 어리석음. 그 어떤 것도 나이가 숙련도를 절로 올려주는 것은 없기에. 선수이기전에 너는 '너'라는 존재였기에. 야구가 없는 세상은 조금 심심할 뿐이지만, 네가 없는 세상은 조금도 상상할 수 없으니까. 나는 그래.



이런 맥락에서 적어도 당분간은 야구를 안 할 수 있는, 야구 말고 다른 모든 것들을 해볼 수 있는 권한을 얻은 너를 나는 열렬히 환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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