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여름_제발 리플레이하게 해 줘.

Feat. 어바웃 타임.

by Juco

영화 [어바웃 타임]의 주인공 가족은 위대한 능력을 직계 한다. 성인이 되고, 아버지로부터 사용법을 전수받은 주인공은 '사랑'이라는 가치에 그 능력을 몰두한다. 그는 삶에서 그게 가장 중요했나보다.



리플레이로 후회를 줄이면,
우리는 더욱 행복해질 수 있을까.


선수들은 꽤 많은 후회를 한다. 잘못 던진 공 하나, 망설였던 스윙 한 번, 찰나의 실수 등 주로가 플레이나 시합 결과에 대한 것들이지만, 때로 적잖이 비시즌에 몸을 더 잘 만들지 못한, 다른 이들에게 휘둘렸던, 감사함이나 소중함, 즐거움과 같이 놓치지 말아야 할 것들을 놓쳐버린 것처럼 특정 시기의 자신을 후회하기도 한다. 한 시즌의 가장 큰 무대가 막 시작되었지만 우리는 한 발 앞서 시즌을 마무리하고 있고, 그래서 어쩌면 너는 지금도 지난 무언가를 후회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예전 인터뷰에서 언제, 어디서나 스스로가 가장 만족스러워 할 수 있는 자신의 모습이 무엇인지를 알고, 매 순간을 그렇게 채워가려 애쓰는 것. 그러함으로 '후회'를 줄여나가는 것을 멘탈의 질을 가꾸는 방식 중 하나로 이야기한 적 있다. 한 유튜브 채널에서 배우 이동욱은 후회하는 마음은 인간으로서 어쩔 수 없지만, '미련'은 자신을 좀먹게 하기에 후회는 되지만, 미련 남기지 말고, 털어내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자신의 철학임을 말한 적이 있다. 나는 그의 말에도 동의한다. 줄여야 하는 것이 후회건, 미련이건 결국 중요한 사실은, 우리는 지나가버린 것들에 대해 당연히도 아쉬움을 느끼는 존재라는 점이다. 어쩔 도리가 없다. 무수히 되돌리고 싶지만, 그러하지 못하는 우리는 시간에 고정된 존재다.


영화 속 주인공은 시간의 족쇄를 벗어던진 존재이나 그에게도 후회는 여지없으며, 그 또한 그런 후회, 미련, 아쉬움 따위를 줄이고자 마법을 사용한다. 전야의 종소리에 맞춘 성공적인 키스, 보다 능수능란한 로션 스킨십, 운명적 만남을 다시 찾거나, 마음에 드는 이성에게 보다 매력적인 모습으로 다가가기 위해, 아버지와의 마지막 산책을 위해. 주인공은 캄캄한 옷장에 들어가기를 수십 번 반복하며 가장 후회 없을 최상의 선택을 찾아간다.


그런데 말이지. 생각해 보면,



우리도 이미 마법을 부리고 있지 않나?



나도 완벽히 영화 주인공 같을 때가 있었다. 물론 현실은 아니지만. 예전에 이따금씩 즐겼던 모바일 야구 게임에서 나는 점수를 내주거나, 점수를 내지 못했을 때 이른바 강종(강제종료)이라는 일종의 버그를 활용해 같은 경기 상황을 원하는 결과가 나올 때까지 반복했다. 내 팀은 결코 지는 법도, 찬스를 놓치는 법도 없었다. 잠깐. 가만히 보니, 나는 현실에서도 마법을 경험한 적이 있는 걸? 비록 영화 주인공이나 게임에서처럼 완벽하거나, 원한 바는 아니었을지라도.


작년 4월. 만물이 흐드러지게 필 때, 나는 병상을 폈다. 대략 2주 동안은 먹고 싸는 생존 활동(이마저도 아주 눈물겨운 사투가 필요했다) 말고는 정말 꼼짝없이 누워있어야 했다. 정확하게는 옆으로 비스듬히 누워있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이때 나는 같은 순간이 리플레이되는 마법을 분명히 목격했다. 마법 하나. 구름이 가리지 않는 한, 해는 늘 똑같은 곳에서 떠올라 똑같은 동선으로 하늘을 가르고는 똑같은 곳에서 사라졌다. 마법 둘. 아침 새가 지저귀면 초, 중학생들의 긴박한 등교 소리가, 해가 아파트 앞 동 뒤로 숨으면 하교하는 초, 중학생들의 난리부루스가 동일하게 반복됐다. 마법 셋. 아픈 내 허리는 어제가 그제 같고, 그제가 오늘 같았다. 핸드폰이 없었다면 오늘이 어제인지 내일인지 구분할 방도가 없었다. 나는 매일 같은 하루를 반복해서 살면서 우울하고, 우울하고, 우울하고서도, 또 우울했다.




'함께'라는 이름의 마법.



오늘, 혹은 어제, 아니면 방금 일어난 일들을 후회하며 되돌리고 싶은 마음은 비단 선수들에게만 일어나진 않는다. 멀리, 지난 내 삶의 수많은 어리석음들을 차치하더라도 가까이, 나는 내가 했던 코칭 대부분을 후회하니 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다시 눈을 뜨고. 다시 등교를 하고. 다시 출근을 하고. 다시 사랑을 한다.


너는 다시 타석에 들어서고. 마운드에 오르고. 그라운드에 오르며. 나는 다시 코칭을 한다.



영원히 지속되지 않음을, 완벽히 그때와 똑같지 않음을 알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에겐 꽤나 충분하게도 같은 것을 반복할 수 있는 마법이 있다. 어쩌면 삶의 아름다움은, 모든 것을 다시 플레이 할 수 있는 '나'라는 존재에서 피어날지 모른다.



리플레이의 마법이 모든 이야기를 아름답게 완성하진 못한다.


[어바웃 타임]의 그 위대한 능력도 치명적인 단점을 갖고 있는데, 과거로 돌아감으로 인해 현재가 전혀 다른 상황으로 바뀔 수도 있다는 점이다. 지난 무언가를 얻기 위해, 현재의 무언가를 포기해야만 하는 아이러니. 주인공(주인공의 아버지 또한)이 절대로 포기할 수 없는 현재는 자신의 아이였다. 모든 부모가 절감한다. 주인공은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과거에 머물기보다 미래로 나아가는 것을 선택한다. 돌아가고 싶지 않은, 돌아가선 안되는 것도 있음이다.


영화 말미에서, 주인공은 마지막으로 아버지가 알려준 행복의 법칙에 따라 아주 평범했던 어느 하루를 동일하게 살아낸다. 그는 일상의 긴장과 걱정으로 보지 못했던, 그날의 아름다움을 경험한다. 그는 캄캄한 옷장에 더 이상 들어가지 않는다. 오직 하루하루를 자신이 간절히 되돌아가고 싶었던 그날로 여기며 살아내기 시작한다.


언제부턴가 나는 더 이상 그 모바일 게임을 하지 않는다. 리플레이할수록 경기의 묘미도, 승리의 기쁨도, 게임의 재미도 사라져 버렸다. 매번 원하는 결과를 만들어냈지만, 내가 바라는 것은 얻지 못했다.



선수들도 영화 주인공이나 게임처럼 '리플레이' 할 수 있다면, 후회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때의 플레이, 그때의 나로 돌아간다면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내가 원한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결과들이 과연 내가 진정으로 바라는 것일까?


그것들로 우리는 더 행복할 수 있을까?


우리는 무엇으로부터 행복을 원할까?



내가 앞서 경험한 대로, 일정 부분 우리가 리플레이할 수 있는 마법의 힘을 가지고 있다 치더라도. 말이야 뭔들, 그럴듯하게 떠들어댔지만. 끝없이 만나게 될 오늘의 어려움 앞에서 과연 나는, 그리고 너는.



마법을 부리고 있을까.
마법을 바라고 있을까.







지금 가장 리플레이하고 싶은 순간이 있다면 언제인가.

그때를 리플레이한다면, 어떻게 플레이할 것인가.

만일 지금이 리플레이 중이라면, 어떤 플레이를 해나가길 원하는가.

몇 번을 다시 플레이한다고 해도 결코 빼놓을 수 없는 한 가지는 무엇인가.

너의 모든 플레이는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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