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 겨울_우리들의 비시즌.

다시 시작하는 우리의 보물찾기.

by Juco



어렸을 적, 나는 세상의 주인공이었다. 사실 주인공이었다 할만한 일은 딱히 없었음에도 어린 시절의 나는 늘 세상의 주인공일 것만 같은 기분을 느꼈다. 내가 원하든, 원치 않든 나에겐 특별한 일들이 가득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가 만연했다. 마치 이런 느낌이었다. 보물찾기에서 내가 보물을 찾을 것 같은 바로 그런. 그리고 그것은 비단 나뿐만은 아니었을 테니(우리 대부분은 '개인적 우화'라는 발달단계를 거쳐왔으니), 나를 포함한 모든 친구들이 같은 마음으로 보물을 찾아 나서지 않았을까.


벌겋게 상기된 얼굴, 허공을 헤매는 고갯짓과 눈동자, 홍길동마냥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는 손과 발이 천지를 시끌벅적 흔들었더랬다. 물론 대부분의 보물들은 친구들 몫이었고, 나는 운수 좋은 어떤 날에야 간신히 보물 한, 두 개를 손에 쥘 수 있었다. 그런데 그리도 애닳게 찾아낸 보물이 무엇이었는지는 머리털이 동나게 뒤져봐도 당최 기억이 없고, 그저 보물을 찾겠다며 이리 뛰고 저리 뛰던 모습만 선명하니. 어쩌면 보물찾기에서 나와 친구들이 찾아낸 진짜 보물은 따로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끝없는 보물찾기




몇 년 전, 그 날. 내 앞에 앉아있는 것은 허탈함이 분명했다. 표정, 말투, 앉은 자세, 하다못해 내뱉어지는 숨결까지 모두 허탈함 그 자체였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너에게는 분명히 빛나고 짜릿한 보물이 있었다. 그것은 누가 손에 쥐여준 것이 아닌, 네가 힘들게 찾고 또 찾아낸 너의 결실이었다. 너는 그것을 손에 쥐고 그라운드에서 최고의 플레이를 펼치며 누구보다 빛났다. 그것을 손에 쥐고 있는 한, 너는 너의 무대가 영원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런데 언제, 어떤 뚜렷한 계기도 없이 그 보물은 슬그머니 네 손을 빠져나갔고, 너는 점차 빛을 잃어가기 시작했다. 뒤늦게나마 알아차린 너는 급히 주변을 살피며 샅샅이 찾아봤지만, 이미 보물은 자취를 감춘 뒤였다. 너는 다시 보물찾기를 시작해야 했다. 너무 잘 알고는 있지만, 처음 야구를 시작한 순간부터 지금까지 쉬지 않고 반복되는 이 심술궂은 보물찾기에 너는 허탈함과 답답함을 감출 길이 없었다.


네가 찾는 보물이란 너만의 완벽한 움직임, 그것으로부터 솟아나는 짜릿한 감각이었다. 그 감각 하나하나가 너로 하여금 최고의 플레이를 가능케 하니, 그것은 곧 네가 나아갈 지침이자 무대에 오르기 전 필수로 갖춰야 할 역량이었다. 따라서 매 경기, 결과가 최우선임에는 두말할 필요가 없었으나, 한편으로는 너만의 보물(정확히는 그 짜릿한 감각!)을 지니고 있었는지의 여부가 그날의 성패를 가르기도 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그 보물은 한 번 찾으면 영원히 지닐 수 있는, 물 위로 몸을 띄우거나 자전거 바퀴를 구르는 것과는 달랐다. 별 다른 일 없이도, 하물며 자고 일어나기만 해도 사라져 버리기 일쑤였다. '야구 참 어렵다'는 푸념 섞인 자조가 내로라하는 선수들에게서조차 서울의 김서방만치 흘러나오는 것도 이 때문일까. 사라진 보물을 다시 찾아나서는 것은 너의 흔한 일상이 되어있었다.


그럼에도. 듣고 있는 나도 갑갑한 이 지난한 과정을. 너는 웃으며 이렇게 표현한다.



내가 힘겹게 찾아낸 보물을 누군가 훔쳐서 상자에 넣고 자물쇠를 잠가버렸어요. 나는 수천 가지의 열쇠를 하나하나 맞춰보며 간신히 자물쇠를 풀었죠. 하지만 곧 또 다른 자물쇠가 나타나 나의 보물을 숨길 것이라는 걸 알아요. 그럼에도 나는 자물쇠를 풀 수 있는 열쇠를 또 찾아낼 것이고, 이게 야구에요. 이것이 야구를 통해 내가 드러내야 할 나의 존재가치죠.



프로 정도의 레벨에 오른 너라면 분명 확실한 보물을, 그것도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너만의 엄청난 보물을 갖고 있을 것이란 나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한 번 뛰어오른 그 경지에서, 이제는 룰루랄라-만사OK-천하태평일 줄 알았던 너는 평범한 나보다도 더 힘겨운 사투로 매일을 보내고 있었다. 자신이 그렇게나 노력하여 애써 얻은 보물이 눈 깜박할 새, 허무히 사라질 수 있음을 알면서도 그 지긋지긋한 쳇바퀴 싸움을 마다하지 않는 너는. 마치 보물보다 보물을 찾아 나서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고 말하는 듯 했다.




'보물' 찾기 말고, 보물 '찾기'




천지를 흔들었던 어린 날의 보물찾기를 내가 아직도 간직하고 있는 이유는 지금은 기억에도 없는 내가 손에 쥐었던 보물들보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보물을 찾던 내 모습이 더 그립고 빛나기 때문임을 너로 인해 확신한다. 우리의 영혼 깊숙이 남아, 지금의 우리를 형성하는 것은 우리가 찾아낸 보물이 아니라 그것을 찾기 위해 헤쳐나간 순간들 속의 ‘내 모습들’임을 믿는다.


우리는 이제까지와처럼 우리의 보물찾기를 계속해서 이어나갈 것이고, 또다시 ‘보물’의 달콤함과 화려함에 눈이 멀어 ‘찾기’의 아름다움을 놓칠 것이다. 때로는 ‘찾기’의 끝없는 횡포에 지쳐 주저앉아 멈추기도 하겠다. 어리석을 것을 알기에 더할 나위 없이 어리석지마는, 너와 내가 명확히 알고 있는 사실은 우리가 우리로서 점점 성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어떻게 보냈는지 모를 정도로 길고도 짧았던 시즌. 우리는 어떤 보물로써 이번 시즌을 치러냈으며, 그 과정에서 새로이 찾아낸 보물은 무엇일까. 그리고 다음 시즌, 기필코 우리의 무대가 될 그곳을 위해 우리가 찾아내야 할 다음 보물은 무엇인가. 무엇보다 그 모든 보물들에 다가가기 위해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진정한 '찾기'를 완성해야 할까. 시즌보다 바쁘고 값진 또 하나의 시즌, 이제 다시 보물찾기 시간이다.







지금 내가 갖고 있는 보물은 무엇인가.

나에게 필요한 보물은 무엇인가.

내가 갖고 있는 보물들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나에게 필요한 보물들을 찾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보물찾기는 함께 할수록 더욱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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