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세상에서, 그의 언어로 말하기.
한 투수가 어려움을 토로한다. 시합 중, 마운드에서의 어려움이었다. 반드시 자신의 실력을 모두 보여줘야 한다는 부담감 더하기, 결과에 대한 기대감 혹은 걱정이 오히려 퍼포먼스에 방해가 되고 있었고 선수 스스로도 이를 잘 인지하고 있었다.
선수는 코칭을 통해 해결책을 찾고자 했다. 나는 코칭 작업들 중 하나를 골라 간략히 설명하고, 의사를 물었다. 선수는 동의했고, 우리는 코칭을 시작했다.
선수들은 시합 전 그리고 시합 중, 갖은 장애물들로부터 자신의 상태를 방해받곤 한다. 따라서 선수들의 주된 임무 중 하나는, 시합에서 자신의 경기력을 온전히 발휘할 수 있는 최적의 상태를 갖추는 것이 된다.
이와 같은 이슈로 코칭을 할 때 접근할 수 있는 몇 가지 작업들 중,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작업이 있는데 다만, 내 볼따구만 벌거이 달아오를지도 모를 일이니, 그것에 대하여는 박스 안에 가둔다.
먼저, 자신의 경험으로부터 최고의 경기력을 발휘했던 순간을 찾는다. 그리고 그때의 '나‘를 관찰하며 그 순간 나에게 일어났던 감정, 감각, 생각 등(외에 무엇이든)을 알아차린다.
다음은 창의성이 일 할 차례. 혹 평소에 자신은 창의성이 부족하다고 여겨왔는가? 미안한 일이지만, 난 그런 거짓부렁에 속지 않는다. 각자가 지닌 창의성이 얼마나 크고 대단한 지를 놓고 토론하자면 언제고, 누구와도 지지 않을 자신이 있다. 게다가 잘근잘근 따지고보면 창의성이 부족하다는 그 판단은 스스로의 판단이 아닐 확률이 높다. 그러니 다소 억울하더라도 일단은 내가 이긴 셈 치고 계속 가자.
우리 모두가 갖고 있는 각자의 독특한 창의성에 힘입어 '그 순간의 나'를 표현한다. 단어로, 말로, 음악으로, 글로, 이미지로, 향기로, 맛으로, 영상으로. 그 무엇이든 상관없이 좋다. 중요한 것은 그 순간의 '나'를 지금, 여기로 불러올 수 있는 단순하고도 강렬한 나만의 연결 링크를 만드는 것이다. 이 작업은 복잡하거나 어렵지 않다. 우리는 이미 일상에서 많은 링크를 만들어내고 있다.
가장 쉽게, 우리는 '어떤 노래'를 듣거나, '어떤 상황'이 갖춰지면 과거의 어느 순간으로 돌아가곤 한다. '트위스터 킹'이라는 노래는, 중학교 체육시간 '태보'를 군무처럼 배워내던 그때의 나를 선명하게 데려온다. 몸치인 내가 지금까지의 생애 중, 가장 리드미컬하던 순간이다. 숲 속 산바람의 냄새 중, 군대에서 경계근무 서던 순간을 또렷이 그려내는 냄새가 있다. 말로 설명하긴 어렵지만 나는 정확하게 어떤 냄새인지를 기억하고 있다. 그 냄새를 맡으면, 그 순간 내가 잠시나마 느꼈던 어느 휴일 오전의 한적함과 같은 여유로움을 마음에 가득 채울 수 있다.
이때 우리에게 시공간의 한계는 아무런 제약이 되지 못한다. 마법이 일어나는 순간이다. 특히, 사랑에 있어서는 더욱 그렇다. 사랑으로부터 뽑아진 링크는 한층 다양하고 강렬하다. 부디. 사랑에 대한 예시가 필요할 만큼 메마른 삶이 우리에게 없기를.
마지막 단계는, 우리의 창의성이 인도해 준 나만의 링크를 적재적소에 활용해 그 쓰임새를 파악하는 것이다.
만일 태보를 배우던 순간의 내 '리듬'이, 혹은 보초 근무를 서던 순간의 내 '한적함'이나 '여유로움'이, 지금의 시합을 치르는 데 있어 나를 더 좋은 상태로 이끌어줄 것으로 가정한다면, 그리고 충분한 연습과 피드백으로 그것이 참이 됨을 확인했다면. 나는 시합에 나가기 전, '그 노래'를 찾아 들을 것이고, '그 냄새'를 찾아 맡을 것이다. 여기서 과연 어떻게 찾고, 어떻게 듣고, 어떻게 맡을 것인지에 대한 방법은 너무 걱정말자. 이 또한 우리의 창의성이 충분토록 그 답을 내어준다. 기억해야 할 점은, 지금의 '나'와 지금의 내가 원하는 '나'와의 연결(링크)이다.
이제 시합을 준비하며, 시합에 들어서며, 시합을 치르며, 각자가 창조해 낸 자신만의 링크를 작동한다. 내가 불러온 '나'는 나로 하여금, 지금에 필요한 모든 힘을 가진 '진짜 내가' 되게 한다. 이 작업을 나는 '링크'라고 부른다. 신용카드 카피문구 같아 찜찜하긴 하지만, 링크의 마법은 쓸수록 거대해진다. 이것은 곧 나의 멘탈모델이자, 내 언어다.
나는 링크 작업을 진행해 나갔다. 각 단계마다 링크에 대한 개인적 첨언을 보태가며 그를 독려했다. 그는 우여곡절 끝에 내가 링크라고 부르는 그것을 만들었고, 나는 만족했다. 선수 너만의, 너만을 위한, 너만에 의한 링크임을 수없이 강조하며, 실행으로 잇기 위한 의미까지 꾹꾹 눌러 담고 나니. 나는 뿌듯함으로 가득했다. 내가 그득하니, 코칭은 그렇게 끝이 났다.
그런 메커니즘이구나.
그래, 메커니즘이었구나!
며칠 후, 점검 차원에서 나는 선수와 다시 이야기를 나눴다. 선수는 여전히 같은 문제로 씨름하고 있었다. 코칭에서 만들어진 링크는 적극적으로 시도되지 않고 있었고, 그나마 있었던 몇 번의 시도에서도 별다른 효과를 나타내지 못했다. 그래도 보란 듯 시간은 흘렀고, 다음 세션이 찾아왔다.
선수는 조금 나아지긴 했으나, 시합 중 마운드 위에서의 장애물은 여전히 건재함을 이야기했다. 그러면서도 오늘은 다른 이슈로 코칭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힌다. 쓰리고 아프다. 스멀스멀 튀어나는 자괴감을 침 한 모금과 함께 억지로 꿀꺽 삼켰다. 그러나 자괴감은 목에 걸려 넘어가지 않았다. 나는 내가 한 모든 것들을 의심하며, 여직 일천하기 그지없는 능력을 탓했다. 나는 실패했고, 그에게서 링크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당장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데, 그럴 수가 없다. 멘탈코치로서 고역스런 순간 중, 하나. 그럼에도 코칭을 이어가야 할 때가 있다. 주섬주섬 철판을 꺼내 애써 얼굴에 두른다. 따지고보면 코치도 선수와 다를 바 없다. 사실 우리 모두가 그렇다. 꽤 자주, 억지로, 무대로 내몰린다.
선수가 새로 꺼낸 이슈는 기술적인 부분이었다. 현재 중점을 두고 있는 즉, 자신의 투구 메커니즘을 점검해보고자 했다. 내가 할 수 있을까? 이건 제대로 할 수 있겠냐고. 이런 멘탈상태로 무슨 멘탈코치라고... 이게 가당키나 한....
혼자 생각할 때보다, 코치님이랑 대화하면 오히려 제가 저를 더 잘 알게 되는 기분이거든요. 기술적인 것도 그렇게 더 잘 정리되지 않을까요?
선수의 매너가 내 코에 숨을 되돌린다. 빌어먹을. 누가 선수고, 누가 코치란 말이냐. 나는 선수에게 잠시 양해를 구하고 잠깐의 침묵을 얻었다. 코칭의 진정한 주인공이 누구인지를 다시금 깨닫는다. 여긴 온통 '나'로 가득하다. 몇 번을 더 땅을 치고 후회해야 그 신념은 내 것이 될까. 젠장할. 이런 내겐 잠시 후회할 틈도 없다. 지금의 나에겐 간절히 필요한 ‘내’가 있다. 나와 그때의 '나'를 다시 링크.
딱 이건 거 같아요. 이 메커니즘으로 가는 게 맞는 것 같아요.
지금 하고 있는 훈련들도 그 메커니즘과 같은 방향일까?
생각해 보면 그런 것 같아요. 지금 하는 훈련들에 이 메커니즘을 더해서 확실히 제 껄로 만들면, 시합 때도 더 좋아지지 않을까요?
어때? 그럴까? 더 좋아질까?
네. 더 좋아질 거예요. 이건 좋아질 수밖에 없어요!
재개된 코칭에서 선수는 자신의 투구 동작을 하나하나 천천히 살펴보고 스스로 설명해 가며, 자신만의 투구 동작을 정립해 나갔다. 그때, 불현듯 질문 하나가 떠올랐다. 포지션을 막론하고 선수들의 입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키워드 중 하나가 '메커니즘'이었다. 그래서 선택했다. 아니, 선택했다기보다 그들의 언어에 이끌렸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겠다.
멘탈이요?
응. 기술적으로 그런 메커니즘이라면, 그때 멘탈은 어떤 메커니즘을 가져야하지?
아~ 어, 그때 멘탈은... 음....
자신의 멘탈에 대한 메커니즘을 묻는 질문에, 선수는 곧장 반응했다. '아무 생각 없어요', '할 수 있다는 자신감', '최고라는 마음가짐', '목표 하나만', '해야 할 것에만 집중'처럼 교과서 같은 대답만 시원하게 흘러나왔을 질문에 단지 '메커니즘'이라는 단어만 추가 되었을 뿐인데, 선수는 진심으로 깊숙이 이해하고 반응했다. 깊어진 미간, 왼쪽 위로 치켜뜬 눈동자, 생각의 흐름에 따라 천천히 사방을 누비는 고개와 골똘한 입술이 그것의 반증이었다.
선수는 자신의 투구 메커니즘을 따라가듯, 마운드에서 자신의 멘탈(사고, 감정)이 어떤 메커니즘으로 흐르는지를 차분히, 그리고 무엇보다 쉽게 관찰하고, 인식해 냈다. 그때였다.
아! 그러면, 지난 번에 코치님이랑 한 것도 저만의 멘탈 메커니즘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이후 선수는 자신의 상태를 알아차림은 물론, 자신이 어떤 상태이고픈지(그의 언어에 따르자면 어떤 멘탈 메커니즘이고자 하는지)까지 거침없이 이어갔다. 그래, 내가 목 놓아 설명하던 게 바로 그거였다고! 속으로 한바탕 엉엉 울면서 만세를 외치는 나를 선수가 영문 모를 표정으로 바라본다. 너는 모르겠지, 지금 네가 얼마나 엄청난 것을 발견해 냈는지.
우리는 지난 코칭에서 작업했던 링크 아니, '메커니즘'을 다시 손보기 시작했다. 선수는 지난번과 다르게 너무나 신이 나게, 또 재미난 아이디어들을 쏟아냈다. 그는 자신의 투구 메커니즘에 어울리는 자신만의 '멘탈 메커니즘'을 창조했고, 더불어 그것을 하루빨리 시도해 볼 생각에 한껏 들떴다. 이제사 진짜 우리의 코칭이다.
같은 작업인데, 선수는 왜 '메커니즘'에 더 강하게 반응한 걸까?
어? 이건 해보고 싶은데?
그런 마음이 들었어요.
지난 코칭에서 했던 건 솔직히 하기 싫었죠. 꼭 해야 하나 싶고. 마치 하기 싫은 숙제 같았어요. 그런데 내 멘탈 메커니즘? 하니까 뭔가 진짜 내 꺼 같고, 궁금하기도 하고... 왠지 나만 할 수 있는 그런 거 같으니까...
최적상태니, 앵커링이니, 심상이니, 자화니, 루틴이니. 이러쿵저러쿵 구구절절 내가 떠들어봤자, 그건 내가 알아야 할 것들 뿐이니, 그저 나만 신나. 그러나 너의 언어를 받아, 너의 언어로 말하니 가타부타 없이 척하면 착. 질문 하나로 네가 번뜩이니, 그땐 나도 신나.
나는 그의 세상에서, 그가 사용하는 언어로 소통해야 함을 절실했다. 그리고 놀랍게도 이제부터가 이 글의 주제.
코치는 자신의 언어를 죽이고,
선수의 언어를 살리는데 집중한다.
강아지는 '멍멍'하고, 고양이는 '야옹'한다.
나는 요즘도 선수들의 언어가 아닌, 내 언어를 내뱉기에만 급급할 때가 있다. 대부분, 선수보다 나를 우선하여 위에 놓을 때 그러하다. 그러니 나는 앞으로도 그들의 세상에서, 그들의 언어로 살아있기를 희망하며 자리에서 물러나 사라지기 위한 노력을 다해야 한다. 앞으로 네가 하는 코칭이 대체 뭘 하는 거냐고 묻는다면. 강아지랑은 '멍멍'하고, 고양이랑은 '야옹'하는 거라고 대답해야 할까? 그럼, 고슴도치랑은 뭐라고 말하게 될까....?
# 멘탈 메커니즘의 후기가 궁금할지도 모를 당신을 위해.
그는 이후 피드백에서, 자신을 괴롭히는 장애물들은 여전하지만 자신이 만든 멘탈 메커니즘으로 마운드에서는 보다 편안하게 자신의 퍼포먼스에 몰입할 수 있게 되었다고 했다. 또한 결과적으로는 잘 던질 때도, 못 던질 때도 있지만 적어도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해냈다는 성취감에 즐겁다고도 표현했다. 선수의 훈련 목록에는 멘탈 메커니즘이 포함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