멘탈코치가 가장 많이 듣는 질문 중 하나.
더할 나위 없는 미소로 가득한 교수님과의 첫 만남에서 내가 그랬듯, 코칭이 실제로 뭘 하는 건지 궁금해하는 사람들을 종종 만난다. 너도 그랬다. 그래서 우리는 으레 이 질문으로 첫 세션을 시작하곤 했다.
근데, 이거 뭐 하는 거예요?
나는 열심히 대답한다. 코칭이 무엇이고, 어떤 과정으로 어떻게 작동되는지. 상담, 심리치료와는 어떤 차이가 있으며 티칭, 컨설팅, 멘토링과는 무엇이 다른지. 마치 '이걸 모른다는건 너에게 커다란 비극이야!'라고 선언하듯 온갖 손짓, 발짓을 더해가며 코칭이 어쩌구, 멘탈이 저쩌구 떠들어 재낀다.
사실, 너의 질문과는 상관없이 나와의 코칭에서는 반드시 이 과정을 거치게 된다. 본격적인 코칭에 들어가기에 앞서, 우리가 하려는 것에 대해 설명하고 앞으로의 활동에 대한 동의 및 서약을 받는 과정은 코치의 의무이자, 코칭 프로세스의 첫 단추이기 때문이다.
팀에 합류한 첫 해 역시, 나는 이 과정에 열과 성을 다했다. 솔직히 말하면, 밖에서 코칭할 때보다 더더욱 성심성의껏 설명했다. 내 루틴으로 5분이면 뒤집어쓸 것을, 장장 20분 넘게 소모하는 경우도 잦았다. 시간을 더 쓰는 게 대수는 아니겠지만. 여하튼 그렇게 침이 마르고 닳도록 열성껏 질문에 답하고 나면 당연하게도, 너의 반응은 한결같았다.
아, 네...
심드렁한 표정에 여전히 뚝.뚝. 묻어있는 궁금증들. 뭐지? 뭐가 잘못된 거지?
짐작 가는 바는 있다. 내가 코칭을 배우기 전이나, 코칭을 처음 배우기 시작했을 무렵. 나는 그렇게 교수님과 선배 코치들에게 '코칭'이 정확히 무엇을 하는 것이냐며 괴롭히기 일쑤였다. 덕분으로 나는 심리학적, 코칭학적, 상담학적, 교육학적, 뇌과학적, 그 외 숱한 전문적 지식들로 무장된 답들을 하나하나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의 호기심과 의구심은 쉬이 사라지질 않았다. 뭔가 명확하게 정의되길 바랐으나 도통 해결되지 않았다. 그리고 그건 비단 나뿐이 아니었다. 나와 비슷한 증상의 몇몇 코치들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덧없이 서로를 코칭하기도 했다. 그러니 나는 최소한 너에게 내가 얻었던 것들보다는 후련한 답을 건네주고 싶었다. 그런데 어쩌나. 그럴듯한 답을 찾아 헤매고, 설명하면 할수록 듣는 너가 괴로울 뿐이었다.
코칭이 뭘까. 앞서 말했다시피 일천한 나에겐 너무 거대한 질문이기에, 살포시 뒤집어본다. 코칭에서 코치와 고객은 무엇을 할까. 이렇게 본다면, 사실 별게 없다. 코칭시간 대부분에 코치와 고객은 대화를 한다. 주로 코치가 질문하고, 고객이 대답한다. 가끔 반대가 되기도 하지만 더 많이 이야기하는 사람은 당연지사 고객이다. 어디선가 코칭을 하고 있는데, 누가 고객인지 궁금하다면 알아내는 방법은 쉽다. 입을 더 많이 떼는 사람, 필시 그가 8~90%의 확률로 고객이다. 물론 코칭 중에는 다양한 코칭 작업(움직임과 도구를 활용한)들이 이뤄지지만, 엄밀히 말해 그것 역시 코칭에서 던져진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하고자 하는 과정에 속한다 할 수 있으므로 내가 바라보는 코칭의 본질은, 질문. 곧 질문과 답이 오가는 코치와 고객의 대화다.
그래, 이렇게 정리하면 간단한 것을. 도둑이 제 발 저린 것처럼, 겁먹고 잔뜩 몸을 부풀린 복어처럼. 나는 왜 그렇게 복작거렸을까. 필시 빈 수레였기 때문이었겠지.
수레가 비었음을 알아차렸기에 이제부터나마, 영 텅 빈 수레는 아니다. 그렇다면 코칭이 도대체 뭘 하는 시간인지를 묻는 너에게 어떻게 대답해 주는 게 좋을까? 정답이 있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지금의 나는 이렇게 대답한다. 개인적으로나마 조금은 더 너의 언어에 가깝기를 바라며.
그냥 이런저런 얘기 나누는 거야. 니가 하고 싶은 이야기라면 뭐든지.
보고 싶을 때, 볼 수 있는.
네 안에 요동치는 무엇이든 꺼낼 수 있는.
네가 꺼내는 모든 것으로부터 너를 판단, 평가, 비판하지 않는 애정 어린 청중이 되어줄 수 있는.
그렇게 너를 너답게 지켜주는, 네 주변 어딘가 반드시 있을 너만의 세계 최고 멘탈코치를 찾아.
혹, 이 모두가 여의치 않더라도. 네 곁에는 언제나 내가 있으니, 우리 코칭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