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하고 익숙해서, SKIP 해 버리는 꽤 많은 것들을.
숨은 그림? 아니,
숨은 의도 찾기.
아들내미가 산타 할아버지에게 편지를 썼다며, 자랑스럽게 내민다. 들썩들썩 리듬 타는 어깨를 따라, 세상 으뜸가는 자부심이 절절 흘러넘친다. 편지를 반드시 보내야 한다기에 부칠 방법을 물으니, 지난번처럼 박스에 담아서 보내면 된단다. 예전에 우리가 그렇게 보냈다고. 잠깐, 우리..가?
아빠는 해마가 딱딱하네~!
어리둥절해하는 나를 보며 녀석이 실소를 날린다. 오래전 치매를 다루는 다큐멘터리에서 기억력을 관장하는 뇌의 영역이 해마임을 알고 난 후부터, 내가 깜박깜박할 때마다 녀석은 어쭈구리 내 해마의 안부를 묻는다. 이럴 때면 단 한 시라도 좋으니, 녀석이 되어보고 싶다. 저 작은 눈망울에 내가 과연 어떤 아빠로 담기고 있는 건지. 모르긴 몰라도, 가끔은 날 가소로이 여기는 게 분명하다.
그래도 30여 년 더 산 내가 참아야지. 저 나이는 현실과 머릿속을 명확히 구분하지 못하기도 한다니, 지금은 또 자기만의 어느 이야기에 빠져 있는 걸까? 아! 맞아. 그랬었지? 관성적 맞장구를 날리며 대충 어르고 넘어가려는데, 이놈의 표정이 진지하다. 스토리를 멈출 생각이 없는 게 분명하다.
빨리 박스에 담고 포장해서 보내러 가자. 내가 열심히 썼다니까?
무슨 박스, 어딜 가서, 어떻게 보내자는 거야. 아니, 그보다 왜 이 가을에 산타 할아버지한테 편지를 보내야 하는 건데. 도대체 우린 무슨 대화를 하고 있는 거냐고.
배팅 훈련 중, 자기 턴을 끝낸 선수가 타석을 벗어나 동료와 대화를 나눈다.
어때?
타이밍이 잘 안 맞는 것 같아.
반박자만 빨리 잡아봐.
선수는 다시 배터박스에 들어가 휘두를 듯 말 듯 한 제스처와 함께 무언가를 몇 번이고 중얼거리더니, 곧 다시 힘껏 배트를 휘두른다.
저쪽 불펜에서는 금방 투수 한 명이 피칭 훈련을 마쳤다.
괜찮던데?
근데 힘이 안 실려. 공이 때려지지가 않아.
팔로만 던지려고 하지 말고, 몸을 써 봐.
연거푸 같은 동작을 반복하며, 계속해서 자신의 투구 동작을 연구한다. 결국 안 되겠는지, 선수는 그날의 피칭을 마쳤음에도 대화를 나눈 동료를 불러 세워 놓고는 다시 공을 던지기 시작한다.
선수들의 대화를 관찰하다 보면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는 패턴이다. 엿듣는 입장에서 말을 알아는 듣겠는데, 그 뜻을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물론, 야구의 '야'자도 모르는, 타격이라고는 동전 야구가, 투구라고는 유원지 인형 맞추기가 전부인 내게 어찌 그들의 깊고 넓은 대화를 따라갈 수 있는 귀가 있겠냐마는. 나는 궁금하기 그지없다.
투수와 타자의 승부는 타이밍 싸움이라고도 부른다. 타이밍이란 무엇일까. 타자가 타이밍을 맞춘다는 것은 어디에 무엇을 맞춘다는 것이며, 또 반박자 빠르게는 얼마나 빠른 걸까. 정박이 16분 음표라면, 32분 음표면 되는 걸까? 그렇담 정박은 몇 박인가. 앞에서 친다는 건 공간적 영역일까, 시간적 영역일까.
투수는 공을 팔로만 던져서는 안 된다고들 한다. 투수에게 팔로만 던진다는 것은 무엇이고, 몸을 쓴다는 것은 무엇일까. 왜 거의 모든 투수들이 좋은 공을 던졌을 때의 느낌을 '공이 긁힌다'거나 '공을 때린다'는 손 부근의 감각만으로 표현하는 걸까. 다리가 땅에 뿌리내리는 느낌이었어라든가, 몸이 꽈배기가 되는 느낌이었어는 영 불가능일까?
너무 당연한 것들을 물어보시니까.
그런데, 그러게요? 그게 뭘까요?
무슨 얘기한 거야?
제가 공을 팔로만 던지고 있어서, 몸 전체를 이용해서 공에 힘을 싣도록...
팔로만 던지는 건, 뭐지?
(동작을 보이며) 그냥 이렇게 팔로만 쓰윽.
몸 전체를 이용한다는 건?
(동작을 보이며) 팔만 쓰는 게 아니라, 하체를 고정하고 상체의 꼬임을 이용해서 이렇게...
좀 다른 건가?
다르죠. 근데 이게 말로는 잘 설명이 안 돼요.
어땠어?
제가 타이밍이 좀 늦어서, 지금보다 빨리 잡아야 될 것 같아요.
타이밍을 빨리 잡는다는 게 뭐야?
(동작을 보이며) 원래는 이쯤에서 쳤다면, 지금은 더 앞에 왔을 때 치는 거죠.
어떻게 해야 더 앞에서 칠 수 있어?
(동작을 보이며) 공을 보고 친다기보다, 존을 그려놓고 앞에서 타격한다는 느낌으로 이렇게... 아, 이게 진짜 미묘한 차이라 말로는 설명이 어려워요.
선수들은 자기 종목에서 짧게는 수년, 길게는 십수 년을 갈고닦은 뛰어난 숙련가들이다. 그들은 그들만의 아주 짧은 대화나 몇몇 포인트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핵심을 파악해 자신의 기술을 향상시키는 놀라운 모습을 보이기도 하며, 때로는 구구절절 설명하기보다 몸을 활용한 감각적 소통(시연이나 잘 디자인된 훈련들)을 통해 그것들을 이뤄내기도 한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그 플레이를 할 수 있느냐, 없느냐'이다. 자신이 어떻게 플레이했는지를 설명하는 것은 지도자, 학자 혹은 해설가들에게나 중요한 덕목이지, 선수의 몫은 아니다. 잘 던지고, 잘 잡고, 잘 치고, 잘 달리면 됐지. 굳이 설명까지야. 그렇기 때문일까. 팀 안에서는 이렇게 너무도 당연한 것들에 대한 대화가 쉽지 일어나지 않는다. 질문하는 사람도, 질문해 주는 사람도, 당연스레 답 해보는 일도 드물다.
내가 기억을 뒤져가며, 간신히 각색한 두 대화를 예시로 든 이유는 하나다. 자신에게는 너무도 당연해 한 번도 의문을 품지 못하는 것들에 대해 물어봐 줄 사람이 필요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것이 곧 코칭이기도 하다.
내가 경험한 바로는 아이러니하게도 아마추어 레벨에서는 이 현상이 더 심해진다. 오히려 그나마 프로에서 더 근본적이고, 기본적인 것에 대한 고민과 대화가 많은 편(물론 나이와 환경의 영향도 있겠지만)이다. 내가 팀에서 멘탈코치로서 꼭 하고자 했던 역할 중 하나는, 이러한 대화를 자꾸 일으키는 것이었다.
내가 질문을 하는 목적은 어떤 대답을 하는지, 또 얼마나 잘 대답하는지를 보기 위함이 아니다. 혹시라도 놓치고 있을지 모를 '나'의 어떤 것을 살펴보는 시간. 대답에 대한 아무런 평가, 비판이 없는 안전한 곳에서 스스로를 곱씹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자 하는 것이 유일한 목적이다. 그것이 중요한가? 그렇다. 질문을 하고, 그것에 대답해 보는 경험은 가장 효율적인 학습이자, 기본적인 자기인지 방법이다. 따라서 좋은 질문을 받고 답을 탐구하는 것은, 좋은 지식을 들으며 답을 얻는 것보다 값지다.
놀라운 능력들을 일상으로 해내는 그들인지라, 가끔씩은 숙련된 그 빠른 속도로 인하여 미처 들여다보지 못하게 되는 작은 부분들도 있으리라. 어떤 전문적인 일도, 그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매일 반복되는 익숙한 당연함일 뿐이기에. 때때로 익숙함에 갇혀, 나도 모르는 사이 망망대해를 허망하게 빙빙 거리는 경우도 있으니까.
{고모(외국사람)+편지(보내기)=우체국} = {산타(외국사람)+편지(보내기)=우체국}
근데 이 편지를 왜 보내야 해?
그래야 산타 할아버지가 내가 원하는 선물을 주지.
그렇구나. 그럼 부디 해마가 딱딱해진 아빠를 위해 어떻게 보내야 하는지 설명해 주겠니?
아이 참. 봐봐, 산타 할아버지는 어디 살아. 다른 나라 살지. 그러니까 어떻게 해야겠어? 다른 나라로 보내야겠지? 그러면 우체국에 가야지. 우체국에 가서, 박스에 넣어야 될까~? 안 넣어야 될까~? 넣어야겠지. 그래야 비행기에 실을 수.... 중략.
아들내미의 족집게 강의로 메마른 내 땅에 동심이 내리면서, 그제사 퍼즐이 완성된다. 아들이 기억하는 것은 작년 가을, 해외에 있는 고모에게 부쳤던 우체국 택배였다. 녀석의 사고는 이랬다.
갖고 싶은 생일 선물이 비쌈. 아빠는 맨날 돈이 없음. 산타 할아버지는 늘 자신이 원하는 선물을 줌. 산타 할아버지는 외국사람. 다른 나라에 사는 고모도 외국사람. 우체국 택배로 고모에게 편지를 보내봄.
이 모든 것이 만나, 산타에게 편지를 써서 그걸 국제우편으로 보내겠다는 자신의 생일 선물을 위한 치밀한 계획이 완성된 것이다.
산타에게 쓴 편지를 고작, 아들의 크리스마스 선물을 정하기 위한 유용한 정보쯤으로 여기는 내가. 산타가 살아 숨 쉬는 세상의 아들을 이해하기란, 순간순간 버겁다. 어른이 되어버린 나의 산타와, 무럭무럭 자라나고 있는 아들의 산타는 같지만 너무 다르다.
그리고 여담이지만, 실제로 우리는 핀란드에 있는 산타클로스에게 편지를 부칠 수 있다. 산타와 무언가를 주고받을 수 있다니! 난 꿈도 꿔 보지 못한 세상을, 누군가는 이미 살고 있다.
새로운 사고는 우리의 세상을 넓힌다.
새로운 사고란, 우리가 우리에게 던지지 않았던 당연한 것들에 대한 물음이다.
우리는 물어봤어야 했다.
너의 산타를. 너의 타이밍을. 힘을 싣는 너를.
우리는 물어봐야 한다.
왜 야구를 했는지.
야구를 어떻게 하고 있고, 왜 계속하고자 하는지.
어떤 아이였는지.
어떤 성인이 되었고, 오늘은 어떤 사람이었는지.
나를 얼마나 아는지.
MBTI가 많이 아는지, 내가 많이 아는지.
그리고,
우리는 왜 이렇게 열심인건지.
너무나 익숙하고, 너무도 당연해 내가 전혀 살펴보지 않는 것들에 대하여
우리는 너에게 더 물어봐야 했다.
나는 어떤 사람인지부터, 어떤 선수인지까지.
무엇을 좋아하는지부터, 무엇을 기피하는지까지.
얼마나 가볍고 자유로울 수 있는지부터, 얼마나 무겁고 진지해질 수 있는지까지.
나를 탐구하기 이보다 더 좋은 계절은 없기에.
탐구 활동 목록이 필요하면, 우리 주고받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