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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정국 Nov 05. 2019

당신은 이 괴로운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줄 수 있는지

잉고 슐체 - 심플 스토리



  가끔은 그런 생각이 든다. 내겐 굳이 사서 고생하는 일들이 있다고. 소설을 읽고 시를 읽는 일이 그렇다. 혼자 사는 친구들을 불러다 밥을 먹이는 일이 그렇고 낯선 여행지에서 위태로운 하루하루를 보내는 일들이 그렇다. 독서모임을 따라다니고 독후감을 쓰는 일도 그렇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혼자 낑낑거리며 독후감을 쓰는 이유. 같은 책을 읽고 다른 느낌을 말하는 이들의 다양함을 헤아리려 애쓰는 이유. 두 번 읽으면 이해할 수 있을까, 세 번 읽으면 알게 될까, 읽히지 않는 책을 자꾸 뒤적거리는 이유. 나는 어떤 쓸모를 기대하며 책을 읽는 것은 아니다. 쌓이는 설거지거리를 감수하면서 친구의 호의를 바라는 것도 아니다. 여행의 끝에는 늘 깨달음이 있으리라고 헛된 희망을 품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비록 허무할 지라도, 나는 다시 여행을 떠나고 친구들을 집에 부르며 오늘도 책을 읽는다.

  어느 것도 세상을 더 살기 쉽게 만들어주지 않는다. 식탁에 앉아 밤늦게까지 이야기를 나눈 친구의 내면은 평소에 만나는 모습보다 항상 외롭고 깊었다. 치밀어 오르는 구역감을 참으며 기어올라간 킬리만자로의 정상에서는 무서운 경외감과 괴로움만이 나를 사로잡았다. 어떤 소설이나 시도 세상은 단순한 거라고 말해주지 않았다.



  잉고 슐체의 <심플 스토리Simple Storys>는 제목에서 짐작하는 것과는 달리 단순하지 않은 소설이다. 29개의 짧고 ‘단순한’ 이야기들로 이루어져 있지만 그것이 모여서 이루는 세계는 단순하지 않다. 소설은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이후 동독의 작은 마을, 알텐부르크에 살던 사람들의 목소리로 구술된다. 29개의 이야기들은 제각기 화자를 가지고 있어 마치 핸드폰에 묵혀둔 개인 영상들을 모아 편집한 다큐멘터리 영화 같기도 하다. 30명 가량의 등장인물 중에서 중심적 역할을 하는 것은 모이러 가족과 슈베르트 가족이다. 소설은 모이러 가족의 엄마, 레나테 모이러의 대사로 시작한다. 그것은 채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무너져버린 베를린 장벽을 보며 동독 사람들이 내뱉었을 법한 대사다.


“정말이지 적절한 시점이 아니었던 거예요.”(11쪽)



#1. 홍수가 나면 물고기들한테는 무슨 일이 일어날까?


    소설의 첫 이야기, 1장 <제우스>에서 모이러 가족의 부모인 레나테와 에른스트는 아들들인 마르틴과 피트의 주선으로 이탈리아 여행을 떠난다. 베를린 장벽은 무너졌으나 통일은 되기 전인 1990년 2월, 그들은 불법 여권으로 이탈리아행 관광버스에 오른다. 그곳에서 그들은 디터 “제우스” 슈베르트를 만난다. 과거 동독 시절, 공산당의 지침을 따르지 않았다는 이유로 교장이었던 에른스트는 디터를 해직한 적이 있다. 그것으로 디터는 3년간 갈탄 광에서 노역을 해야 했다. 버스가 사고로 멈추었을 때, 산악인 디터는 성당 담을 기어오른다. 디터는 에른스트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빨갱이 모이러’, ‘초록색 점퍼를 입은 윗전 양반’이라고 외친다.

  에른스트는 수년 후 가스총으로 난동을 피운 일로 정신 병원에 수용된다. 피해망상에 집착하는 증상으로 보았을 때 편집형 조현병(paranoid schizophrenia)에 가까워 보인다. 23장 <끝난 건 끝난 거다>에서 레나테의 목소리로 듣게 되는 에른스트의 비극은 이렇다. 공산당 시절 당의 입장에서 쓴 글이 대중으로부터 격렬한 반발을 불러온다. 마찬가지로 공산당원으로서 자신이 해고했던 디터에게서도 에른스트는 공개적으로 모욕을 당한다. 사람들의 시선에 못 이겨 에른스트는 자진하여 사직한다. 에른스트는 손자인 티노한테도 거부를 당한다. 레나테는 이 모든 일들에 대해 에른스트는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외면은 순식간에 찾아왔다고 한다.


“그들이 에른스트를 무참하게도 무너뜨렸고 마지막엔 아무렇게나 내동댕이친 거야. 아무도 간섭하지 않았어. 모두가 입을 다물었어.”
“너무나 빨리 일어난 일이었는데요, 갑자기 종말이었어요. 갑자기 하루아침에 아무도 그 일에 관심을 두지 않았어요.”(295쪽)


  디터 또한 깨어진 존엄성을 회복하지 못하고 무너져버린다. 15장 <빅 맥과 빅 뱅>에서 그는 낚시 친구 페터 베르트람과 잉어 낚시를 한다. 디터는 51.6kg짜리 대어, 빅 맥을 낚는다. 빅 맥을 놓아주고 다음 입질을 기다리는 동안 디터와 페터는 날 선 대화를 나눈다. 페터는 디터가 어린 여자에게 돈을 주면서 만남을 지속하는 것과 탄압받았던 일에 집착하는 모습을 비난한다.


“넌 머릿속에 그 뭐냐, 그 여자나 들어 있겠지. 또 정치적 탄압을 받았다는 증명서, 그런 말도 안 되는 서류나. 참, 내 말이 맞지, 뭘.”(200쪽)


  페터가 던지는 말들이 디터의 가슴으로 날아와 푹푹 꽂힌다. 디터가 폭발 직전에 이르렀을 때 낚싯줄이 팽팽히 당긴다. 디터는 예상보다 쉽게 끌려오는 낚싯감에 이상한 느낌을 받는다. 빅 뱅이라고 이름 붙인 이번 녀석의 무게는 아까와 똑같은 51.6kg이다. 풀어준 빅 맥이 다시 미끼를 문 것이다. 그 순간 디터는 악취를 느끼고 심장에 통증을 느낀다. 디터는 쓰러지면서도 그 물고기 좀 제발 버려 달라고 말한다. 페터는 하얀 잉어를 놓아준다. 디터는 심장 마비로 사망한다.


  <심플 스토리>에서 대사건 속에 휘말린 인물들은 새, 곤충, 물고기 같은 동물들이나 솔잎 바늘 같은 별 볼 일 없는 자연물로 표현된다. 계절에 따라 대륙을 횡단하는 철새들의 이야기나(66쪽) 자동차에 치이는 오소리(60쪽), 쏟아지는 빗줄기에 이리저리 튕겨 다니는 솔잎 바늘들은(285쪽) 모두 시대의 급류에 휩쓸려 떠다니는 개인의 모습을 보여준다.

  디터의 이야기에서 그는 자유를 얻었지만 돌아와 미끼를 문 빅 맥과 겹쳐 보인다. 빅 맥이 다시 디터에게 잡혔을 때 날카로운 낚시 바늘이 관통한 것은 빅 맥의 주둥이 안쪽뿐 아니라 디터의 심장이기도 하다. 정치적 탄압을 받았다는 증명서 - 디터의 생계 수단 - 가 아니라면 디터는 통일된 독일에서 살아갈 수 없다. 영원한 피해자로 살아가야만 하는 운명은 하얀 잉어의 운명과 오버랩되며 그의 심장을 꿰뚫는다. 디터는 죽기 전, 국경에서 본 짐승들의 모습을 묘사한다. 그는 자신의 운명을 예견한 것처럼 보인다.


“내가 놀란 건 단지 짐승들이 그걸 알아차리지 못했다는 거야.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어떻게 다른 동료들이 전부 갈가리 찢겨 죽었는지 그들도 보았을 텐데. 다른 건 다 낌새를 채면서 말이야. 짐승들은 지진도 미리 알아내잖아.”(201쪽)


  모이러 가족의 아들, 예술사를 전공했지만 직장을 잃고 여러 돈벌이를 전전하는 마르틴은 마지막 29장에 이르러 ‘북해’라는 식당의 아르바이트로 일하게 된다. 우연히 그곳에서 함께 일하게 된 제니는 디터가 돈을 주고 만났다던 어린 애인이다. 두 사람은 줄무늬 잠수복을 입고 발에는 물갈퀴, 얼굴에는 물안경과 스노클을 한 채 길거리에서 광고지를 뿌린다. 마르틴의 머릿속에는 ‘북해’의 주인이 그들을 거리로 내보내며 한 말, “홍수가 나면 물고기들한테 무슨 일이 일어날까?”(391쪽)라는 질문이 맴돈다.

  홍수가 나면 둑은 무너지고 강물은 넘쳐흐른다. 두 이념을 갈라 세우던 베를린 장벽 또한 둑이 무너지듯 무너졌다. 강물에 살던 물고기들은 거센 급류에 휩쓸려 무너진 둑 너머로 뿔뿔이 흩어진다. 범람하는 물살 속 잔해처럼 인간의 삶은 비산한다. 잠시 머물 줄 알았던 둑 너머 웅덩이는 빗방울이 그치자 말라버린다. 휩쓸려 떠내려온 물고기들은 좁아진 물웅덩이에서 파닥거린다. 아가미를 연신 벌리며 파닥거리는 물고기들은 마치 ‘영화에서 불의의 사고를 당한 사람들’(30쪽)처럼 보인다.


  마르틴의 아내, 안드레아는 마르틴이 실직하자 자전거 타는 연습을 시작한다. 막 자전거 타는 법을 배운 안드레아는 자전거를 타다가 뺑소니 사고로 차에 치어 죽는다. 후에 에른스트를 돌보게 되는 정신과 의사, 바르바라 홀리체크는 어느 날 도로에서 오소리 한 마리를 친다. 바르바라는 박물관 표본 담당인 리디아와 함께 오소리 시체를 찾으러 돌아오지만 그곳에서 오소리는 찾을 수 없다.



#2. 물안경이 시야를 좁게 만드는 바람에


  웅덩이 속 물고기들의 삶은 피폐하다. 피부를 맞대며 사는 일이 불가피한 일이 될 때 상대의 어깨에 기대고 싶은 마음은 괴로움의 원천이 된다. 과밀한 물속에 산소가 부족해지면 물고기들은 앞다투어 수면 위로 주둥이를 내놓고 뻐끔거린다. 작은 벌레라도 한 마리 웅덩이에 빠지는 순간 생존을 향한 먹이 다툼에 웅덩이는 진흙탕이 된다.


  박물관 관장이었던 한니는 해고된 후 마리안네를 찾아와 술주정을 부린다. 마리안네는 디터의 아내다. 한니는 이상한 휘파람 소리가 귓속에서 들려와 잠을 이루지 못한다고 말한다. 디터는 자기네 집에서 밤새 떠들어대는 한니가 못마땅하다. 마리안네는 한니가 누군가를 필요로 한다는 것을 느끼지만 더 가까워지지는 않으려 한다. 마리안네 자신도 가슴에 종양이 생겨 내일 수술을 받으러 가야 하는 처지다. 한니는 마리안네에게서 무언가를 기대한다. 그녀는 팔을 벌려 마리안네를 껴안으려 하지만 마리안네는 한니의 손길을 피한다. 마리안네는 한니가 자길 건드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둘은 3-4년 전에 여성 전용 체조장에서 알게 되었을 뿐이다. 마리안네는 한니가 말을 끊고 얼른 씻고 잤으면 좋겠다. 이 이야기가 나오는 13장의 제목은 <이제 씻어도 돼>이다. 마리안네의 차가운 시선 속에서 우리는 무너진 벽 위로 세워지는 새로운 벽들을 감지한다.


“그녀가 팔을 벌려 내 목을 끌어안으려고 합니다. 나는 그녀의 양손을 잡아 내 어깨로 가져갑니다. 물론 난 그렇게 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날 건드리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182쪽)


  이 장면은 <심플 스토리>에서는 드물게 등장인물의 생각이 드러나는 장면이다. <심플 스토리>는 불친절한 소설이어서 잉고 슐체는 실은 위의 인용문에서조차 ‘그녀의 양손을 잡아 내 어깨로 가져갑니다.’로 설명을 끝내버리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등장인물들은 오직 말과 행동으로써만 자신을 표현한다. 사무엘 베케트의 희곡, <고도를 기다리며>에서 에스트라공과 블라디미르가 하염없는 기다림 속에서 계속 서로에게 말을 거는 것처럼, 알텐부르크의 사람들 또한 살아있음을 실감하기 위해 끊임없이 말한다. 그리고 한니와 마리안네의 에피소드에서처럼 말조차 상대방에게 닿지 않을 때 닿고 싶은 마음은 손끝의 뻗어감으로 이어진다.


““물론 외롭지 않지!” 아버지의 손끝이 내 손끝을 건드렸습니다.”(142쪽)


  에른스트는 마르틴의 생부가 아니다. 마르틴과 피트는 레나테와 전남편 라인하르트 사이의 아들들이다. 10장 <미소>에서 마르틴은 친아버지 라인하르트 박사를 찾아 뮌헨으로 간다. 라인하르트는 동독의 가족들을 떠나 뮌헨에서 수석 의사로 혼자 살고 있다. 그는 레나테와 이혼한 후 뮌헨에서 노라라는 여자와 결혼했다. 노라는 중풍을 맞은 라인하르트의 수발을 20년간 든다. 어느 날 라인하르트를 위해 기도하겠다는 보리스라는 목사가 찾아오기 시작한다. 20년 결혼생활의 마지막은 라인하르트의 전 재산을 자기 몫으로 챙긴 노라와 보리스가 포르투갈로 떠나는 것이었다.

  라인하르트는 그 일 이후 자신의 인생이 새로 시작되었다고 말한다. 종교에 귀의한 것이다. 곁에 기댈 만한 누군가의 넉넉한 어깨가 없을 때 사람은 마지막 도피처로 종교를 선택하기도 한다. 신이 늘 곁에 있다면 인간은 외롭지 않을 것이다. 애인과 가족과 친구와 살 비비며 살면서도 척력과 무관심을 발산하는 인간에 비해, 신은 얼마나 이상적인가. 팔각형 무늬가 새겨진 주방 장갑처럼(142쪽), 종교란 얼마나 실용적인가.


“예수 그리스도가 나와 그토록 가까이 있던 적은 한 번도 없었어. 우린 도대체 누구란 말이냐? 우리 인간 스스로에게서 거부감을 느끼는 존재들인 우리 말이다. 우린 도대체 뭐란 말이냐?”(141쪽)


  신은 인간의 대역일 수밖에 없다. 완벽한 아버지, 완벽한 어머니, 완벽한 자식의 대역. 신문사 사진기자인 파트리크는 박물관 표본 담당인 리디아와 헤어진 후 직장 동료인 단니와 만난다. 단니는 자전거를 타다 뺑소니 사고로 죽은 안드레아와 자매 사이다. 좁은 알텐부르크에서 인간관계는 조밀하다 못해 숨 막힐 것만 같다. 27장, <이 남자가 아니다>에서 단니는 파트리크에게 날 선 말들을 던진다. 알고 싶지도 않은, 전 여자 친구인 리디아 얘길 왜 자꾸 하는지. 어째서 파쇼와 펑크족 기사를 냈을 때 두 사람의 이름이 나와선 안 된다고 했는지. 단니는 파트리크가 도망치는 모습, 외로운 어깨를 기대려 하는 모습 둘 모두를 거부한다. 그리고 알텐부르크에서의 사랑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혹시 그거 알아? 당신이 시골 애인이었다는 걸?” “알텐부르크에는 당신보다 좋은 사람이 없었다는 거야. 당신이 응급 처방이었어. 대역이었던 거지.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는 곳에서는 서로 위하면서 살게 되지.”(299쪽)


  <심플 스토리> 속에서 닿고 마주치고 헤어지는 손끝들은 그래서 애처롭다. 물웅덩이 속의 사랑은 얼마나 짧은 한때일 것인가. 시인 엔리코는 소설 속에서 죽게 되는 세 인물(다른 두 사람은 안드레아와 디터다) 중 한 명이다. 리디아는 파트리크를 떠나 엔리코에게 잠시 머물었다가 그 마저도 떠난다. 엔리코는 고양이 키티와 함께 산다. 리디아가 자신에게 왔다가 떠난 이야기를 풀어 주는 19장, <기적>에서 그는 만남과 헤어짐에 대해 말한다. 엔리코는 에스키모인의 인사법(추운 겨울에 모자 밖으로 드러난 코 끝을 비비어 서로의 반가움을 확인하는 인사법)을 배웠다며 키티를 향해 코를 좌우로 움직인다. 고양이는 냄새를 맡아보더니 뒤로 물러선다. 그러나 쓰다듬던 손길을 멈추자마자 키티는 엔리코의 손으로 자기 목을 들이민다. 그의 팔 쪽으로 앞발을 내민다.(250쪽)

  엔리코는 계단에서 굴러 떨어져서 죽는다. 가운데가 뚫려 있지도 않은 좁은 계단을 어떻게 한층 반이나 굴러 떨어질 수 있었는지는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다. 정부 지침에 따라 낡은 벽난로를 떼내다가 실수로 다친 그의 한쪽 다리는 깁스를 한 상태였다. 고양이에 목줄을 채운 채 목욕 가운을 입고 다니는 엔리코를 이웃 사람들은 노출증 환자라고 기피한다. 그는 독일에서 살아남기 위해 이름까지 독일식인 하인리히로 개명한다. 혹시나 일거리가 생기면 필요할 거라는 이유다. 어느 날 엔리코는 다리를 뚝, 하고 부러뜨려 달라고 이웃한테 부탁한다. 괴상한 요구를 하는 엔리코를 이웃은 역겨워한다. 아마도 장애인 증명서를 얻거나 보험금을 타기 위한 속셈일 거라고 추측한다. 엔리코가 계단에서 죽은 후, 이웃들은 무엇이든 어설픈 그가 다리 한쪽만 부러뜨리려다 실수했을 거라 말한다.

  다른 어떤 계단, 고용을 담당하는 노동청 계단의 가운데에는 그물이 쳐져 있다. 안전망이라고도 불리는 그것은 고용에 실패한 사람이 계단에서 뛰어내리는 것을 막고자 만들어진 것이다. 거기에는 빨간 목도리가 하나 걸려 있다. “누구나 볼 수 있도록, 아예 애초에 감히 딴짓을 못하도록”(299쪽) 만들어진 안전망이다. 사회적 안전망, 사람들끼리의 손잡음은 국가의 노동력을 보존하고 자기들 눈앞에서 죽는 것만은 막기 위한 것인가. 그러나 아무도 손을 내밀어주지 않는다면. 엔리코는 <침묵>이라는 글을 써서 이웃에게 보여주지만 아무도 그것을 제대로 읽지 않는다. 엔리코는 어쩌면 아무도 자신의 글을 읽어주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는 ‘머리를 거꾸로 처박고 계단 아래로 떨어진’(382쪽) 것이 아닐까.


  온기가 부족한 <심플 스토리>의 이야기들은 엔리코 이웃의 말마따나 ‘정말로 기분만 나빠지는 글’(380쪽) 일지도 모른다. 옆에 있는 사람에게 구원을 기대하며 뻗은 손끝들은 허공을 헤맨다. 관심들은 대개 무관심으로 돌아온다. 친절하기에는 살아남기도 벅찬 세상이다.


  개구리를 닮은 잠수복 복장으로 ‘북해’ 식당의 광고지를 돌리던 마르틴과 제니가 식당 광고를 위해 외쳐야 하는 대사는 다음과 같다.


“여기 어디에 북해가 있죠? 전 북해에 가려고 해요! 거기서부터 바다가 시작되죠! 절 좀 도와주시겠어요?”(390쪽)


  만약 사람들이 북해가 어디인지를 모른다고 하면 그들은 ‘그렇다면 우리가 가르쳐 드리겠습니다!’라고 외치고 슐가 10a 번지와 슐 가 15번지에 있는 식당의 주소를 말한다. 사람들이 안다고 하면 ‘좋아요! 우리를 그곳으로 데려다 주실래요?’라고 말한다. 마르틴과 제니의 코미디 같은 호객행위에 사람들은 웃는다. 흥이 난 마르틴은 광고지를 주면서 ‘맛있게 드세요!’라고 덧붙이기까지 한다. 그러면 어떤 이들은 ‘네, 맛있게 먹어요!’라고 하거나 ‘여러분도요!’라고 대답하기도 한다.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제니는 잠시 마르틴을 밖에 두고 상점 안에 들어가 조심스럽게 사람들에게 광고지를 나눠준다. 밖으로 나왔을 때 마르틴은 없고 북해 광고지만 이리저리 흩어져 있다. 누군가에게 두드려 맞은 마르틴은 왼쪽 눈이 퉁퉁 부어 있다. 물갈퀴로 어느 남자의 신발을 느끼지도 못할 정도로 아주 조금 밟았는데, 마르틴을 흠씬 두들겨 팬 것이다. 제니는 마르틴을 위로한다.


“마르틴 씨는 정말 잘하세요, 사람들에게 밝게 다가가 즐겁게 만드시죠. 항상 사람들을 즐겁게 대했고, 단지 이 광고지뿐만이 아닌거죠."
"역겨운 놈이네요. 친절함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놈인 거예요.” 내가 말합니다.
“아무도 상관하지 않았어요. 아무도 꼼짝하려 들지 않았다고.” 그가 말합니다.
“그들한테는 너무 벅찬 일이니까요.” 내가 말합니다.
“어쩌면 그들은 아프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지도 몰라요.”(397쪽)


  두 개구리는 식당 사장에게 돌아가지 않기로 결심한다. 마르틴은 가능한 멀리 떠날 거라고 말한다. 거리의 사람들에게 그곳이 어디인지, 그곳에 데려다 달라거나 어떻게 하면 갈 수 있는지 물어볼 필요는 없다. 물고기는 흐르는, 넓은 물에서 살아야 한다. 두 사람은 스노클을 입에 물고 물안경을 쓴 채 물갈퀴를 첨벙거리며 북해로 걸어간다. <심플 스토리>의 마지막 장에서 처음으로, 두 사람은 서로의 손을 잡는다. 물안경으로 본 웅덩이 속 세상은 캄캄한 타원형 테두리 속에 가둬져 있다. 서로가 옆에 있는지 알려면 손을 내미는 수밖에 없다. 보이지 않는 어두운 장막 너머로 두 사람은 손을 내민다. 온기를 찾는 두 손이 어둠 속을 헤매다 마침내 닿는다. 두 사람은 서로의 손을 잡고 걸어간다.


“물안경이 시야를 좁게 만드는 바람에 서로 옆에 있는지 없는지를 알 수 없으므로 우린 서로의 손을 잡고 걸어갑니다.”(399쪽)


이미지 출처 : TUSA



#3. 우리의 몫


  <심플 스토리>는 이야기들이 모여 소설이 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야기가 하나하나의 관계들 - 인물표 속 인물들과 그 사이를 잇는 선들 - 이라면 소설은 그 동그라미와 네모, 선들이 모여서 만든 하나의 세계다. 일견 단순해 보이는 하나하나의 이야기들이 세계 속에 자리 잡는 순간 거대하고 복잡한 아상블라주의 일부가 된다. 소설은 서사문학이며 서사는 세계를 구축하는 데 성공한 ‘단순한 이야기들’이 살아 숨 쉬는 집이다.

  그래서 <심플 스토리>를 덮고 나면 막막함에 빠지는 것이다. 29개의 단순한 이야기들이 모여 마법처럼 드러난 이 세계는 너무도 방대하게 느껴진다. 마치 식탁에서 마주한 친구의 세계가 평소에 보던 것보다 외롭고 깊었던 것처럼. 킬리만자로의 정상에 드넓게 펼쳐진 빙하의 광경이 내게는 오직 경외감과 괴로움을 주었던 것처럼. 어느 소설이나 시도 세상은 단순한 거라고 말해주지 않았던 것처럼.


  그러나 우리는 소설 속 세상을 티끌만치나마 이해하기 위해 독후감을 쓴다. 책 옆에 공책을 펼쳐두고 인물표를 그리고 줄거리를 정리한다. <심플 스토리>의 세상은 대명사로 가득하다. 등장인물들은 이름으로 지칭되기보다 그, 그녀, 그들로 자주 불려진다. 우리는 그가 누구인지, 그녀가 누구인지, 그들은 누구인지, 대명사로부터 고유명사를 떠올리기 위해 수시로 앞 페이지를 뒤적인다. 대명사에서 고유명사를 떠올리는 것은 독자의 몫이다. ‘그’가 마르틴이 되고 에른스트가 되며 ‘그녀’가 한니가 되고 제니가 되는 것. ‘그들’이 알텐부르크의 사람들이 되고 ‘우리들’이 될 수도 있음을 상상하는 것. 모두가 책을 읽고 독후감을 쓰는 - 그리고 누군가의 독후감을 읽어주는 - 사서 고생하는 우리의 몫이다.

  어쩌면 저자의 의도는 이런 것인지도 모른다. 이토록 복잡한 세상을 조금이라도 이해하기 위해 독자 당신은 노력할 용기가 있는지. 친절하기에는 살아남기도 벅찬 세상에서 당신은 타인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손을 내밀어줄 수 있는지. 당신은 포기하지 않고 이 괴로운 이야기를 끝까지 읽어줄 수 있는지. 그리하여 마지막 책장을 덮을 때는 이념을 가르는 장벽이 아니라 사람 사이를 가르는 장벽을 조금이라도 허물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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