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으는 양탄자 타고 이곳저곳
알프스는 1200Km 길이의 산맥으로 유럽의 8개국에 걸쳐 뻗어있다. 모든 지역이 아름답고 장엄하지만 서쪽 알프스에서는 프랑스의 몽블랑, 중앙 알프스는 스위스의 융프라우, 동쪽 알프스는 이태리의 돌로미테가 가장 풍광이 뛰어나다고 알려져 있다. 이태리 돌로미티는 몇 년 전 트래킹을 다녀온 적이 있어서 이번 여행에는 프랑스 몽블랑과 스위스 융프라우와 필라투스를 가기로 했다. 필라투스는 융프라우에 비해 덜 알려졌지만 루체른호수와 더불어 스위스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이다. 우리는 먼저 몽블랑에 가까운 샤모니 캠프장으로 갔다.
샤모니는 몽블랑 산에 가까운 도시로 첫 동계올림픽이 열린 곳이다. 주변 알프스 산들로 갈 수 있는 케이블카가 있어서 연중 관광객들로 북적인다. 관광포인트는 몽블랑에 가깝고 만년설에 덮인 에귀 뒤미디(Eguille du midi) 봉, 그 건너편 스키장과 하이킹코스가 있는 플레제르(Flegere) 봉, 그리고 빙하계곡인 메르드글라스(Mer de Glace)가 있다. 에귀 뒤미드와 플레제르는 케이블카로 올라가고 메르드글라스는 산악열차와 케이블카를 탑승해야 한다. 에귀뒤미드 봉에서 추가금액을 지불하면 몽블랑 파노라마 곤돌라를 타고 5Km의 만년설 상공을 감상할 수 있으며 스키리프트를 타고 이태리까지 갈 수 있다. 이 모든 곳을 다 관람하려면 최소 2일은 다녀야 하고 플레제르봉에서 하이킹이라도 하려면 3일이 소요된다. 샤모니 자체가 훌륭한 구경거리여서 우리는 캠프장에서 4박을 체류하기로 했다. 캠핑장 바로 앞에 버스정류장이 있어 20분 이면 기차역, 케이블카, 샤모니시내를 갈 수 있는 좋은 위치이다.
우리는 3일 자유이용권을 구입했다. 자유이용권은 3일 동안 주요 관광지인 에귀 뒤미드, 플레제르, 메르드글라스뿐만 아니라 기차, 버스등 모든 대중교통도 이용가능하다. 자유이용권을 이용하여 세 곳의 관광뿐만 아니라 플레제르 산을 하이킹하고 에귀 뒤미드에서 파노라마 곤돌라를 타고 이태리로 넘어가서 점심을 먹고 오기로 했다. 1일권은 90유로인데 3일권은 120유로이고 65세 이상은 15% 할인하여 1인당 102유로이다.
지난달 체코에서는 65세 이상은 대중교통이 무료였고 관광지 입장료는 50% 할인이었다. 이후 유럽여행 중 입장료 구입할 때는 65세 할인여부를 확인한다. 에든버러 군악축제 입장권은 할인이 없었는데 프랑스에서는 15% 할인이다. 15% 할인만 해도 어디인가?. 18 스위스 프랑이면 피자가 한판이다. 티켓 구입할 때 65세 이상이라고 하면서 여권을 보여주었는데 확인을 안 한다. 왜 나이 확인을 안 하느냐고 물었더니 나이를 어리다고 속이는 사람은 있어도 많다고 속이는 사람은 없단다. 하긴 할인받으려고 나이 많다고 속이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래도 조금 서운하다. 내가 65세 이상이라고 하면, 이쁜 여직원이 아저씨 거짓말 하지 마세요 하면서 여권을 확인한 다음 "와우! 정말 젊어 보이시는군요" 해 주기 바랐는데... ㅎㅎ
자유이용권을 구입하면 작전을 잘 세워야 한다. 소위 본전을 뽑으려면 개장 및 폐장 시간 그리고 사람이 몰리는 시간등을 잘 파악하여 순발력 있게 움직여야 한다. 케이블카, 곤돌라, 스키리프트, 산악열차, 버스를 적절히 이용하고 기상에 따른 방문 우선순위등을 잘 선택해야 한다. 첫날은 세 곳 모두를 대충 훑어보고 어디가 좋은가를 확인한후 다음날 집중 공략 하기로 했다. 그리고 하루는 만년설로 뒤덮인 알프스를 보면서 하이킹할 수 있는 플레제르봉 코스를 걷기로 했다.
맨 처음 올라간 에귀 뒤미드 봉은 케이블카를 중간에 내려서 바꿔 타고 총 20분 정도 올라간다. 두 번째 케이블카는 상승각도가 60도는 돼 보이는 급경사각으로 올라가서 스릴이 넘친다. 에귀 뒤미드 봉은 해발 3800미터 여서 저산소증이 느껴진다. 가만있으면 머리가 조금 멍한 정도이지만 계단을 올라가거나 빨리 걸으면 현기증이 난다. 에귀디미드 봉에서는 만년설에 뒤덮인 몽블랑을 비롯한 여러 봉우리와 샤모니시 그리고 빙 둘러 펼쳐지는 산악지대를 볼 수 있다. 하지만 제대로 된 만년설을 구경하려면 파노라마 곤돌라를 타야 한다. 곤돌라는 추가비용 35유로를 내야 해서 케이블카로 올라온 관광객 중 절반 정도만 타는 것 같다. 우리는 추가비용을 내고 파노라마 곤돌라를 탑승했다. 곤돌라는 30분 정도 만년설 위를 지나가면서 몽블랑을 비롯한 알프스 산맥의 절경을 보여준다. 하얀 설원과 크레바스 그리고 그 위를 트래킹 하는 간 큰 트래커들을 내려다보는 30분의 시간은 나르는 양탄자를 탄듯한 황홀한 시간이었다.
아침 일찍 케이블카로 에귀 뒤미드봉을 올라갔는데 내려오는 케이블카에 사람들이 많다. 저 사람들은 뭐지? 알고 보니 이태리 지역에서 리프트와 곤돌라를 타고 프랑스로 오는 사람들이다. 이태리가 숙식비가 싸서 이태리에서 자고 아침 일찍 프랑스 샤모니로 건너오는 관광객들이라고 한다. 알프스 여행에 좋은 정보이다. 훨씬 저렴하게 샤모니와 몽블랑을 관광할 수 있는 팁이다.
에귀디미드 봉을 내려와 인근에 있는 산악열차 역으로 가서 열차를 타고 메르드글라스로 간다. 레일 중간에 톱니바퀴가 있는 산악열차는 속도는 느리지만 알프스의 급경사를 뚜벅뚜벅 잘 올라간다. 산악열차는 산비탈을 휘돌아 올라가면서 확 트인 알프스의 웅대한 풍광을 보여준다. 종착역에 도착하여 전망대로 갔더니 푹 파인 커다란 골짜기에 빙하의 흔적이 보인다. 8월이라서 더위로 빙하가 녹아버린 건지 아니면 온난화로 빙하가 녹았는지 알 수 없지만 거대한 골짜기에 하얀 눈이 뒤덮인 빙하는 안 보이고 흙과 자갈과 바위뿐이다. 거기서 곤돌라를 타고 계곡으로 내려갔더니 빙하를 파서 만든 얼음동굴이 나온다. 전망대에서 봤을 때 흙과 자갈만 보였던 계곡이 흙 아래로는 거대한 얼음덩어리였다. 파란색이 도는 얼음동굴 안에 얼음 조각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안내센터에 들렀더니 연도별 빙하사진이 전시되어 있고 온난화에 의해서 빙하가 축소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불과 100년 전만 해도 지금의 빙하보다도 거의 50미터가 높았으며 몇십 년 후에는 지금의 빙하가 소멸될 것이라는 우울한 설명이 곁들여 있었다.
마지막 방문지는 플레제르봉이다. 이곳은 겨울철에 스키장으로 변한다. 스키리프트가 거미줄처럼 연결되어 있다. 여름이라 소수의 리프트만 운영되고 있었지만 그 리프트만 타고도 산 정상까지 올라가서 건너편에 있는 몽블랑과 만년설에 덮인 알프스의 멋진 모습을 볼 수 있다. 플레제르 봉에서는 산정호수인 블렁호까지 왕복하는 멋진 하이킹 코스가 있다. 이 하이킹 코스는 걷는 동안 만년설에 덮인 몽블랑이 계속 시야에 들어오는 멋진 코스이다. 우리는 둘째 날 플레제르 하이킹 코스를 걸었다. 몇 년 전 갔었던 돌로미티처럼 바위 투성이의 길이었으나 종착지인 호수에서 눈 덮인 알프스를 바라보는 광경은 한 폭의 그림이었다. 플레제르봉에서 내려올 때도 스키리프트와 케이블카를 탄다. 리프트를 타고 내려오면서 보니 계곡 건너편으로 보이는 눈 덮인 봉우리들이 아름답다 못해 환상적인 모습이다. 리프트에서 내리지도 않고 오르락 내리락을 반복했다. 이게 자유이용권의 묘미이다.
마지막날 또다시 세 군데 모두를 또 다녀왔다. 워낙 아름다운 곳이라 두 번 세 번 가도 질리지 않는다. 사진도 많이 찍었지만 머릿속 뇌세포 속에 각인이 될 수 있도록 아름다운 모습을 보고 또 봤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에귀디미드에 올라갔더니 짙은 안개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날씨가 좋았으면 파노라마 곤돌라를 타고 이태리로 가서 점심을 먹고 올 계획이었는데 짙은 안개로 파노라마 곤돌라가 운행되지 않았다.
알프스도 멋있지만 샤모니 시 자체도 몹시 아기자기 아름답다. 샤모니는 거대한 알프스의 기다랗고 좁은 계곡에 위치해 있다. 좌우 양쪽에는 만년설로 뒤덮인 알프스가 펼쳐지고 도시 사이로는 알프스에서 흘러나온 빙하녹은 물이 흐르고 있다. 개천을 따라 시가 조성되어 있고 스위스 스타일의 건물들로 인해 도시가 동화 속에 나오는 마을처럼 이쁘고 앙증스럽다. 우리는 매일 산에서 내려오면 샤모니 시내로 가서 관광객들 틈에 끼어 걷고 쇼핑하고 차 마시고 식사하면서 아름다운 샤모니를 즐겼다. 샤모니 시내에 있는 레스토랑과 카페에는 전 세계에서 몰려온 관광객들이 모여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프랑스 샤모니 캠핑장에서 4박을 하고 스위스 융프라우 캠핑장으로 이동했다. 지금까지 한 달여 여행 중 가장 오래 머문 캠핑장이다. 샤모니에서 융프라우는 가까운 갈로 가면 200Km 정도지만 우리는 스위스 레만호에 있는 중세의 시옹성과 휴양지를 들른 다음 먼 길을 돌아 융프라우 캠프로 갔다.
시옹성은 프랑스와 스위스에 걸쳐있는 레만호의 동쪽 끝에 위치한 중세의 성이다. 호수에 건설되어 레만호수와 조화가 되고 호수 건너편에는 알프스 산들이 그림처럼 펼쳐져있다. 유럽에는 성당만큼이나 많은 성들이 있어서 성 자체는 별 흥미가 없다. 그러나 시온성은 호수 위에 건설되어 산 위에 있는 성에 비해 부드럽고 친근해 보인다. 물 위에 건설되어 방어에 유리한 점이 있겠으나 에든버러 성처럼 절벽에 세워진 성보다는 취약해 보인다. 그래서 시옹성은 전성기 시절에는 레만호 동서를 통제하는 중요한 역할을 했으나 세력이 약화되자 이민족의 공격에 하루를 버티지 못하고 항복했다고 한다. 주인이 수시로 바뀌면서 성의 기능보다는 감옥, 군사보급기지 등으로 이용되었다고 한다. 입장료가 15유로인데 60세 이상은 15% 할인해 준다. 프랑스는 65세 이상, 스위스는 60세 이상 15% 할인이다. 어른에 대한 예우를 하는 걸 보니 감사할 일이지만 50% 할인해 주는 프라하에 비해서는 많이 부족하다.
시옹성을 지나 10분쯤 가면 휴양지가 나오고 프레디 머큐리의 동상이 있다. 가수 프레디머큐리가 이곳에서 2년여 휴양하고 작곡도 했다고 한다. 레만호의 아름다움과 온화한 기후가 세계적인 가수를 이곳으로 불렀나 보다. 죽은 지 30년이 지났어도 수많은 팬들이 이곳을 방문하여 그의 동상 앞에 꽃을 올려놓고 프레디의 포즈를 따라 하며 사진을 찍는다.
캠핑카는 버스 크기라서 주차하기가 쉽지 않다. 버스 운전사는 승객이 내리면 외곽으로 빠졌다가 연락을 받고 태우러 올 수 있지만 우리는 모두 함께 움직여야 하므로 주차에 애를 먹었다. 주차장이 비었다 하더라도 주차선 서너 개를 차지해야 해서 다른 차들에게 눈치가 보인다. 도시로 들어가서 관광하거나 식사하는 것은 모험이었으며 관광객 많은 프레디 머큐리 동상 주변에 주차하는 것도 커다란 도전이었다.
시옹성과 프레디머큐리 동상을 관광하고 마트에서 1주일치 식품을 구입한 후 융프라우에 가장 가까운 융프라우 캠핑장으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