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야간비행 Nov 21. 2024

대만 타이베이 한달살이를 시작하며

타이베이의 첫 주는 밀린 숙제하기

    

2024.10월 초 80일간의 유럽여행을 마치고 귀국했다. 80일간 집을 떠나 있었더니 이런저런 일들이 나를 기다린다. 2주일에 걸쳐 밀린 일들을 처리하고 나니 좀 한가해져서 캠핑카 여행기를 쓰려고 스터디카페를 찾았다. 노트북을 폈는데 오랫동안 글쓰기를 안 해서인지 집중이 안되며 나도 모르게 인터넷으로 다음 여행지를 찾고 있다. 다음 여행지로 대만 타이베이 한 달 살기를 결정하고 숙소와 항공을 예약했다. 여행기간은 아버님 기일을 고려하여 11.6~12.6 한 달로 했다. 대만으로 결정한 것은 기간 동안 20도 전후로 날씨가 적당하고 한 달만 지내다 귀국해야 하므로 항공권 가격이 저렴한 가까운 곳을 선택했다. 12.6일 귀국하면 아버님 제사 후 다시 출국하여 겨울 3개월간 라오스, 캄보디아, 발리에서 한 달씩 살기로 하고 숙소와 항공을 함께 예약했다.   

 대만 출국까지 2주일간 한국의 가을을 즐기기 위해 단풍을 찾아다녔다. 여행카페에서 가는 버스를 타고 설악산, 지리산, 두타산과 서울 근교 산들을 다녀왔다. 며칠 전까지 유럽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곳만 찾아다녀 내 눈이 높을 대로 높아진 상태이지만 한국의 산야는 정말 아름답다. 야성이 넘치는 스코틀랜드의 대자연, 프랑스와 독일의 울창한 숲도 대단하지만 설악산의 흘림골, 주전골, 12 선녀탕 계곡은 그보다 더 뛰어난 절경이다. 오대산 선재길, 두타산 배틀바위, 지리산 피아골도 아름다우며 하다못해 서울 주변에 위치한 북한산, 도봉산, 수락산만 해도 알프스를 제외한 유럽 어느 산에 뒤처지지 않는다. 올해는 단풍이 늦어서 11월 초가 되어도 제대로 된 단풍이 없어서 실망이긴 했지만 산 자체로 만도 너무 좋았다. 우리나라 금수강산의 아름다움을 새삼 느끼게 하는 여행이었다.     

설악산 흘림골: 유럽 어디서도 이런 아름다운 산야를 보지 못했다

지인들에게 여행계획을 알리니 방금 들어왔으면서 뭘 또 나가느냐고 걱정한다. 나 역시 한국에서 좀 지내다 나갈까 하는 유혹이 든다. 하지만 내가 세운 계획을 밀고 나가기로 했다. 나는 7년 전 환갑기념으로 자서전을 썼으며 퇴직 후에는 여행작가로 경력전환하여 세계여행을 다니며 여행기를 쓰겠다고 나 자신과 약속했다. 75세가 될 때까지 100개 국가를 여행하고 그중 50개 도시에서 한 달 살기 하면서 여행기를 쓰기로 했다. 해마다 6~7개국에서 한달살이 하고 별도로 두세 달 배낭여행을 하면서 틈틈이 글을 써야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  

    

퇴직 후에 유유자적 즐기면서 여행을 하는 것이지 그렇게 빡센 목표를 세우고 힘들게 여행하느냐고 핀잔을 주는 지인도 있다. 맞는 말이다. 나도 가끔은 흐느적거리고 싶은 유혹을 느낀다. 하지만 평생 목표를 세우고 살아온지라 목표가 없으면 재미가 없고 나태해진다. 목표가 있어야 열심히 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즐거움을 느끼며 달성했을 때 성취감을 느낀다.     

두타산 무릉계곡

여행도 마찬가지다. 목표 없이 하면 금방 지루해진다. 퇴직했으니 여행이나 한번 해볼까 하는 사람은 1년씩 여행 못 다닌다. 가보면 거기가 거기라서 호기심도 사라지고 투입한 돈, 시간, 노력에 비해 즐거움이 별로여서 6개월쯤 여행하다 보면 그만둔다고 한다. 여행을 하는 목적과 목표가 명확해야 1년이건 2년이건 지치지 않고 다닐 수 있다. 여행 다니다 보면 몇 년째 열정적으로 여행하고 있는 5060을 볼 수 있다. 부부가 다니기도 하고 혼자 다니기도 한다. 혼자 10년 넘게 여행하고 있는 내 또래 여성도 만났다. 그분들과 얘기하다 보면 몇 개국 다녀왔다는 얘기와 함께 다음에는 어디를 갈 거라는 얘기를 한다. 모두 여행의 목표가 있다. 나는 75세까지 100개 국가를 여행하고 그중 50개 도시에서 한 달 살기 하면서 체험하고 느낀 점을 글로 쓰겠다는 목표가 있기 때문에 편한 집 두고 꾀죄죄한 모습으로 힘들게 세상을 떠돌고 다니면서도 지치지 않는다.   

 

 11.6일 대만에 도착했다. 숙소는 여느 때처럼 주변에 식당, 카페, 마트, 교통, 운동할 수 있는 장소 등을 고려하여 찾았다. 임박해서 에어비엔비로 찾으니 내 조건에 맞는 숙소가 없다. 부킹닷컴으로 월 160만 원에 조식까지 주는 가성비 좋은 호텔을 예약했다. 대만은 의외로 숙소비가 비싸다. 동남아시아에 비해 30~50% 정도 비싼 듯하다. 함께 예약한 라오스, 캄보디아, 발리는 고급 숙소인데도 월 130만 원 수준이다.     


공항에 도착한 후 트레블 월렛으로 대만달러를 인출하고 한국의 교통카드에 해당하는 이지카드를 구입했다. 이후 전철을 타고 호텔부근 기차역에 내린 다음 걸어서 호텔로 갔다. 해외여행을 자주 했더니 해외 나가는 것이 제주도 가는 정도로 간단하게 느껴진다. 전에는 사전에 준비도 많이 하고 미리 환전도 하였으나 이제는 출발 한두 시간 전 조그마한 기내 캐리어에 간단하게 짐을 싸고 현지에 도착한 후 트레블 월렛 카드로 현금을 인출해서 사용한다. 여행 유튜버들이 전 세계 곳곳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해주어서 해당지역 유튜브 몇 개만 보고 가면 공항에 처음 내려도 전에 와본 것처럼 낯설지가 않다.  

   

호텔에 도착했더니 내가 예약한 방은 창문이 없는 구석방이니 돈을 더내면 좋은 방으로 바꿔준다고 한다. 어쩐지 호텔이 싸다 했더니만 꼼수였다. 사진에는 창문도 크고 고급스러워 보였는데 돈 더 내라고 하는 걸 보니 대만이나 중국이나 같은 중국사람인가 보다. 창문 없는 방에 지낼 수는 없는 일이라서 추가돈을  내고 방을 바꿨으며 더 이상 중국인에게 속지 않도록 조심하고 있다. 호텔 주변을 돌아보니 커다란 공원이 가깝고 주변에 마트와 음식점도 많고 교통도 편리해서 한 달 지내기는 괜찮아 보인다.      

타이베이에 흔한 길거리 음식점.

시내버스를 타고 도시를 돌아봤다. 버스 정류장마다 전광판에 버스정보가 나오고 버스비가 한국돈 600원 정도로 저렴하며 한국처럼 카드를 찍고 오르내리면 되어서 편리하다. 창밖으로 보이는 건물들의 간판이 한자여서 낯설지도 않다. 도시 주요 지역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낡은 4~5층 건물이다. 강북도심이 재개발되기 전인 서울의 이삼십 년 전처럼 느껴진다. 대만의 명동이라고 하는 서문시장은 딱 88 올림픽 즈음의 명동이다. 한때 아시아의 4마리 용이라고도 했고 TSMC 같은 세계적인 반도체 기업이 있어서 우리나라와 동급인 줄 알았는데 와보니 중국, 태국, 베트남보다 약간 높은 수준이다.      

타이베이 간선도로변의 모습: 대부분이 매우 낡은 저층 건물이다. 

호텔 주변과 도시를 훑어보고 나니 대만에서 한 달간 어떻게 지낼 것인가에 대한 그림이 그려진다. 프라하처럼 볼 것 많은 도시도 아니고 냐짱처럼 휴양지도 아니고 쿠알라룸프르처럼 화려한 도시도 아니고 치앙마이처럼 관광객 친화적인 도시도 아니고 삿포로처럼 말이 통하는 곳도 아니다. 지금까지 한달살이 했던 도시중 가장 지루한 한달살이가 될 것 같은 암울한 생각이 든다. 별 재미없어 보이는 곳이지만 나 스스로 즐거움을 찾아야 한다.


박물관등 도시구경은 삼사일이면 충분할 것 같고 나머지 27일 지낼 루틴을 만들어야 한다. 여느 한달살이처럼 식사, 글쓰기와 운동이 핵심이고 짬짬이 시내 다니며 현지인의 생활을 체험해야 한다. 다행히 숙소에서 시내 중심가인 서문시장까지 버스 두 정거장이다. 아침은 호텔조식을 하고 점심은 버스를 타고 서문 시장에 가서 맛집을 찾아다닐 생각이다. 버스로 오가는 시간 그리고 식당을 찾아다니는 자체가 현지인의 생활이기 때문이다. 


점심 전후 낮시간에는 노트북 작업을 하고 저녁에 운동하면서 하루를 보내기로 했다. 대만은 카페문화가 없는 듯 조그마한 커피숍은 있지만 노트북 작업을 할만한 크고 인테리어 된 좋은 카페는 안 보인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호텔방과 레스토랑에 노트북 작업 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 조식 후 두 곳을 오가며 노트북 작업을 하고 있다. 호텔의 가장 좋은 점은 5분 거리에 여의도 고수부지 10배쯤 되는 커다란 공원이다. 공원을 한 바퀴만 돌아도 만보가 나온다. 숙소를 이곳으로 정한 가장 큰 이유강 바로 이공원 때문이었다.    

호텔 5분 거리의 신베이 도시공원 : 여의도 고수부지 10배는 돼 보인다.

도착 다음날부터 노트북을 펴고 글쓰기를 시작했다. 나에게 글쓰기는 그리 즐거운 일은 아니다. 여행작가 지망생으로서 여행을 했으면 브런치에 여행기를 써서 올려야 하는 숙제이다. 가끔은 숙제하는 것이 즐거울 때도 있지만 강도는 그리 크지 않다. 그러다 보니 글 쓰는 것보다 더 즐거운 일이 있으면 글을 안 쓰게 된다. 서울에 있으면 즐거운 일이 많다. 서울에 있을 때면 매주 3~4일은 카페여행을 한다. 내가 가입한 여행카페는 운영자들이 코스 개발을 잘해서 거의 매일 금수강산 좋은 곳만 찾아다닌다. 동일한 장소 라도 계절별로 분위기가 달라서 여러 번 가도 흥미롭다. 동호회원들과 여행하면 함께 어울려 식사하고 막걸리도 한잔 하면서 무척 즐겁다. 혼자서 서울주변 둘레길을 걸어도 즐거우며 흔한 뒷산에만 올라가도 아기자기한 산책길을 걸을 수 있어서 좋다. 극장에 가도 즐겁고 친구들 만나 당구치고 술 한잔 하는 것도 즐거우며 온통 즐거운 일 천지이다. 그래서 서울에서는 글 쓸 시간이 없다. 노느라고.    

두타산 베틀바위: 한국에 있으면 즐거운 일 천지이다.

대만에 오니 밥 먹고 운동하는 시간 빼고는 즐거울 일이 없다. 노트북 놀이가 유일한 즐거움이다. 노트북으로 유튜브 시청하는 것이 가장 즐거운 일이고 다음이 글쓰기이다. 유튜브는 이것저것 보다 보면 훌쩍 시간이 가버려서 가급적 보지 않으려 하고 글쓰기에 집중한다. 도착 다음날부터 호텔 식탁에 앉아 그동안 밀린 숙제를 시작했다. 지난봄  33일간의 중앙아시아 배낭여행과 20일간의 중국 실크로드 배낭여행을 다녀와서 여행기를 쓰지 못했다. 그리고 이번 50일간의 캠핑카 여행기도 써야 한다. 11.6일 도착 후 2주간 열심히 글을 써서 50일간의 유럽캠핑카 여행기를 완성했다. 다음숙제는 지난봄의 중앙아시아와 중국실크로드 배낭여행기이다. 여행 중 촬영한 영상과 사진을 보면서 6개월 전의 기억을 더듬어 글을 쓸 생각이다. 

2024.5월에 간 키르기스 스탄: 타이베이 한 달 살기 중 여행기 작성할 예정임

글 쓰려면 한국에서 하지 뭐 하러 돈 들여 외국 나가서 그러고 있냐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앞에서 썼듯이 50개 도시에서 한 달 살면서 글을 쓰겠다는 목표를 향해 묵묵히 나아갈 뿐이다. 호텔에 앉아 글을 쓰지만 점심 저녁 먹으러 식당 찾아다니고 구글번역기로 이야기하는 것만도 현지인의 생활을 체험하는 것이며 공원 산책 중 볼 수 있는 여러 행사를 보는 것도 경험의 폭을 넓혀주는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이다. 물건을 사지 말고 경험을 사라고 하지 않는가!!         

공원 걷기 중 본 앵무새 동호회:  앵무새 십여 마리가 주인의 신호에 함께 날아다니다 주인의 신호에 다시 돌아온다. 신기했다.


작가의 이전글 유럽 캠핑카여행: 융프라우, 루체른  그리고 귀국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