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나 나를 좀 살려주세요
이번 임신과 출산에서 나를 가장 힘들게 한 것은 낳을 때의 고통도, 회음부 절개도, 훗배앓이도, 너무나 작은 아이에 대한 불안함도 아닌 임신소양증이다.
임신 38주에 배부터 시작해 출산과 함께 온몸으로 번져나간 두드러기와 가려움. 임신후반부터 출산 후 30일인 지금까지 가려움과의 지난한 사투를 벌였다.
온몸에 두드러기는 오돌토돌해져서 만지면 징그럽고 보면 더 징그럽다. 무엇보다 징글징글하게 가렵다. 온몸이 가려움으로 오그라든다. 밤에는 특히 더 심해져서 산부인과와 조리원 일주일간 잠을 자지 못했다. 등을 편안히 침대에 대고 누울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등에도 두드러기가 심했는데 누우면 눌려서 엄청난 가려움으로 돌아왔다). 산후조리를 해야 하는 산모인데 얼음팩으로 찜질을 하고 시원한 물로 샤워를 했다.
낮에 쉬면서도 침대에 누울 수는 없다. 앉는 게 그나마 최선이다. 아무것도 안 하는 것 같아도 가려움을 참고 있는 것이라 에너지와 정신력이 쭉쭉 떨어졌다. 무엇보다 잠을 못 자는 것이 너무 괴로워 조리원에서 보내는 첫날밤에는 등에 얼음팩을 대고 누워 세상 모든 신을 찾으며 간절히 기도했다. 제발 아무나 나 좀 살려달라고.
극심한 가려움을 7일째 견디며 가려움이라는 게 정말 만만하게 볼게 아니라고 느꼈다. 일상이 거의 무너지고 삶의 질이 바닥으로 수직낙하한다. 평생 이 가려움을 온몸에 가지고 살아가야 한다면 나는 살아갈 수 있을까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수유 때문에 약을 못쓰고 있다가 일주일 만에 결국은 참지 못하고 피부과로 향했다. 의사쌤은 밤에 도통 잠을 잘 수가 없다는 내 이야기를 듣고 고민하더니 잠깐 수유를 중단하고 약을 먹자고 하시고는 스테로이드와 항히스타민을 처방해 주었다. 주사도 맞았다.
그러고도 피부가 금세 호전되지는 않아서 일주일간 수유를 중단하고 약을 먹었다. 일주일쯤 되니 발적 된 곳이 한결 수그러들고 가려움도 살만한 정도로 가라앉았다. 대신 일주일 동안 수유를 하지 못해 내 피 같은 모유는 유축 후 버려졌다. 2일 정도는 초유가 더 나왔는데 아기에게 먹이지 못하고 버릴 때 마음이란. 너무 아깝고 속상하고 안타까웠다. 좀 더 참고 모유를 먹일걸 그랬나 하는 후회도 들었다(약 먹고살만하니까 이런 생각이 든 것일 테다).
모유를 버릴 때마다 초조해져 얼른 약을 끊고 다시 수유를 하고 싶었다. 피부과를 가서 이제 살만하다며 수유를 하고 싶다고 의사 선생님을 졸랐다. 의사 선생님은 스테로이드를 제외한 약을 처방해 주시고는 먹다가 하루 안 먹어보고 그래도 괜찮다 싶으면 약을 안 먹어도 되겠다고 하셨다. 치료는 광선치료로 하자고 하시면서. 그날 바로 약을 끊고 다음날부터 수유를 시작했다. 이제 열심히 유축한 모유를 버리지 않아도 된다. 약 먹을 때보다 가려움이 조금 더 올라오긴 하지만 버틸만하다. 긁지만 않으면 심해지지 않을 거고 긁지 않고 얼음찜질로 버틸만한 가려움이다.
그런데 집으로 오고 나서 가려움이 점차 가라앉지 않고 점점 심해졌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두 달만 모유수유를 하고 싶은데 (그래봤자 아기 간식 정도의 양이지만 말이다) 돌아온 지 2주 만에 참을 수 없는 지경의 가려움으로 돌아갔다.
조리원은 첫째도 없고 둘째는 신생아실에서 봐주고 나는 모자동실 시간 2번만 견디면 되었다. 물 마실 시간도 있고 밥과 간식까지 시간 맞춰 챙겨주고 내가 할 집안일 같은 것도 없다. 그러나 집에는 한창 설칠 나이인 네 살배기 아들이 있다. 한시도 가만히 있지 않으며 내 몸을 건드려댄다. 발로 차고 손으로 만지고 몸으로 문지르고 난리다. 팔, 다리, 몸통, 등 가리지 않는다. 아이가 살짝 닿을 때마다 가려움은 내 몫이다. 한창 울 나이인 신생아 역시 이제 내가 안아주어야 한다. 신생아를 안아줄 때 머리를 받치는 팔 쪽에 두드러기가 심해졌다. 게다가 얘를 안아줘야 하니 팔에는 스테로이드가 포함된 연고도 바를 수가 없다. 이제 집안일도 남의 일이 아니다. 산후조리사 선생님이 오시긴 하지만 저녁에 생기는 젖병과 깔때기 설거지부터 기타 자질구레한 집안일들을 해결해야 한다. 결국 손과 팔은 끊임없이 자극에 노출되면서 두드러기가 심하게 올라왔다. 나도 모르게 긁고 있는 나를 발견하고 다시 약을 먹기로 했다. 또다시 모유수유는 잠시 중단이다. 고작 두 달 젖먹이는 것도 이렇게 어려울 일인가 싶다.
가려움증이 있을 때 긁기는 마치 마약과 같아서 한번 시작하면 멈출 수 없고 긁는 그 순간의 쾌락은 너무나 달콤하다. 이후의 후폭풍은 말모다. 더욱 큰 갈증과 회복하기 어려운 상처로 돌아온다.
오늘밤도 간절히 기도하면서 잠들어야 할 것 같다. 누구든 저를 좀 살려주시고 이 가려움증이 지나가도록 도와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