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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otal Eclipse Aug 02. 2021

솜사탕 너, 재즈

<Misty> by Ella Fitzgerald

https://www.youtube.com/watch?v=rPOlakkBlj8







  

  향수를 뿌리지 않아도 향기가 나는 너는 뭐니?

 머리카락에서 얼굴에서 손가락에서 심지어 종아리에서도 온통 네 향기가 배어 나오는 걸.

 그건 로션의 향기도, 핸드크림의 향기도 아니야. 그런 것쯤 구별 못할 것 같아, 내가?

 사람들은 흔히 이런 향기를 살 냄새라고 하더라고. 부인하지 않겠어.

 그런데 그 살내음이 이토록 사랑스러울 줄이야. 

 면세점에서 산 향수가 화려한 향기로 나를 들뜨게 한다면

 너라서 나오는 향기는 은은하게 나를 포박해 전의를 상실하게 만들어 버린다니까.

 심지어는 말야.

 통화하는 너의 목소리에서도 난 그 향기를 맡을 수가 있어. 농담 아냐.


 안개 같아. 습기를 가득 머금고 있는.

 너와 함께 있으면 내 주위는 온통 너의 향기를 품고 있는 안개로 덮인다는 걸 아는지 모르겠어.

 나에게도 살내음이 난다고 너도 말했어. 기분 좋은.

 진짜야?

 그럼 얼마나 다행인지.

 후각이 감성을 그리도 뒤흔들어 버린다잖아.

 너와 내가 서로의 향기에 빠져 있다면 

 우리 절실함의 깊이도 한층 더하겠지. 


 우리

 나이가 들어 피부에 세월의 눈이 덮여도.

 여전히 서로의 향기는 가득할 거야.

 상상하기도 싫은 마지막 순간까지. 그러자 우리.

 서로의 냄새를 그리워하자. 난 자신 있어.

 너무 좋다.

 은은한 안개가 평생 나를 감싸 줄 테니.


 눈이 왔으면 좋겠다. 비가 내렸으면 좋겠어.

 습기가 많은 날, 후각은 더 민감해진다면서.

 네 향기를 흠뻑 들이마실 수 있게 

 눈이 와야 해. 비가 내려야 해 

 오늘은.


 


 

 재즈란 장르는 참 이상하지?

 슬프려 할 때 들으면 한없이 구슬퍼지기도 하고

 행복하자 마음먹으면 그렇게 부드럽게 쓰다듬어 줄 수가 없어. 

 저 깊은 감정의 울림이 목까지 차올라 탄생한 음악이라 그런 걸까...

 내가 요즘 듣는 재즈는 솜사탕 그 자체야. 너 때문인 거 알지?


 어두운 걸 그리 좋아하진 않지만 

 너와 함께 하는 오늘 밤은 어둠이 어울리겠어. 

 뿌연 안개와 함께 비는 부슬비가 좋겠네. 장대비는 아닌 것 같아.

 만약 눈이 온다면 포슬포슬한 감자 같은 눈이길 바라. 눈보라는 사절이야.


 따뜻한 조명 하나 말고는 다 어둠이어도 제격이겠어.

 세상 가장 부드러운 어둠 속, 재즈의 속삭임 속에서.


 얘기해 보자, 어둠이 걷힐 때까지.

 서로 태어난 순간부터 더듬어 보는 거야. 기억 안 나면 안나는 대로. 지어내도 상관없어.

 태어난 순간부터 널 만나기  전까지가 

 1부.

 널 만난 뒤 지금 이 순간까지가 

 2부.

 2부의 길이가 턱없이 짧겠지만 농도는 한층 짙을 거니까 그렇게 나눠도 되겠어.


 꿈같아. 

 내가 이렇게 행복해도 되는 걸까?

 너의 목소리, 갸우뚱하는 고갯짓, 찡긋하며 생기는 코의 주름.

 눈을 감고 있으면 너와 함께라도 얼마나 그리운지 모를 거야.

 그러나

 너의 목소리, 고갯짓, 코의 주름.

 이 모든 것들이 사라지고 네가 하나의 구슬로 변한다 해도.

 네가 존재하지 않는 것보단 얼마나 감사한 일일까.

 난 영원히 구슬을 품고 살아갈 거야. 구미호가 된 것처럼.

 그냥 품는 게 아니라 미친 듯 사랑하며 품고 있을 거란 얘기야.

 그게 너라면.   


 깨지지 않겠지, 이 멋진 시간들?

 널 보고 있으면, 넌 말야.

 신이 날 위해 맞춤으로 내려보낸 스파이 같아. 털어놓는 게 좋을 거야.

 네 정체는 뭐니?

 스파이라도 좋고 구슬이 되어도 좋아.

 함께 있어만 줘.

 그럴 거라 믿어.


 안이 어두우니 바깥이 꽤 잘 보인다, 그렇지?


 봐봐. 정말 안개가 자욱한 듯해. 

 비도 내리네. 부슬부슬.

 안개도 비도


 우리 둘 덮어주는 이불 같아. 사랑스러워.

 또 찡그린다.

 또 까딱거린다 너.


 사랑스럽긴.


 오늘도 솜사탕이 흐르네. 


 밤새워 듣자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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