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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otal Eclipse Aug 06. 2021

Breeze

<G선상의 아리아-관현악 모음곡3번D장조>by Bach

https://www.youtube.com/watch?v=Umwb3ElT6I0







  바람이 부드럽군요. 

 긴 머리를 가진 사람들이 유리한 날씨임에 틀림없어요. 

 너무 강해서 머리카락이 입에 들어가 숨을 막아버릴 무자비한 바람이 아니니까.

 슬로우로 변환하지 않아도 적당한 속도로 하늘거리며 반짝이는 마법의 머릿결이 포착될 테니까.


 머리가 많이 길었군요, 그새.

 아니 그새가 아니죠, 그동안. 정도가 적당하겠어요.

 짧은 머리도 귀여웠는데.

 긴 머리는...

 아름답다고 할 줄 알았죠?

 물론 아름다워요. 그런데.


 나보다 한참은 성숙하고 현명한 사람처럼 보입니다. 그때도 그랬지만, 그때보다 훨씬.

 자란 게 보여요. 굳어진 게 보입니다.

 그래서 거리감이 느껴지네요. 

 월등한 거리감이 느껴지는 게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열등감이 아픔을 잠식할 테니까.


 그래도 딱 10초만.

 오늘 같은 바람 속 서 있는 그대를 바라보고 싶군요. 

 비단 같은 갈색 머리가 바람을 따라 넘실거리는 모습은 본 적이 없어서.

 몹시 궁금해서 그렇습니다.


 내가 머리를 길러볼까요?

 풋-

 바야바 같을 거예요.

 얼굴이 보이지 않는 글이라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오늘처럼 실크 같은 날엔 신기한 것들이 많아져요.

 인간이란 존재는 왜 이성에게 끌리게 된 걸까요?

 종족을 이어가기 위한 DNA의 분투가 정답이겠죠. 

 자석의 원리와 같은 거 아니냐 하면 할 말은 없어요.

 힘없는 피조물일 뿐이니 우주의 법칙이 이끄는 대로 살아간다 해도.

 신기한 건 신기한 겁니다.

 핏덩이였던 한 마리의 어린 인간이 삶을 붙잡는 데 성공합니다.

 몇 년 지나지 않아 여전히 불완전한 한 마리의 소년이. 

 또 여전히 허점 투성이인 한 마리 소녀 앞에서 얼굴이 붉어지고 심장이 뛰는 것은.

 신기하다고 밖에 말할 수 없는 겁니다. 


 결국은 아픔으로 남게 될 이놈의 감정을

 DNA란 놈은 너무도 깊게 자기의 몸속에 새겨 넣어버렸던 겁니다.

 못난 놈.




 달콤한 것을 많이 먹으면 몸에 안 좋다는 사실에 화가 납니다.

 끊기 힘든 매력적인 술은 인간을 유혹하면서 정신과 신체를 망쳐버립니다.

 기쁘고 즐겁고 신나는 것들은 어찌 죄다 나쁜 결말로 이어지는 건지. 

 분노가 치밀어 오릅니다.

 몸에 안 좋은 것은 쓰게 만들고.

 달고 짠 것을 건강의 원천으로 만들었다면 무슨 걱정이 있을까요.

 그게 아니라면.

 몸에 안 좋은 것들이어서 더 달게 느껴지는지도 모를 일이겠습니다.

 안 좋다고 하면 더 하고 싶어 지잖아요.

 원래 쓴 맛은 천하일미 중 대장이었는데

 몸에 좋다고 하니 재미없어 버림받은 것일지도 모르겠군요.   

 

 사랑은 미각과도 같습니다.


 꿀의 수십만 배에 달하는 사랑의 달콤함은.

 최상급 포도주의 수억 배에 이르는 그녀의 짜릿함은.


 결국 몸에 좋지 않습니다. 정신적으로도 그렇습니다.


 더할 수 없이 달콤하고 짜릿한 감정일수록 비할 수 없는 행복으로 매듭지어져야 하는데.

 그렇지 않아요.

 본 적이 없어요.

 달콤했던 만큼의 쓴 맛으로, 이별이란 

 참을 수 없는 고통이 되어 돌아옵니다. 


 그러니 적당히 달콤해야 합니다. 짜릿함은 조절해 가면서 느껴야 하겠구요.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이유는. 그런 것입니다.

 왜 아름다운 것들일수록 앗아갈까요.

 왜 지극한 황홀은 환상으로 밖에 남을 수 없는 걸까요.   

 참 못됐습니다. 우주의 이치는. 

 

 머리가 짧았던 당신이 떠오릅니다.

 그러고 보니 당신에게도 살랑거리는 바람은 있었어요.

 비단결처럼 하늘대는 긴 머리는 아니었지만.

 뺨 주위에서 나타났다 사라지는 훨씬 귀여운 율동이었네요.

 그래서 좋았던 건.

 바람이 불어도 눈이 보이고 코가 보이고 입이 보였어요.

 당신의 얼굴이 완전히 가려지지 않았다는 거예요.


 한순간도 망각하기 싫은 당신의 얼굴.

 짧은 머리 덕분에 온전히 기억에 담겼네요.


 바람이 고마웠어요.

 

 당신의 짧은 머리가 고마운 것이었습니다.


 당신의 얼굴을 실은 바람이 내 얼굴을 쓰다듬습니다.


 오늘의 바람은 세상 무엇보다


 Bitterswe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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