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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otal Eclipse Aug 04. 2021

휘몰아쳐야만

[스페셜리스트]OST<All BecauseOfYou>by마이애미사운드머신

https://www.youtube.com/watch?v=JlEVX1zWUNY






  

  이별 후 감정은 요동을 치게 마련이지. 

 일정하게 연속되지만은 않아. 

 얼떨떨해 꿈인지 현실인지 분간을 하지 못하다가도 이내 날카로운 칼에 베인 듯 아픔이 닥치지.

 뾰족한 고통에 괴로워하다 보면 어느새 아픔은 묵직한 멍으로 바뀌기도 해.

 몸속 모든 것이 뽑혀 나가는 지옥을 겪고 나면 심장은 굳어버릴지도 몰라.

 인연의 부검의가 있다면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오해라는 칼로 난도질당해 곳곳에 자상을 입었습니다. 나약함이란 죄가 철퇴로 되돌아와 성한 곳이 없을 정도의 피멍이 들었군요. 회복은 참으로 어렵고 힘들겠습니다. 아니, 명복을 빕니다. 그럼... "


 사망선고를 받았어도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었어. 

 갑자기 모든 것들이 담담하게 변해버리는 순간이 찾아오거든. 

 물론 가짜야. 그 담담함이란. 

 더한 고통을 견뎌내기 위해서 심장이 상처 위 한 꺼풀 보호막을 치는 중이라는 거지.

 잠시 덮이는 보호막 때문에 담담한 것처럼 느끼는 거란 말야.

 그러니 불현듯 찾아온 담담함을 즐기더라도. 

 오해는 금물이야.

 곧 이전과 비교도 안 되는 무지막지한 시간들이 닥칠 거야. 

 알고 있어 난.


 그러니 너나 잘 견디라구. 

 아냐. 걱정 없겠네. 강하잖아 너. 

 미친 듯 모든 걸 다 바친 사랑을 했던 걸 보면 알아.

 모든 걸 다 바친 너와 나는 강한 사람이었다는 거야.

 그러니 우리 잘 견디자구.

 누가 더 미쳤는지 겨루어가며 사랑했던 것처럼

 누가 더 잘 이겨내는지 한번 해 보자구.

   

 실감이 나질 않아.

 당신도 그래요?

 

 이건 공상과학에서 나올 법한 삶이야.

 갑자기 너 없는 세상이 되어 버렸다니. 이게 말이 되는 거야?

 그건 상상 속에서도 가능한 이야기가 아니었잖아. 그런데 진짜 그렇게 된 거야?

 행복하게 잠자리에 들었던 언젠가, 죽을 듯 통곡하며 괴로워한 적이 있어.

 네가 등을 돌리는 꿈을 꾸었을 때.

 아무 신도 믿지 않는 나는 감사기도를 드렸지. 깨어나자마자 말이야.


 지금도 꿈일 거야.

 이럴 리 없거든.

 조금만 더 찔리고 베이면 이내 악몽은 끝나게 될 거잖아. 이제 거의 꿈의 마무리일 거야.

 침대에서 일어나면 또 기도할게.

 그리고 신을 믿을게.

 죽음보다 괴로운 꿈은 꿈이었다고.

 현실에선 언제나 그렇듯 너와 함께 할 거라고.

 그러니 앞으로 널 더 사랑해야 마땅할 거라고.

 가르침을 주는 신이니 어찌 믿지 않을 수 있겠어.


 꿈이야 이건. 

 



   TV에 강의를 잘하기로 유명한 한 교수가 나와 그렇게 얘기하는 걸 들었어.

 우리나라 사람들은 남들이 뭘 좋아하느냐 보다 싫어하느냐에 신경이 집중돼 있다네. 

 누군가가 좋아하는 걸 해 주려 하지 않고, 싫어하는 짓을 하지 않으려고만 한다나.

 그래서 안전하게 살 지는 몰라도 행복을 향해 마음껏 뛰어가지는 못한다는 거야.

 그런 것 같아. 맞는 말이야. 나도 그래. 평범한 한국인이니까.


 그런데 말이야.

 널 만나고 나서 모든 게 바뀌었어. 

 네가 무얼 싫어할지 보다 무얼 좋아하는지에만 집중이 되더라.  

 사랑에 빠진 직후는 다 그렇다고? 그건 그렇지.

 그런데 말이야.

 너로 인해서 날 감싸고 있는 모든 것들에게서 똑같은 감정을 느꼈다는 건 모를 거야.

 친구들이 한없이 소중하게 느껴지더라. 친구들이 좋아하는 걸 다 해주고 싶었어.

 강아지들이 훨씬 사랑스럽게 보였지. 맛있는 간식을 더 찾아주고 싶었어.

 우리 동네가 그렇게 아름다운 줄 몰랐어. 모퉁이에 어울리는 꽃을 심게 되었다면 믿겠어?


 너 하나 사랑하게 되니까.

 우주 전체를 사랑하게 됐고, 세상의 모든 것에 최선을 다하게 되더라.


 너 하나 떠나가고 나니까.

 우주 전체가 절멸해 버렸어. 

 찌꺼기라도 남아 있으려나. 개나 줘 버리라지.   

 사망선고 맞는 듯.

 나와 나를 둘러싼 모든 것들의 초라한 사.망.


 파도가 바위를 때려 부술 듯 폭군처럼 몰아치고 있어.

 다행이지.

 이럴 때 영롱하고 평화로운 바다가 말이 되겠어?

 바다가 없으면 이제는 정말 살 수 없을 거야. 확실해. 내 모든 걸 걸고 확실해.

 사랑이 가득 차 있을 때도 바다는 내 곁에 있어야 해. 

 내가 사랑하는 방법 중엔 우리 둘을 돕는 바다가 항상 있었어.

 난도질당한 영혼이 되었을 때도 바다가 없으면 큰일이야.

 미친 듯 이빨을 드러내는 파도가 없으면 내 영혼엔 시커먼 재가 가득 쌓이고 말 거니까.  


 다행이다. 바다가 있어서.


 지옥이 끝난 뒤 혹시라도 날 찾게 되면 바닷가로 와.

 난 거기 있어.


 그럴 리 없다는 걸 알아. 그냥 해 본 소리야.


 그래. 찢길 땐 과감히 찢겨주기로 하자. 긁혀서 난 상처는 아무 의미가 없지 않을까.

 찢기고 터지고 부서지고 조각나고 태워지고 밟혀야 하겠어.

 그 정도는 돼야 새로운 살이 돋아날 듯해. 차라리.


 다행히 폭풍우가 몰아치는 오늘.


 바다로 걸어 들어가야 할 날이야. 


 잔인하다. 


 내가 더 잔인해지는 수밖에.


 강한 너도 걱정 않겠어. 직진해서 걸어가.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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