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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otal Eclipse Aug 18. 2021

빛과 비, 그리고

[이영훈 소품집]중<빛속의비>by이영훈

https://www.youtube.com/watch?v=M1EGQSc5Wcs







  아주 오래전이었지.

 푸릇하다 못해 스치기만 해도 풀물이 들 것 같은 20대의 시간이 아주 오래전이라는 것부터가 슬픈 일이야.

 그래도 다행인 것이 있어. 다들 공감할 거야.

 꿈같던 그때로 우리를 안내해 주는 것들, 다들 간직하고 있을 거잖아.

 나도 그래.


 남아있는 사진이야 너무도 직접적인 타임머신이 되겠지만.

 역시 최고의 가이드는 음악 아니겠어?


 왔다가 사라져야 하는 힘없는 존재들임에도 정말로 우리가 자랑스러운 이유는

 시공간을 뛰어넘을 수 있는 장치를 만들어 냈기 때문 아닐까.


 흔히들 미술은 공간, 음악은 시간 예술이라고 하잖아.


 아니야. 단연코!


 시선을 그림의 좌에서 우로, 아래에서 위로 탐색해 봐.

 이전에 보았던 그림을 다시 한번 바라봐.


 시간에 흐름에 따라 인상이 달라져. 내 주위가 변한 까닭에 그림이 나에게 거는 말도 달라지는 거야.     


 음악? 

 당연히 연주가 이어져야 가치가 드러나는 게 음악이니 시간이야 그렇다 치고.


 푸르렀던 날에 내 곁에 있었던 음악들을 떠올려봐.

 시간 이동만 하는 게 아냐. 어느새 나는 그때의 공간으로. 

 음악이 나를 거기로 데려간 거지.

 이 음악을 재생할 때마다 난 그 길을 걷고 있어. 제목처럼 비는 오는데 빗물에 반사되는 빛은 찬란해.

 내리는 비 없이 반짝이는 날보다 한결 더 눈부신 날이야. 

 가을이라 피부에 닿는 공기의 느낌은 이리도 부드러울 수 없어. 부드러운 건 빛, 덤으로 공기.

 반짝이는 풍경들을 바라보며 우산을 접었어.

 

 그리고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네가 있어. 

 

 똑같아. 그때 그 공간 속으로 우리는 들어와 있는 거야.

 빛이 반사되는 각도, 밟히는 자갈의 촉감, 너와 나를 밀착시켜 준 우산.

 다 공간이 허락해야 하는 거잖아. 


 그러니 음악은 시간과 공간의 뒤틀림이야.  동의하지, 너도?

 

 오늘도 들어야겠다.

 웃는 네가 보고 싶어 미치겠어서.

 찬란했던 그날이 그리워 미치겠어서 말야.


 그 시간 속으로

 그 공간 속으로


 녹아들어 가야겠어 당장.



 

 기억 속에 네가 없다면 난 어떻게 살아가고 있었을까?

 상상이 되질 않아.

 구슬처럼 내 속을 또르르 굴러다니는 선율 덕분에 

 죽을 때까지 너의 모습은 잊지 않을 테니 얼마나 다행인지. 

 유형의 우리는 이 세상에 남아있지 않겠지만.

 여전히 남아있을 흔적들은 우리를 불멸의 경지로 이끌어 주게 될 거야. 그러니 안심하자.


 너만을 사랑할게.

 너만을 위할게.


 참으로 무서운 말이야. 

 '너만 사랑할게'라는 말만 들으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지지?

 어렵지 않은 일이야. 너만 사랑하면 되는 거니까. 

 Not Anybody Else But You! 세상에서 제일 쉬운 일이지. 눈감고도 할 수 있어. 


 그런데 말이야. 

 너만을 사랑하니 '너만을 위할게'까지 들어가면 

 얘기가 달라져.

 너만을 위한다는 건

 너 외의 모든 걸 위할 수 없다는 뜻이야. 진정성이 있다면 그게 맞아.

 그래서

 진심으로 너만을 위한다는 건

 몹시도 위험하고 심각한 결심이 동반돼야 하는 각오라고 생각해.

 그러니 진심으로 너만을 위했다면

 난 너 외의 모든 것들로부터 외면받았겠지. 미움받았을 거야. 심하게는 저주까지 받았을 지도.


 그게 맞아.

 너만을 위하고 너만을 사랑했다면.


 그런데.

 난 누구에게도, 어떤 것으로부터도 외면받지도 미움받지도 저주받지도 않았어.

 나쁜 놈.


 찬란한 빛과 투명한 빗물이 어우러지는 오늘 같은 날엔

 우리가 손잡고 있었던 시간과 공간이 열리면서 

 곧

 너만을 위하지 못했던 후회가 가슴을 때린다.


 지금은 없는 누군가가 눈물을 쏟으며 한 마디 한 마디 만들었을 

 찬란하고도 슬픈 선율.


 또 그날로 돌아가고 있어.

 

 고개 돌려 보이는 미소가 환상적이야. 어쩌면 입술이 그런 각도로 올라가지? 너무 매력적이잖아.

 손뼉 치는 너의 두 손에선 어쩌면 그리도 경쾌한 마찰음이 나는 거니? 너무 산뜻하잖아.

 응.. 내 모습도 보이네?

 입 헤~ 벌리고 좋단다. 바보같이.

 네 곁에 있어 아무것도 부러울 것이 없나 봐. 연신 웃느라고 눈은 아예 보이질 않네.


 나 그랬구나. 바보처럼.

 너만을 위할 줄도 몰랐으면서.

 

 너 그랬구나. 바보처럼.

 나를 위할 줄만 알았으면서.


 땅에 반사된 빛은 사라지고.


 다시 빗줄기가 굵어지네. 하늘이 어두워졌어.


 음악도 끝나가. 굵게 떨어지는 빗소리와 함께, 서서히.



 비에 젖지 말고 조심해서 들어가.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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