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지우개에 대해서 얘기 나눠 보려고 합니다. 아이들이 공부를 하면서 지우개로 지우다가 문제집을 구기거나 찢어서 당황해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지우개를 사용하기 싫어서 글씨 위에 덧쓰면서 공부하는 것도 보았습니다.
그러면서 문득 드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내가 지우개를 언제 썼지?
아이들 모습을 보다가 저는 지우개를 언제 썼는지 확인해보다가 놀랐습니다. 지우개를 사용한날이 무려 2주전이었습니다. 지금 공부를 안하고 있는 것도 있지만 가능하면 휴대폰 펜으로 메모하고, 녹음해서 사용하고, 노트북에 작성하다보니 연필로 쓰고 지우개로 지울 일이 없었습니다.
그런 생각이 떠오르면서 지우개와 얽힌 추억을 적어보기로 했습니다.
1. 지우개.
학교 입학과 함께 평생 연필과 지우개를 가지고 다닐 줄 알았습니다. 중학교를 진학하면서 샤프와 지우개를 사용하다가 볼펜들을 사용하니까 쓸 일이 없어졌습니다. 대학 수업중 패턴 그릴때 또는 인체드로잉을 하면서 지우개를 무척 많이 사용한 것이 거의 끝이었던 것같습니다.
지금은 지우개의 역할을 'backspace' 또는 'delete'가 거의 대체하고 있습니다. 세상이 이렇게 변해가네요. 저보다 연배있으신 분들은 더 다양한 느낌이 있으실것같습니다.
글씨를 쓰면서 틀린 글씨를 뒤늦게 발견했을때, 짜증을 내면서 지우다보면 시험지 또는 공책이 '부~우~욱' 소리를 내면서 찢어지곤 했습니다. 성질머리 나쁘게 행동한 것은 생각하지않고, 부드럽게 지워지지 않는다면서 지우개를 던져서 버렸던 기억도 납니다. 저와 지우개는 어떤 추억이 있을까요? 한번 적어 보겠습니다.
1. 예술을 하다.
지우개, 특히 점보 지우개는 제게 캔버스같았습니다. 큰 지우개는 볼펜으로 그림을 그립니다. 그리고, 새로산 하얀 지우개위에 검정 볼펜으로 그림 그리는 느낌은 촉촉한 바다 모래사장에 발가락들이 퐁퐁 빠지면서 걷는 느낌이었습니다.
지우개는 고무로 만들었다는 선생님의 얘기를 듣고 고무인지 확인하겠다면서 전부 지우개밥을 만들어서 찰흙처럼 조물락거렸던 적도 있습니다.
2. 쉬는시간 흥분의 도가니를 만들다.
책상에서 지우개따먹기 놀이는 거의 도박이었습니다. 다들 쉬는 시간만 되면 '따먹기 놀이'에 쉬는시간이 끝나는줄도 몰랐습니다. UFC 옥타곤마냥 게임하는 두 명을 둘러서서 지켜봤습니다. 모든 게임이 그렇듯이 지우개 크기보다 지우개를 굴리는 기술이 승부수였고요. 운좋게 지우개를 많이 따간 친구는 꼭 게임뒤에 신변이 위협당하는 일이 생기기도 했습니다. 따 먹은 지우개를 돌려줘야 평화가 찾아오곤 했습니다.
3. 기타로 오도바이를 타듯, 수업 시간에 야구를.
틈나면 수업 시간에 목표물을 향해 던지기도 했습니다. 공부 열심히 하는 친구 뒤통수에도 던지고, 저한테 던진 친구의 지우개를 창문 밖으로 던져 날려버리면서 한방 먹였다고 웃기도 했습니다. 수업시간에 그렇게 놀다가 걸리는 교실 밖으로 쫓겨났습니다. 그리고, 수업내내 복도에 서 있었던 기억도 있습니다. 이제는 그런 장난하면 큰일납니다.
3. 조각가 꿈을 꾸다.
용돈만 받으면 지우개를 샀습니다. 문구용 칼로 빚어서 모양만드는 취미가 생긴 덕분이었습니다. 작업을 하고나면 지우는 건 불가능하니까 매번 지우개를 샀던 겁니다. 만들고나서 볼펜으로 색칠하는 재미가 쏠쏠했습니다. 색칠까지하고나면 완성도에 대한 만족도가 상당했습니다.
지우개에다가 샤프심도 꽂았습니다. 촘촘히 잘 꼽으면 '거북선'이 됩니다. 서로 누가 더 리얼한지 비교하기도 했었습니다. 한참을 들고 다닌 기억도 나고요. 샤프심을 다 뽑았더라도 지울때마다 박혀 있는 샤프심이 종이를 지저분하게 만들때도 있었습니다.
제 기억에는 '대전 엑스포'기념 지우개가 최고였습니다. 큼지막하고 몰랑몰랑한 것이 프린팅된 그림만 지우고나면 무엇이든지 그릴 수 있는 캔버스이자 조각대상으로 훌륭했습니다. 부모님은 최첨단 시대를 경험해보라면서 데려갔지만 거기서 사온 지우개로 인한 재미가 더 컸었습니다.
4. 지우개와 관련된 아이디어 제품에 놀라다.
학교에서는 어차피 청소할거니까라면서 지우개를 쓰고난후 지우개밥은 전부 교실 바닥으로 밀어내곤 했습니다. 그런데, 어떤 친구가 뭔가를 가져왔습니다. 지우개밥이 생겼는데 '슥~~'밀었더니 기구 속 롤러가 지우개밥을 모두 밀어서 가지고 가는 겁니다. 그 매커니즘에 놀라면서 수업시간내내 지우개밥 만들어서 한번만 밀어보자고 했던 기억도 납니다. 요즘에는 건전지를 넣고 자동으로 지우개밥먹는 기계도 봤습니다.
5. 옥새를 만들다.
틈만 나면 새로 산 지우개가 모양이 달라지기전에 글씨를 쓰고 칼로 글자외 여백을 파냅니다. 그러고, 남아 있는 글씨에 볼펜으로 칠합니다. 지우개는 '옥새'가 됩니다. 처음에는 도장대용처럼 만들었다가 장난끼가 발동해서 온갖 말들을 조각해서 친구 교과서에 서로 찍으면서 놀았던 생각도 납니다. 그 당시는 교과서에 장난스런 낙서를 하면 선생님에 따라서 혼나기도 했었기에 서로 골탕먹이느라 재밌기도 했고요. 저는 낙서와 장난 그림없는 교과서가 없었습니다.
6. 지우개로 종이 위에 생명을 불어 넣다.
화실에서 뎃생을 배울 때였습니다. 다 그린다음 지우개의 각 면을 활용해서 아그리파의 각 면들을 지워주다보면 어느새 종이 위의 그림은 압체적으로 변하며 생기를 띠게 되었습니다.
열심히 고민해서 짠 코드를 돌리면 몇 줄같던 코드가 생명을 얻은 듯 원했던 답이나 결과물이 출력되는 것같았습니다.
끝까지 남아서 그림을 그리고 화실 불을 끄고 나오는데, 이젤 위의 아그리파들이 모두 살아 있는 사람같아 보여서 무서운 적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초중고를 함께한 지우개 추억을 잠시 떠올리는 시간이었습니다. 지우개 하나로 수많은 즐거움을 즐겼습니다.
그랬던 지우개를 2주에 한번 사용하면서 저의 일상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었습니다. 물론 제 일상이 연필과 지우개를 많이 사용하지 않는 것일수도 있습니다. 교육, 행정, 법학등 수많은 지식과 함께 하는 분들은 저와 다른 느낌일 수도 있습니다.
"아~ 지우개도 이렇게 자연스럽게 멀어져야 한단 말인가?"라는 생각이 들면서 아쉬움이 몰려 왔습니다. 저에게 지우개라는 것은 '점보'와 '톰보우'가 전부였습니다. 그런 생각들을 하다보니 멀어지고 싶지 않은 마음이 더 간절해집니다. 저희 아이들에게는 '손맛'을 즐길만큼 즐겨보라는 의미로 연필과 지우개 사용을 여전히 권장하고 있기도 합니다.
구식 시대와 신식 시대를 지나고 숨가쁘게 흘러가는 첨단 시대를 이어서 살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추억이 가득한 손맛나는 물건들이 점점 사라집니다.
그런 첨단 시대에는 코딩을 통해 반복되는 것들은 자동화가 되고, ChatGPT를 활용해서 더 나은 일상을 만들어가느라 분주한 세상입니다. 그런데, 코딩실력과 인성이 중요시되는 시점에 손글씨를 점검해야 '정말 회사에 도움되는 인재'를 뽑을 수 있다는 주장을 본 적이 있습니다. '사람향기'를 지니고 말과 더불어 '글'로 정보와 생각을 잘 소통하는 사람을 찾는건 아닌가 싶습니다.
한편으로는 그것도 얼마안남은거 아닌가 싶습니다. 연필이라고는 애플펜슬을 한 것이며, 컴퓨터 자판보다는 휴대폰 액정속 쿼티자판이 익숙하고 수업중 카메라로 촬영하고 촬영한 영상에서 글자를 인식해서 보는 세대들을 접합니다. 이런 현실 속에서 무형문화재 명맥을 이어가기위한 노력처럼 한번쯤 '사각사각'거리며 종이위에서 춤추는 연필과 '스스슥'소리를 내며 지워주는 지우개의 댄스를 아름답게 남겨보고 싶기도 합니다.
"저는 연필과 지우개를 사용해봤습니다."
"진짜에요? 어떤 느낌이었나요?"
이런 대화가 오고가는 세상도 오겠지 싶습니다.
오늘도 '지우개'와 얽힌 저의 추억을 함께 읽어주심에 미리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이런 감성을 투박하게 써내린 글을 통해 찐 작가님들과 나눌 수 있음에 저는 감동스럽습니다. 감사합니다.
덧붙여서:
연휴를 즐기다가 토요일 깨알프로젝트 발행 약속을 어길까봐, 잊사잃 프로젝트로 미리 발행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