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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아! 제발 이러지 마요. + 5

그렇더라도 안 그럴 수 있어야 해요

바깥에서 일하면서 다양한 일을 겪고 삽니다. 이제는 아내도 일을 하다 보니 다양한 상황을 둘 다 겪고 살고 있습니다. 이제는 밖에서 힘든 일을 감당하고 급여받고 가정에 오면 또 머리 아픈 일을 감당하면서 지낸다고 생색내면서 살 수 없습니다. 아내도 그런 시간들을 감당하고 집에 와서 또 할 일을 묵묵히 해내고 있으니까요. 



그런 상황이 아니더라도 뭔가를 하면서 생색내는 일 좀 안 하면 좋겠다는 아내의 일침이 있었습니다. 그 말을 들으면서 만화 속 '명탐정 코난'처럼 점점 조그맣게 변하는 저를 느꼈습니다. 그만큼 창피했지만 변화를 위한 몸부림의 시간들이니까 솔직하게 나눠보겠습니다.  


 


일하면서 힘들게 결과물을 마무리하고 집에 들어온 날..


아이들과 함께 저녁을 나가서 먹고 돌아다니기로 한 날이었습니다. 

"와!! 아빠 왔다. 이제 가자!!"

"어딜?"

"우리 저녁때 나가기로 했잖아요.~~~ 잉...."


"안 가!! 취소다!!"


"예?"

"아빠~~~ 아...."

"남편......." 


"안 간다... 나 씻어요.."


"..................."

"............"

"................................"

"....."


집안은 일순간에 조용해지면서 후드득.. 툭.... 툭.... 소리만 나기 시작합니다. 옷을 다시 갈아입고 가방을 집어넣고요. 툴툴거리며 괜스레 방문을 닫고 거실 바닥을 차고 그러면서 아쉬워하며 아이들은 억지로 마음을 정리했습니다. 아내는 풀이 죽어서 숨 죽이며 정리하는 아이들을 다독이면서 속상해합니다. 그런 상황을 아무렇지 않게 여기며 한 마디 더 했습니다.  


"오늘 너무 힘들었어요. 도저히 아무것도 할 수 없고요. 그런 기분도 아니고요." 

"남편......" 

"무튼 오늘은 아무것도 안 하고 싶어요. 그럴래요.."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아이들은 조용히 잠을 자러 들어갔습니다. 


대단한 일을 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저 동네 식당에서 외식을 간단히 하고 캄캄해진 동네를 돌아다니면서 아이스크림 하나씩 먹으면서 풀 보고 가로등 사진 찍고 한 시간 정도 돌아다니는 '놀이'입니다. 그런 약속을 무작정 취소한 것입니다. 



그런 날들이 계획 없이 벌어지는 것이 다반사였습니다. 그럴 때마다 아내는 원망스러운 얼굴로 아무 말 없이 눈빛으로만 바라보곤 했습니다. 그때마다 아내는 달려들어서 따지고 싸우지 않습니다. 그런 날이 컴컴한 터널을 지나고 있는 요즘 몇 번이 아니라 살아오고 있는 십 년 넘어 수시로 일어났습니다. 아내와 아이들은 뭔가를 한다고 해도 "진짜?"라면서 그날이 돼서 실제로 일이 진행되어야 "진짜 하네."라면서 "꺄악!!!"하고 신나 합니다. 아까처럼 아빠의 기분에 따라 "에이! 하지 말자" " 오늘 안 해!"라는 상황이 되면 " 또 그럴 줄 알았어! 아빠. 또 그런다."라면서 "늘 그렇지모."라고 말할 때가 많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참다 참다 견디기 힘들어 아내가 한 마디 했습니다. 


"그렇더라도 안 그럴 수 있어야 해요." 

"에? 뭐요?"


저는 황당해하면서 되물었습니다. 


아내가 그 말에 대해서 몇 마디 덧붙였습니다. 

"우리는 어른이에요. 밖에서 일하면서 힘들거나 억울했을 수도 있어요. 그렇더라도 아이들에게 그런 당신의 감정을 밀어붙이면 안 돼요. 아이들은 늘 기다려요. 늘 기대하고요. 아빠를요. 그리고 당신이 들어올 때 아이들은 당신 얼굴을 먼저 보면서 분위기 파악을 해요. 왜일까요? 밖에서 기분 상한 날이면 당신은 "저리 가!~~" "오늘은 안돼!"라면서 아이들의 감정과 기대를 무참히 밀어내버려요. 집에 들어올 때 항상 자기감정만을 앞세우면서 밀고 들어와요. 우리 그러면 안돼요. 우리 어른이잖아요. "



어른이라면 어른답게 "아프고 힘들고 속상하더라도 아이들 앞에서는 아이들 눈높이에 맞는 감정으로 대해줘야 해요. 혹여 마음이 힘들고 아파도요. 나는 그러고 있는데 당신은 늘 자기감정을 그대로 아이들에게 표출하더라고요." 


"............................................"

아내의 일침과 함께 아내의 친절한 설명까지 들으면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듣다 보니 그런 모습으로 살아오고 있는 아빠의 모습이 눈에 훤히 보여서요. 


대화가 어떠셨을까요? 


이 글을 쓰면서 저는 "하하하..." 웃었습니다. 즐거워서도 아니며 상황 파악이 안 되서도 아닙니다. 하다 못해서 한마디 하고 그 말도 이해 못 하고 멀뚱 거리는 남편에게 이해하기 쉽게 설명까지 해준 아내 말을 듣고 숨을 곳이 없어서입니다. 당황스럽고 어쩌지 못하는 마음을 감추지 못해서 덜덜덜 떨렸던 순간이 다시 생각나서 웃음으로 회피한 것입니다. 



어른답지 못하게 늘 아내와 아이들 앞에서 "내 감정"만 앞세우면서 "하자! 말자!"를 순식간에 손바닥 뒤집듯이 해버리는 무례함을 늘 아무렇지 않게 했었습니다. 명분은 "밖에서 속상했어요." "너무 힘들어요. 쓰러질 것 같아요." "정말 하기 싫어요."등등으로 상황을 솔직하게 말했다고 반박하지만 아내가 듣기에는 모두 변명입니다. 



저도 모르게 하기 싫은 것은 아이들이 "배 아파"하듯이 변명이나 구실을 늘어놓고 있었습니다. 그 변명과 함께 순식간에 "하자! 말자!"를 토해냈고요. 아이들과 미리 대화했던 계획일지라도 말입니다. 그런 상황이 벌어지면 아내는 최대한 남편의 상황과 감정을 이해해 주고 아이들을 위로하면서 상황을 감당해 줬던 것이고요. 



그런데,

그렇게 하는 것들을 아무렇지 않게 , 특히 미안함과 죄책 감 없이 그저 손바닥 뒤집듯이 자기감정에만 충실해서 남발하는 것을 변함없이 하는 것에 대해 더 이상 이러면 안 될 것 같아서 아내가 일침을 가한 날이었습니다. 이제는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요. "그렇더라도 안 그럴 수 있어야 해요."라는 말은 아내의 설명이 덧붙여지면서 머리에 '콕' 박혔습니다. 아내 말을 듣고 마치 공중에서 보듯이 그런 행동을 하는 나를 돌아볼 수 있었습니다.  "정말 말도 안 되는 상황이었습니다. 너무 창피했고요."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어른답지 못하다."라고 느껴지면서 창피함은 서비스처럼 마음에 다가왔습니다. 



'너무 무례했다. 그런 남편을 묵묵히 감당해 준 아내가 얼마나 힘들었을까. 아이들은 얼마나 실망감 큰 날들이었을까?'라면서 마음으로 무릎을 꿇는 시간이었습니다. 


  


지금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요? 


피곤해서 안 하고 싶을 때, 무척이나 하기 싫을 때, 순간적으로 변덕의 감정이 치솟을 때,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 일일 때.. 그럴 때마다 내 감정을 솔직히 아내에게 말하기도 합니다. 그럴 때마다 아내가 지긋이 말해줍니다. 

"남편, 지금 아이들이 너무 설레고 있어요. 당신이 힘들더라도 해주는 게 좋아요." 

"남편, 안 그랬으면 좋겠어요." 

그런 아내의 말들을 흘려듣지 않고 "그래!! 지금은 해야 할 때이다."라고 마음속에 되뇌면서 아내와 아이들을 위해, 아내를 위해, 아이들을 위해 내 감정과 자존심을 먼저 내세우는 것을 줄여가고 있습니다. 



그렇게 지내는 것은 엄청 개선된 생활이기에 아내 마음의 묵직한 짐이 하나 툭 떨어진 정도일 겁니다. 아쉬운 건 한순간에 100% 달라질 수는 없습니다. 조금씩 달라지고 있긴 합니다. 엄청 좋은 선생님께 핵심노하우를 배웠더라도 하루가 지나면 80%를 까먹듯이 깨달음과 반성을 제대로 한 일이라도 여차하면 잊고 감정에 충실해서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기도 합니다. 다행인 건 그럴 때마다  "남편.... 제발...."이라면서 아내가 일침을 가합니다. 그 일침을 맞고 나면 "아차!! 이게 아닌데....."라면서 "아차차....." 하긴 합니다. 다행이긴 합니다.  



여차하면 다시 실수를 반복하는 모습이 제 스스로 창피합니다. 그래도 노력을 멈추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러려고 브런치에 글을 쓰고 있음을 매번 고백합니다. 읽어주시는 분들이 많고 그 과정을 지켜봐 주시는 분들이 많은데 어찌 숨기고 안 고치겠습니까? 브런치는 이런 곳이라서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그렇더라도 안 그럴 수 있어야 해요"를 쓰면서 느낀 소감은요.


너무 창피합니다. 

결혼하고 애 셋과 함께 살아가는 아빠로서 '너무 어른스럽지 않다.'라는 말을 들었지요. 그것보다도 스스로도 '어른스럽지 못한  내 모습'을 느꼈습니다. 그걸 느끼는 순간, 얼굴이 후끈 달아오르고 가슴은 턱 막히면서 뒷목부터 허리까지 등줄기 땀을 또 경험했습니다. 그런 화끈거림을 느낄 만큼 창피함이 극한 상황에 이르렀었습니다. 그런 모습을 견뎌준 아내와 이런 대화를 할 때면 정말 쥐구멍에 들어가고 싶어 집니다. 



어찌 그랬을까?

후회가 밀려왔습니다. 함께 살아가는 세상에서 어른으로 살다 보면 어울려 살면서 배우고 느끼는 것들을 통해서 진정한 어른으로 거듭나면서 주어진 기회를 통해 가정을 이루고 책임지면서 살게 됩니다. 그렇게 살아오고 있는데도 저는 그런 상황 속에서 제 감정에만 충실하고 살았습니다. '내가 싫으면 안 하고 내가 싫으면 안 먹고 내가 좋으면 적극적으로 하는 거다.'였습니다. 그저 그런 것을 기준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사람을 만나고 살아왔습니다. 일할 때는 그런 모습이 잘 드러나지 않은 이유가 해야 할 일을 위해서 참고 했으니까요. 일상생활에서는 무장해제되어 그저 내 감정에만 충실하게 살아오느라 함께 사는 아내와 아이들이 감당하기 바빴던 것이고요. 그렇게 지낸 시간을 엄청나게 후회했습니다. 



아이들은 무슨 죄가 있는가?

아이들은 죄가 없습니다. 잘못한 것도 없고요. 매 순간 아빠가 아빠 감정에 충실해서 맘대로 말하고 결정했다가 번복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었습니다. 그런 상황에 따라오는 취소에 대한 실망감, 정말 할까?라는 의문을 가지고 기다리는 걱정, 아빠 감정을 매 순간 눈치 보면서 감당해야 하는 불안감을 아이들이 고스란히 감당하고 있었습니다. 아이들은 죄가 없습니다. 큰 죄를 짓지도 않고요. 그런 아이들이 불편함을 감수하고 살아야 하는 시간들이 꽤 많았던 것입니다. 아무런 죄가 없는대도 말입니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아이들에게도 엄청나게 미안했습니다. 



그런 깨달음들을 혼자서 다시 짚어봤더니 '좋은 남편, 훌륭한 아빠'가 아니었습니다. 폭력을 행사하고 무차별적인 언어사용과 음주로 가정을 괴롭히는 사람이 아니니 훌륭하다는 자부는 말도 안 되었습니다. 그런 것만 아닐 뿐이지 은근히 속 터지게 하고 여차하면 불안한 상황을 만들면서 일상생활이 '좋았다가 나빴다가'를 파도 타듯 감당하도록 했던 남편, 아빠였던 것입니다. 



참다 참다 말한 아내의 한마디는 여파가 여전히 큽니다. 그 말을 듣고 정신이 번쩍 듭니다. 다행인 건 이제 아내 말을 들으면 '그래요. 인정'하게 됩니다. 특히 글을 쓰면서 아내 말들이 하나 둘 떠오르고 상황이 생각나면서 더 많은 이해가 됩니다. 이런 시간이 감사하게 생각됩니다. 



다음 편은 "남편, 너무 예민해요."편입니다. 

여전히 그 글을 수정하면서 발행직전까지 화끈거림과 미안함은 저의 몫입니다. 그렇지만 글이 발행되는 순간, 잠시 창피함에 글 뒤로 숨는 느낌으로 있긴 하지만 후회는 없습니다. 또 하나를 고치려는 노력을 하면서 가정의 회복을 가속화시킨다는 생각도 들기 때문입니다. 이런 노력과 의지를 이어가도록 읽어주시는 모든 분들께 미리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바람 없이 연 날리는 남자 Dd 


출처:사진: Unsplash의 Mariya Georgie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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