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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아! 제발 이러지 마요. +6

말 좀 그만해요.

일상생활을 살아가면서 뜻한 대로 되지 않을 때는 시간과 돈과 더불어서 건강도 놓치게 됩니다. 그런 과정을 혼자 겪는 게 아니라 함께 살고 있는 아내도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겪게 됩니다.  


무리한 일정과 과한 생각 탓에 지친 몸은 후두염에 걸렸습니다. 후두염이 뭔지 모르고 살았기 때문에 어떤 증상인지 느끼지 못했습니다. 그저 피곤하면 목 안의 편도선이 부어서 목 넘김이 힘들고 열이 나는 정도를 피곤함에서 오는 부작용으로 알고 지낸 정도였습니다. 반대로 아내는 원래 하던 일의 특성상 피곤하고 힘들면 바로 후두염 증세가 나타났습니다. 후두염에 걸리면 아프고 힘든 것을 호소하지만 느껴지는 외형적 상처가 없다 보니 진심의 공감을 해줄 수가 없었습니다. 직접 걸려보니까 후두염의 고통을 느끼면서 수시로 아파하던 아내의 고통을 제대로 아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그런 것에 대해 대화하다가 아내의 던진 한마디는 나중에 제 마음에 깊은 울림이 있었습니다.  



아이들에게 할 일을 하도록 재촉하던 중이었습니다.


"얘들아, 너희 할 일 해야지!"

"여기 머리끈은 왜 있니?"

"여기 장난감은 누구 거니?"

"얼른 치워야 너희가 원하는 영화를 보지!!!"

"아빠가 목소리가 안 나오는데 자꾸 말하게 하는구나!!"

"엄마도 아프단다. 좀 알아서 해주면 안 되겠니?"


"남편................."

"남편, 말 좀 그만해요. 힘들 텐데"


"아... 알... 알았어요... 근데 애들이 알아서 안 해주잖아요....."

"나둬요..... 그냥...."


 "쉬어요... 남편.. 좀...." 그러면서 "그만 말하고요."라고 했습니다. 계속 쉰 목소리로 아이들에게 지시하는 저에게 거듭 "좀 쉬어요.. 남편..."이라고 말했습니다.  



"아... 알았어요."

"그리고 내일 꼭 병원을 가요. 이비인후과로요."

"알겠어요."



이비인후과를 다녀오고 나서


일하고 있는 아내에게 검진결과가 궁금할까 봐 '톡'을 보냈습니다.

"여보. 후두염이래요. 5일 치 약, 주사."

"아구구;; 많이 아팠겠다 ㅜㅜ, 찢어질 듯 아팠을 텐데..."
"미지근한 물 좀 마시고 쉬어요~~"

"여보, 고마워요."

아내의 답톡을 받아 읽고는 차로 가던 발걸음이 딱 멈추졌습니다. 그대로 주차장 한가운데에 서 있었습니다.  주차한 차에 갈 생각도 못한 채로요. 이유는..



아내가 보낸 답톡은 많이 아팠을 남편의 상태에 대해 진심으로 공감하고 위로해 주는 이었습니다. 이런 진심의 마음을 받는 남편이라는 것에 저는 감동했습니다. 아내가 아프거나 이슈가 있을때 저는 늘 "여보, 힘들었겠네요. 가서 좀 쉬어요. 이따 봐요."라고 답을 보냈습니다. 저와 아내의 답톡을 비교해 보니 '격'이 달랐습니다. 아내의 답톡은 대면하지 않아도 진심과 위로가 느껴지는 따스한 답이라면, 저의 답톡은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니지만 감정이 빠지고 공감이 덜한 값싼 답톡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후두염 걸린 덕분에 "말 좀 그만해요!"라는 말을 들었는데 그 말 한마디는 시끄러우니까 "말 좀 그만해!!"가 아니라, "많이 아플 텐데 말 그만하고 쉬어요~"라는 진심 담긴 제안이었던 것입니다.  


대화 내용이 어떠셨나요?


아내는 전공부터 하는 일의 특성상 후두염에 수시로 걸립니다. 그러다 보니 얼마나 아프고 고통의 정도를 충분히 알고 있습니다. 생각지 못하게 후두염에 걸린 남편을 바라보면서 정말 많이 아플 테니 말 좀 그만하고 진짜 쉬도록 제안한 것입니다.   



그런 아내의 제안에 아내말대로 '잠시 멈춤'을 통해 '쉼'을 가졌습니다. 늘 고무줄을 당기듯이 아내와 아이들에게 해대는 저의 말과 행동이 후두염 덕분에 '잠시 멈춤'을 하게 되었습니다.

 


아내 말을 듣고 더 이상 쉰 목소리로 말도 하지 않고 잠잠히 있어 봤습니다. 가만히 앉아 있다 보니 느끼는 것은 집안이 평온했습니다. 집안에 아이들이 빈 도시락안의 젓가락 절그럭절그럭거리는 것이 아니라 티슈박스 안의 티슈들처럼 잠잠했습니다. 그만큼 저의 생각과 오디오가 온 집안을 쥐고 흔드는 파급력이 있었던 것입니다.



아내와 아이들이 순간순간 저의 감정에 이끌려 나오는 말에 휘둘리느라 힘들었다는 것을 이제야 느꼈습니다. 후두염 덕분에 저의 입에서 나오는 오디오를 줄임으로써 제대로 느낀 것이고요. 제가 말 안 하고 있는 동안 아이들은 평온하게 뒹글거리거나 하고 싶은 일과 할 일을 알아서 하고 있었습니다.  아내는 휴대폰으로 보고 싶은 것을 보면서 평안하게 앉아 있는 것을 봤습니다.   



제가 말을 하기 시작하면 잔잔하던 수조의 물에 손바닥을 수차례 내려친 것같처럼 아내와 아이들이 이리저리 분주하기 시작해집니다. 아내가 늘 정신없고 긴장한다는 것도 제대로 이해가 되었습니다. 후두염 덕분에 알아야 할 것을 제대로 알게 된 시간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은 어떻게 살까요?


매사 진심으로 공감하면서 적당한 텐션으로 지내는 아내의 좋은 점을 닮아가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생각만큼 쉽게 적용하지는 못합니다. 그런 아내를 본받아보겠다고 하지만 '적당함'을 유지하면서 가족 모두가 '평온함'을 이어가도록 하는 것이 참 어렵습니다.



아내의 좋은 모습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니까 아내가 사랑스러워집니다. 아내가 숱하게 속상함을 토로하던 말들이 하나둘씩 떠오르기 시작합니다. 여차하면 짜증을 내면서 다투거나 화를 내면서 혼내는 것을 줄이려고 하다 보니 부작용으로 말이 많아졌습니다. 말이 많아진다는 것은 문제해결에 대해 답까지 내리고 진두지휘하려는 것을 내려놓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아내와 아이들 말에 경청을 하고 필요한 말만 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깨달은 것을 실천한다는 것이 콩 심은 데 콩 나듯이 딱딱 결과가 나오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여전히 실수를 반복합니다. 그럴 때마다 아내가 "또 그러네요."라고 하면 이제는 움찔합니다. "아차! 내가 또 그랬네."라고 인지를 하니까요.  늦게라도 깨달았고 고치려고 노력한다면 그 자체로도 훌륭하다는 어느 분의 말씀이 힘이 되고 있습니다.




"말 좀 그만해요."를 쓰면서 느낀 소감은,


후두염이 필요했다.

후두염 걸린 덕분에 쉰 목소리가 나왔고 말을 줄이다 보니 가정에서 필요한 평온을 유지하는 방법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빠 감정으로 수시로 내뱉는 말들이 매 순간 아내와 아이들을 우왕좌왕하게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말이 너무 많았다.

말이라는 것은 필요한 만큼만 하는 것인데 상대방이 원하지 않는데 말을 많이 했습니다. 그런 말은 대화가 아니고 일방적인 주장이 되면서 상대방을 피곤하게 만듭니다. 그런 행동을 10년 이상 해왔으니 상대방이 느끼는 피로도는 감당범위를 넘어선 상태였습니다. 아이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태어나서 이제 세상을 알아가는데 말을 끊임없이 해대는 아빠 때문에 말 많은 것을 싫어할 수도 있습니다.



아이들의 마음을 알았습니다.

혼내지 않는다면서 납득시키려고 말을 많이 하는 아빠 때문에 피곤했을 아이들이 이해가 되었습니다. 쉰소리 나는데도 말을 하는 아빠를 그래도 걱정한다고 "아빠 아프니까 말 많이 하지 마요." "아빠 아픈데 너네는 자꾸 아빠 말하게 하냐!!"라면서 서로 싸우는 아이들과 마주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마음을 가진 아이들이 아빠보다 더 성숙하고 수준 높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취약한 아이들을 데리고 사는 것이 아니라 마음씨 좋은 아이들과 함께 산다는 표현이 어울릴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이렇게 후두염 걸린 덕분에 아내의 공감 듬뿍 인 진심을 느끼고 아이들의 예쁜 마음도 알았습니다. 어떤 분이 말씀해 주시길 10여 년 만에 이런 걸 벌써 깨닫고 바꾸려는 노력을 시작했다는 것은 정말 축복이라고 했습니다. 그 축복을 잘 활용해서 더 회복되는 가정을 만들려고 합니다. 그리고, 나눌 것입니다.  



덧붙여서:

그런 노력을 이어갈 수 있는 힘은 역시나 매주 저의 글을 읽어주시는 분들 덕분입니다. "집단 지성"이라는 말이 있듯이, 글을 쓰면서 노력 중인 저를 제외한 다른 분들의 '집단 격려'덕분에 지금까지 하나하나 곱씹어보면서 고쳐가고 있습니다. 미리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바람 없이 연 날리는 남자 Dd


출처: 사진: Unsplash의 Henri Ph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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