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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아! 제발 이러지 마요. +7

"싫으면 끝까지 싫어하더라고요. "

아내와 살면서 다름을 인정하기까지 시간이 많이 걸렸습니다. 다름을 인정했지만 제가 서운하거나 속상하면 이해하지 않으려고 여전히 고집부렸습니다. 평생 곁에 있는 사람의 다름을 10여 년 만에 인정했으니 이제는 다른 사람의 다름도 인정하려는 마음을 겸비하려고 합니다.  



다른 사람들과 새로운 관계가 시작되면 모든 사람들과 잘 지내면서 인생에 좋은 추억과 경험을 만들려고 많은 애를 쓰는 편이었습니다. 적당히 선을 긋고 지내고 싶은 사람인데 자꾸 침범하면서 친밀해지자고 할 때도 있고, 반대로 친해지자고 하면 얼른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식이었습니다. 그러면서 관계가 안 좋아지면 아예 단절하는 식이었습니다. 아내를 만나면서 모든 사람과 좋은 관계를 가지려고 갖은 애를 쓰는 것보다는 상황에 따라 자연스럽게 관계가 이루어지는 게 좋다고 조언받기도 했습니다. 아내는 필요한 연락처만 가지고 있는 반면 저는 휴대폰에 몇천 개의 전화번호를 가지고 있지만 수시로 지우는 식이었습니다.  



그런 것들과 함께 돈문제를 대화하다가 일침을 가한 아내를 직면한 날입니다.



"여보, 나는 그런 사람들은 이제 만날 거예요."

"남편, 그래도 몇십 년을 보낸 막역한 친구잖아요. 조금 이해해 봐요."

"늘 그랬는데.. 시간이 가고 사회생활을 거치면서 너무 변했어요. 필요할 때만 친구라네요."

"잠시 거리를 두고 봐요. 깨닫거나 달라질 날도 있을 거예요. 잠시..."

"그만합시다. 그런 얘기는.. 내 친구는 내가 알아서 할게요."


그렇게 사람들을 단절하기도하고요. 일을 하다가 관둬야 할 상황들이 종종 생기곤 했습니다. 하던 브랜드 새 사업이 회사에서 생각보다 잘 안돼서 더 이상 투자해서 하고 싶지 않다고도 하고요. 회사에서 열정페이로 일하는 걸 당연시 여기며 과중하게 지속적으로 업무를 강요하거나 좋지 않은 방향으로만 일추진하는 걸 강요하기도 했습니다. 서로의 입장차이를 좁히지 못하면 타의 반 자의 반 퇴사하게 되었습니다. 갑작스레 실직이 되기도 하는데 일하는 동안 몰래 다른 일을 구하고 면접 보러 다니지 않다 보니 실직과 동시에 찬바람을 맞았습니다.



하루이틀이 지나 한 달 두 달이 넘어가면 실업수당도 부족하고 여윳돈도 고갈되는 살림살이를 아내다 떠안는 것이 버거워집니다. 직업이 의도치 않게 바뀔 때마다 겪는 일이라 아내는 "또요?"라며 매우 힘들어합니다. 그런 아내가 힘든 마음에 참다 참다 조심스럽게 말했습니다.



"아는 사람들에게 일자리를 여쭤보면 어때요?"

"싫어요. 이력서 쓰고 때로는 면접도 보고 있잖아요. "

"나이도 있어서 뽑기도 애매할 수도 있어요."

"밑바닥 가는 거보다 나으니 시키는 대로 하면 도죠모"

"당신도 나이 드신 분들 관리하며 일했잖아요. 어려웠잖아요."

"그래도 할만했어요. 철저히 숙이고 일해야죠..."

"너무 오래 쉬고 있어요. 매월 너무 마음이..."

"아는 분들께.. 요청을 좀...."

"싫어요.... 그건..."

"남... 편....."

"싫어요. 기다려봐요. 어디든 들어갈게요.."

"정말 자존심 상해서 그건 싫어요... 절대"

"남편. 제발...."

"싫어요. 내키지가 않아요. "


"싫으면 끝까지 싫어하더라고요."


"....................."


그 말과 함께 아내가 울분을 토해냈습니다.


"언제까지 그럴 거예요. 남편, 우리 이제 돈이 없어요. 또 쉬는 동안 생활비 카드값도 너무 벅차요."

"자존심 문제가 아니잖아요. 남편. 맨날 당신 자존심 때문에 놓아버린 인간관계,  놓친 기회 때문에 우리가 지금 이렇게 지내고 있어요." "제발. 우리.. 이러지 말아요."  

".........................."


사실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아내말처럼 그렇게 행동한 탓에 놓친 기회들이 많았습니다. "미안해요." 

"남편, 제발....."


대화가 어떠셨나요?


답답하지 않으셨나요? 아내와 대화했던 상황을 적어보는 동안 저는 답답했습니다. 제가 말하고 행동할 때는 몰랐는데 그 모습을 글로 적었을 때는 답이 나와있는데 답을 피해 가는 것 같았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한번 싫더라도 두고 보면 나아질 수도 있는데 그런 마음의 여유를 두지 않았습니다. 한번 싫으면 끝까지 싫어하고 안 하던가 안 만나는 것입니다. 또 늘 좋은 관계를 위해 힘을 쓰다 보면 지치기 마련인데 늘 똑같은 일을 반복했습니다.



아내가 말한 대로 싫더라도 상황에 따라 할 수도 있는 것을 절대 안 한다고 버팅기는 남자이긴 합니다.

아내가 이런 말도 했습니다. 당신을 보면 결과가 뻔히 보이는대도 절대로 안 하고 왜 맨날 돌아가려고 하는지.. 속상해요. 그런 것들을 늘 우리가 함께 감당해야 해서 힘들어요. 처음에 싫더라도 알고 보면 좋아지는 사람도 있어요. 제발 본인만의 선입견과 고집에 휘둘리지 말았으면 해요.라는 말들을 한참 내뱉은 날도 있었습니다.



새로운 것을 좋아하고 지향하다가 싫어지면 과감하게 단절하고 앞만 보고 살아가니까 아내는 힘들어합니다. 그렇지만 싫은 것은 아예 하지도 않습니다. 아쉬워도 절대 안 하는 식입니다. 그런 모습이 쓰는 내내 너무 창피했습니다.  



이런 생각을 나누면서 아내는 눈물을 흘립니다. 이런 부분 때문에 같이 살면서 너무 힘들다고 했습니다. 사실 늘 그런 말을 하면서 힘듦을 토로하는데  무심하게 흘렸습니다. 몰랐으니까요. 이 날의 대화 이후로는 안 그러겠다고 다짐을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아내가 예전에 했던 말들이 모두 생각났습니다. "싫으면 절대 안 해요. 끝까지 안 해요."라는 말을 했던 때가 엄청 많았습니다. 이제 알았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금은 어떻게 지낼까요?


깨달았으면서 또 고집을 부리고 살고 있습니다. 여전히 싫은 건 절대로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제가 생각해서 너무 싫지 않으면 합니다. 또 그러고 있으니 아내의 속은 문드러집니다.



'조금'달라진 것은  아내가 말하면 "그래요. 알겠어요."라며 할 때도 있습니다. 아내가 "제발!! 내 말 좀 들어줘요. 이제는 싫어도 하는 게 있어야 해요. 그게 어른이에요."라고 말했습니다. 제가 고집부려서 힘든 건 혼자서 늘 감당하고 살아왔습니다. 아내와 아이들과 살면서 저의 고집 때문에 아무 이유 없이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을 제발 좀 알아달라는 아내의 말 "싫으면 끝까지 싫어하더라고요." 진심으로 '고통을 말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내와 아이들을 위해 쓸데없는 고집을 내려놓고 옳은 답을 위해서 행동하려고 노력 중입니다. 그렇지만 쿨하게 모든 것을 하지 않고 아내 말을 들었지만 선별해서 고집부리기 때문에 아내는  "당신은 아직 멀었어요. 고쳐야 하는 건 만 가지예요."라고 말합니다. '만 가지'를 빨리 고치며 아내 마음이 힘들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에피소드 EP+10000까지 써야 하나 싶습니다.




"싫으면 끝까지 싫어하더라고요."를 쓰면서 느낀 소감은요.


미안함입니다.

정말 미안함이 앞섭니다. 제 고집 때문에 저 혼자 힘든 건 상관없다는 생각으로 살았습니다. 어느 순간 같이 10여 년 이상 함께 지내고 있는 아내와 아이들이 저 때문에 힘들게 지내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너무 미안했습니다. 고집이라는 것이 어찌 보면 참 쓸모없는 것일 수도 있는대요. 사실 자존심에서 비롯된 것이며 일에 대한 신념도 아니고요. 생각의 울타리를 스스로 만들고 그 선을 내가 원할 때만 넘는 것이 고집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내 덕분에 울타리를 깨는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미안해서요.



현실을 인정했습니다.

현실은 매 순간 돈이 모자라고 서로 서운한 일들이 많이 생깁니다. 그런 이유는 저의 고집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입니다. 아빠가 되고 남편이 되었다는 것은 한 가정의 가장이기도 하지만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자리이기도 합니다. 그 자리를 가정의 선장으로써 이끌어가고 모든 것에 대해 결정해 주는 군주 같은 자리가 아니라는 것을 배워서 알고 있는데도 늘 잊고 사는 것입니다. 저의 고집 덕분에 모두가 힘들게 지낸 현실을 인정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손 내밀줄도 알자.

아프면 아프다고, 돈이 없으면 돈이 없다고, 힘들면 힘들다고, 우리 가정의 모든 것을 솔직하게 드러내놓고 사는 노력을 하기로 했습니다. 물론 축구대표팀 내부에서 벌어진 하극상처럼 외부로 드러나기보다는 내부적으로 갈등을 잘 해결하는 자구적인 노력과 해결의 방향성을 제시해 주는 리더십이 필요할 때도 있습니다. 가정에서도 필요한 것을 내부적으로 지혜롭게 처리하는 때도 있어야 합니다. 다만 꼭 필요한 것은 외부에 도움을 구하는 건강한 가정이 되도록 하려고 합니다.



이렇게 아내 말 한마디를 통해 저는 늘 깨닫고 수정하는 중입니다. 아내가 말하듯이 깨달았다고 전부 고치는 것은 또 아닌 남편이라는 것에 동의했습니다. 그렇지만 동의한 지 않는 것은 안 고치는 게 아니라 고칠 것이 많아서 속도가 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평온하고 안정적인 가정이 목표이고 노력 중입니다.  



다음 화요일에는 "너무 예민해요."편입니다. 매주 화요일이 될 때마다 발행직전까지 기획하고 써놓은 글들을 수정하는 과정이 고통스럽기도 합니다. 저의 부족함을 제 손으로 직접 적고 수정하기 때문입니다. 발행하고 나면 발행된 글 뒤에 잠시 서 있는 느낌입니다. 저의 부끄러운 부족함을 만천하에 드러내놓았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공감의 댓글들을 통해 그런 부족함을 고쳐나가도록 격려받으면서 감사함을 경험합니다.



실수를 거울삼아 건강한 가족이라는 목표를 향해 나아가려는 다짐을 내려놓을 생각이 없습니다. 고통과 상처는 사라지지 않기 때문에 직면하는 순간들을 감당하면서 하나 더 하나 더 고쳐가기 위해 계속 공개하려고 합니다.


늘 공감과 격려, 응원해 주신 모든 분들께 미리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바람 없이 연 날리는 남자 Dd


출처:사진: Unsplash의 Priscilla Du Preez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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