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면( 얼굴을 가리기 위해 쓰는 틀, 본래 모습을 감추고 겉으로는 그렇지 않은 것처럼 꾸미다. )
가정에서 아내와 소통이 되지 않는 남자가 밖에서는 상대방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호감 가득한 태도로 살아오고 있었습니다. 전형적인 가면라이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본인이 콘셉트를 가지고 그런 행동을 했던 것은 아닙니다. 그런 이중적인 모습을 보면서 함께 살아온 아내의 가슴은 갈가리 찢어지고 물 없이 건빵을 매일 먹는 심정이었을 것입니다.
그런 아내와 대화하다가 마음으로 엉엉 울었던 날의 대화를 꺼내놓겠습니다. 지극히 창피하고 얼굴이 화끈거리지만 그런 모습을 숨긴다고 숨겨지는 것이 아니기에 공개해 봅니다.
커피 두 잔이면 아내와의 대화가 시작된다.
"여보! 내가 듣는 것을 참 못하는 사람이더라고요."
"왜요? "
"교육을 듣다 보니 상대방이 말해주는 것을 듣고 요약해 보는데 잘 안돼요. 마치 단어만 몇 단어 듣고 나머지는 흘려져서 제대로 된 정보를 취득하지 못하더라고요."
"그래요?"
"전혀 예상하지 못했었고요. 그런 모습을 보면서 힘들지요?라고도 하시거라고요."
"정말 당황하면서 놀란 것은 내가 생각보다 상대방 말을 잘 듣지 못하네요. 상대방 마음은 더더욱 알아주지 못하고요."
"그런 걸 느꼈다고요? 진짜예요?"
"그랬다니까요. 사실 그런 내 모습에 많이 당황했어요. 등줄기에 순간적으로 땀이 나더라고요."
"이제야 알겠어요? 남편?"
"엥? 무슨 말이요?"
"이제야 알겠냐고요. 당신.... 잘 듣지 못해요. 남의 말을 듣고 잘 이해 못 해요. "
"열심히 말했는데 다 듣고 나서 엉뚱한 말을 하고요."
"내가 그래요? 그랬다고요?"
"그래요.. 그래서 당신과 대화할 때 늘 조심해요. 혹여 잘못 이해하고 화낼까 봐요."
"다른 사람들과 대화하면서 당신이 못 알아들어서 엉뚱한 대답하기도 해요. 내가 적당히 수습할 때도 있어요. 내 남편이니까. 당신은 근데.... 전혀 모르더라고요."
"아........ 그렇군요...... 쩝........"
대화가 어떠셨나요?
아내는 사이다 한잔 마신 느낌으로 몇 마디 건넵니다. 남편은 오랜만에 깨달음이 있다면서 몇 마디 건넸다가 "이제야 그걸 알았어요?"라는 말에 화들짝 놀라고 그 마음을 숨기지 못하면서 안절부절못했습니다. 등줄기에 땀이 흐르고 얼굴이 화끈거리면서 아내와 앉아 있는 자리가 매우 불편했습니다. 예전부터 "왜! 내가 한 말을 꼬아서 듣고 되려 화를 내고 그래요. 난 그런 말 아니란 말이에요. 억울해요."라고 늘 억울해하던 아내 말까지 생각나면서 편한 마음으로 마시던 커피잔을 들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어느샌가 멍한 눈으로 딴 데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아내는 "이제 그걸 알았단 말이에요? 이제라도 알았다니 다행이에요. 속이 시원하네요."라는 표정으로 안도의 한숨과 함께 시선 둘 곳 없이 멍하니 있는 남편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런 아내를 마주하고 있으면서 예전 같으면 화를 냈을 것입니다. "아니라고요." "말도 안 되는 소리" "그날은 뭔가 이상했었나 봐요."라며 얼버무리고 화제 전환을 했을 겁니다. 그날은 그저 묵묵히 인정하고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제가 그런 사람일거라도는 상상해본 적도 없었습니다. 늘 사람들 속에서 사람들 애기를 들어주고 무리의 분위기가 즐겁게 흘러가도록 참여하는 편이었습니다.
아내에게 말을 듣고 나서 생각해 보니,
진짜로 아내가 한 말을 엉뚱하게 이해하고 화를 낸 일이 많았습니다.
무리 속에 있으면서 남의 말을 듣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엉뚱한 생각을 하고 있기도 했고요.
생각해보면 일의 진행을 제가 생각한 대로 흘러가도록 유도하고 이끄는 편이었습니다. 반면에 다른 사람이 이끌거나 할 경우 쉽게 이해하지 못하고 '어버버'했던 적도 많았었고요.
아내가 말하길 예전부터 그런 말을 여러번해도 전혀 안 들었다고 했습니다. 이제 그 말들을 듣고 인정하는 제모습이 놀랍다고도 했습니다. 인정하면서 안 그러도록 노력해 보겠다는 말까지 한다면서요.
그런 놀람과 인정후 어떻게 지낼까요?
밖에서 다른 사람의 말을 귀담아듣듯이 아내 말을 들으려고 노력합니다. 물론 들었지만 제 생각으로 걸러서 안 하거나 안 들은 것처럼 결과가 진행되기도 합니다.
그런 노력을 바라보는 아내는 "조금 다행"이라고 합니다. 아내는 그런 말도 합니다. 다른 사람은 저의 상태를 모두 알고 있는데 정작 본인만 모르고 바꿀 생각을 안 해서 안타까워했다고요.
그런 안타까운 모습으로 지내는 저의 모습을 직시하면서 더 많은 노력을 해보려고 다짐했습니다.
작은 테이블에 커피 두 잔을 놓고 가볍게 대화하다가 등줄기 땀과 후끈거리는 얼굴을 수시로 느끼면서 앉아 있는 시간이 10 시간 같았습니다.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대화를 이어가느라 웅성웅성했는데 마치 제 주변의 모든 상황이 회오리같고 그 중앙에 혼자 앉아서 그것들을 감당하는 것처럼 어리둥절하고 몸 둘 바를 모르는 시간이었습니다. 정신 차리고 보니 고작 30 분지났는데 느꼈던 충격과 무게감이 상당했습니다.
"이제야 알겠어요? 남편"을 쓰면서 느낀 소감은요.
충격 자체입니다.
남자로서 제 자신의 부족한 모습을 직면하고 인정하는 시간이 매우 힘듭니다. 몰랐다는 사실도 힘들고요. 그런 모습으로 버둥버둥 살고 있는데 주변 사람들은 모두 알면서 이해해주고 함께 살고 있다는 사실이 당황스럽습니다. 제 나름대로는 충격이었습니다.
감사를 느낍니다.
생각해 보니 저의 그런 면을 알면서 키워주신 부모님, 결혼 이후 24시간 늘 곁에서 함께 살고 있는 아내와 아이들, 직장 및 개인 친분 모든 분들이 그런 부족한 면을 알면서도 함께 하면서 인간적인 정을 나누고 때로는 목적을 위해 함께 열심히 일했다는 생각에 무한 감사를 느꼈습니다.
할 일이 많다.
아내의 '한마디'를 적다 보니 아내의 부족한 점을 불평하기보다 저의 부족한 점을 점점 더 많이 알게 됩니다. 부족한 점을 알고 나서는 얼른 고쳐야겠다는 생각이 앞서면서 할 일이 많아지고 바빠집니다. 그런 분주함이 반드시 필요한 것임을 알기에 부단한 노력을 하려고 더 다짐하게 됩니다.
아내의 "이제야 알겠어요?"라는 말이 "이제라도 알아서 다행이에요. 그동안 맘이 너무 힘들었어요."라고 들립니다. 늘 그렇듯이 '인정'과 '감사'가 교차합니다.
이번에도 글을 쓰면서 엄청 창피하고 몸 둘 바를 몰랐습니다. 부족하면 보통 어수룩해서 인간미가 있을 텐데.. 저는 그런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고집과 가면으로 살았으니 엄청 얄미웠을 겁니다. 얼른 바꿔야지요.
다음 화요일은 "싫으면 끝까지 싫어하더라고요. " 편입니다. 여전히 글을 적다보면 참담함을 느끼면서 쥐구멍을 찾습니다. 그런 고통이 따라오지만 피하지않고 직면하면서 노력하려고 애쓰는 중입니다. 저의 부족함을 보면서 저와 같은 실수를 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