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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아! 제발 이러지 마요. +10

남편! 조마조마해요.

아내와 외출을 하거나 대화를 하다 보면 아내의 얼굴이 종종 어두워집니다. 그런 얼굴을 보면서도 저는 제 생각대로 일처리를 하곤 했습니다. 상황에 대해 아내가 자기 생각을 말해도 무심히 귀담아 듣지 않기도 했습니다.



아내 의견을 수렴하지 않고 제 주장대로 일처리를 하려고 하면 아내는 다시 한번 자기 의견을 말했습니다. 그럼에도 저의 생각이 더 큰 생각이고 맞는 것처럼 열 번에 한번 정도 아내 말대로 했었습니다. 글을 쓰다 보니 무척이나 '일방적'이라고 느껴집니다. 일방적으로 가정을 이끄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아내 의견이 더 나을 수도 있는데 듣지 않고 '일방적'으로 처리하곤 했습니다. 가족을 사랑하고 아이 셋과 살고 있다는 것을 매일 감사히 여긴다면서 저는 왜 아내 마음을 힘들게 했을까요?   



아내 마음을 힘들게 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아내 말을 귀담아 들어야 했습니다. 귀담아듣다 보면 더 나은 아내의견을 반영해서 좋은 판단을 했을 것입니다. 아내 마음을 이해하고 더 배려하거나 힘들게 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속상하게도 이번 대화를 쓰기 전까지는 진짜 '경청'과 '상대 마음 알아주기'를 못하고 지내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번에는 이사 물품사던 날의 대화를 적어보려고 합니다.   




이사 후에 당장 필요한 물품들을 빨리 사기 위해서 세 아이는 집에 머물기로 했습니다. 그 덕분에 일처리를 신속하게 해내고 있다는 사실에 혼자 감탄했습니다. 감탄한 이유는 아이들끼리 집에 있어도 큰 걱정이 안 될 만큼 어느새 제법 컸다는 것입니다. 가족톡방을 통해 아이들을 칭찬해주고 싶었습니다.  


톡방에 보낸 내용은

"잘 놀고 있니? 덕분에 엄마랑 할 일 잘 처리하고 있다. 고맙다."  11:39

"네." 11:39

"네." 11:40

"넫"  11:50


"어? 여보. 어떻게 톡을 올리자마자 바로 답을 보내지요?"

"그럴 수도 있죠! 휴대폰하고 있겠지요."

그러면서 아내는 원래 하던 일에 다시 집중합니다.  


"남편, 이거 중에 어떤 걸로 결정할까요?"

"알아서 해요. 집에 가면 애들이 뭐 하고 있었는지 물어봐야겠어요!!"


제 머릿속은 이미 아내와 상의해서 물건을 구매하던 상황이 뒷전으로 밀려났습니다. 아이들이 휴대폰 사용시간을 어긴 것과 부모 없을 때 가져다 사용한 것에 대해서 '괘씸하다.'만 머릿속에서 맴돌기 시작했습니다.  


"휴대폰 안 하기로 해놓고.. 엄마 아빠 없다고.... 으이그"

"그냥 놔둬요. 그럴 수도 있지요."

"그건 아니지요. 엄마 아빠만 없으면 자꾸 엉뚱한 일들을 하잖아요."

"적당히 알아서 할 꺼에요. 우리애들은요. 남편!"

"여보, 우리 다 샀죠? 얼른 집에 갑시다."

"남편.....이럴 때마다......."

"남편, 나 너무 조마조마해요."





대화를 읽다 보면 어떠셨을까요?


대화 몇 마디만 읽어보다가도 느끼셨을 거라고 생각됩니다. 아내 마음이 힘든 이유는 아이들의 실수에 관대하거나 이해하려고 하지 않고 여차하면 혼내는 남편 때문입니다.



조마조마 하다의 뜻이 '위태로워 마음이 긴장되고 불안하다.'라고 합니다. 저는 그저 자격증 시험 직전, 수능시험당일, 대중 앞에서 발표하는 날, 아내와의 어색한 첫 데이트등에서 느낀 '콩닥콩닥'정도로만 생각하는 단어였습니다. 실제로는 '위태로워 불안'한 정도이며 아내가 힘든 마음을 그렇게 표현했는데도 무심하게 귀담아듣지 않았었고요.

 


아내가 그 정도로 '조마조마'한 이유는 여차하면 아이들 혼내게 될 것이고, 그 상황으로 남편 빼고는 모두가 힘든 시간이 되기 때문입니다. 일상생활에서 아이들과 관계된 일들이 아이들 눈높이에서 보면 거의 '그럴 수 있다.'라고 할만한 일들입니다. 어른의 시선에서 이해가 안 된다고 어른끼리 하듯이 실수에 대해서 해명하라고 하고 정죄하면서 책임을 추궁했습니다. 저는 추궁하고 혼내기만 했고요. 그러다보니 매 순간 여차하면 집에는 긴장감이 돌고 아빠가 어느정도까지 혼낼지에 대해서 걱정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따가 보자!"라는 말을 들으면 아이들은 긴장하게 되고요. 좋지 않은 훈육이었지요.  



엄하게 혼내고 재발방지라면서 뭔가 규칙을 만들고 다짐을 받아야 진짜 상황이 끝났습니다. 그런 상황을 곁에서 보는 아내는 부모로써 충분히 이해가 되는데도 매번 그렇게 상황을 몰아가는 남편이 어쩔 때는 밉기도 했다고 했습니다. 그 상황가운데 아이들의 마음이 엄청 힘들 것을 느끼면서 아내의 마음은 매우 속상하기도 했다고 하고요. 혹여 억울한 아이의 속사정을 대신 말했다가 남편이 더 화를 내면서 상황이 악화되기도 했기 때문에 그런 상황자체가 벌어지는 것이 너무 싫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의 실수를 남편이 알게 되면 또 싸늘한 공기와 훈육이라는 명목으로 길고 긴 대화가 이어질까 봐 늘 '조마조마'한 것이었습니다. 그런 상황이 너무 힘들어서 소소한 실수들은 아이들이 아내에게 말하고 용서를 구하고 끝내기도 합니다. 신기하게도 그렇게 조용히 마무리했는데 남편이 귀신같이 알아채고 또 불러놓고 혼내곤 했고요. 그러니 아내는 아이들의 실수나 잘못을 알게 되면 늘 '조마조마'한 것이었습니다. 원래 아내는 불편한 상황이 만들어지거나 타툼이 일어나는 상황 자체를 감당하는 것이 힘들어서 가능하면 그런 상황을 만들지 않는 스타일인데 저와 살면서 여차하면 만들어지는 '불편한 상황'에 늘 '조마조마'한 것이 정말 싫다고도 했습니다.


지금은 어떻게 지낼까요?


물론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아이들 실수나 잘못에 대해 무조건 혼내기보다는 상황에 대해 찬찬히 듣기 먼저 합니다. 혹여 아빠가 잘못된 생각으로 아이들을 혼낼까 봐 항상 아내와 함께 합니다. 무조건 혼내거나 몰아세우기보다는 타이르거나 이해하려고 합니다.  


부작용이 생겼습니다.

아이들을 이해하고 대화하면서 해결하려고 하다 보니 말이 길어졌습니다. 금연하려고 금연껌을 씹다가 하루종일 금연껌을 씹느라 담배값이상 지출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럴 때마다 아내가 한마디 합니다. "남편, 너무 길어요." 그 말을 귀담아들으려고 노력은 합니다. 노력하면서도 아이들이 딴짓을 하거나 전혀 엉뚱한 말을 하면서 피하려고 하면 기어이 아빠 생각을 이해시키겠다고 말이 길어지는 겁니다. 여전히 부족합니다.



부족한 아빠의 갈 길은 멉니다.

직진해서 갈 길을 빙 둘러서 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고쳐서 제대로 가야 합니다. 늘 조마조마한 아내가 가끔 '다행이네요. 남편. 오늘은 적당히 해서요.'라면서 말할 때면 얼른!! 많이!! 고쳐야겠다고 생각합니다. 그 말과 함께 아내가 덧붙이는 말이 있습니다. '계속 이렇게 지내다가 나중에 아이들이 아빠와 대화 안 할까 봐 걱정이에요.'라는 말에 정신이 번쩍 들면서 '노력하자. 이래선 안된다.'라며 허벅지를 찌르곤 합니다. 전 직장 선배의 일화를 은날 느꼈던 충격이 또 떠오르기 때문입니다. 선배가 퇴근해서 집에 들어가면 아이들이 잽싸게 각자 방으로 들어가서 문을 닫는다고 합니다. 허락 없이는 아이들 방을 열고 들어갈 수도 없다고 합니다. 아이들 생활에 대해서 '노터치 노코멘트'라고 합니다. 아내는 늘 못마땅하게 여기고 대화를 안 한다고 합니다. 왜 사는지 모르겠고 왜 일하는지 모르겠다고 합니다. 아이들이 어릴 때 무조건 엄하게 혼내고 단호하게 굴었던 것에 대한 반격이라고 합니다. 그 모습이 저의 모습이 될까 봐 또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남편! 조마조마해요'를 쓰면서 느낀 소감은..


미안한 마음을 느끼다.

아내의 약한 마음에 불안감까지 더해줬다는 죄책감을 느끼기도 합니다. 아내는 아이게게 주고 싶은 대로 '사랑을 바탕으로 한 공감, 이해, 배려'를 베풀고 지냅니다. 저는 '사랑을 바탕으로 한 정직, 정확, 열심'만을 요구하고 지내는 것 같고요. 아내와 확연히 다른 차이를 느끼면서 저의 부족한 부분을 고치려고 합니다. 아이들과 사랑이 듬뿍 담긴 원만한 관계가 이어진다면 아내 마음에 평온함이 가득 차서 아내의 불안감도 사라질 거라고 생각합니다.



엉뚱한 사랑이었다.

사랑한다면 뭐든지 주고 싶고 이해가 되는데 저는 가끔 사랑을 엉뚱하게 표현하는 것 같았습니다. 충분히 이해가 되는데도 혼내기도 하고요. 적당한 거리감도 필요한데 너무 깊은 관심을 가지다보니 적극적인 개입도 했었고요. 다행인건 제대로 된 사랑을 하도록 '이제?'이지만 깨우치고 있습니다.



부족함의 실체를 알다.

지금까지 지내면서 부족함을 느낀 적은 실제로 없었던 것 같습니다. 부모님께서 부족한 재정일 때도 웬만한 지원은 해주려고 최선을 다해주셨고요. 사회에 나와서도 나름대로는 고통스럽다고 투덜댔지만 알게 모르게 직장동료, 선배, 협력업체의 도움을 많이 받고 문제들을 해결했습니다. 결혼생활을 시작하고 늘 빚을 갚는다고 '돈'에 대한 부족함만을 불평하며 괴롭다고만 했습니다. 늘 외형적으로 느끼는 부족함에 대해 불평했고 아이들과 지내면서 '돈이나 능력부족'에 대해 미안해했습니다. 사실 그것보다 더 중요한 사실을 깨닫게 되었는데 아빠라는 사람은 열정만 넘치고 대화가 서툴러서 아이들에 대해 이해와 공감이 부족하다는 사실입니다. 그런 사실을 알고 나서 다듬고 고쳐보고자 '어린이와 어른이 세상'이라는 매거진을 매주 한편씩 쓰고 있습니다.



이번 화요일도 쓰고 수정하면서 또 많은 것을 느끼는 시간이었습니다. 당연히 '미안함과 고마움'을 느끼기도 했고요. 깨달은 부족함을 얼른 극복하려고 노력해야겠다고 두 주먹 불끈 쥐면서 노트북 앞에서 앉아 있기도 했습니다. 때로는 약한 심성의 아내가 '조마조마'하거나 '불안'한 상황을 만들지 않는 남편이 되려고요.



매주 화요일 저의 글을 읽고 부족한 저의 모습을 공개할 때마다 격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한결같은 격려에 감사드리고요. 부단한 노력은 가정의 회복도 이루지만 사회에 성품 좋은 다음세대 세 명이 배출된다고 생각돼서 더 열심히 해보려고 합니다.  



여기까지 읽어주심에 미리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또 금세 다가올 화요일에는 "이제야 인정하네요. 남편."으로 찾아뵙겠습니다.


바람 없이 연 날리는 남자 Dd

출처:사진: Unsplash의 Alexander Krivitski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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