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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아! 제발 이러지 마요. +11

당신만큼 넓게 볼 여력이 없어요.

아내와 여전히 살고 있으면서 늘 불만을 가진 것이 있었습니다. 물론 전부 저의 시선에서 느끼는 불만인 것입니다. 오늘 적은 글들을 보시면 저의 불만에 대한 이유를 아실 것입니다. 아내는 길을 걸을 때면 앞을 보고, 승용차에 등승하면 앞을 보거나 눈을 감고 휴식을 취합니다. 필요한 대화를 하면서 갈 때도 있고요. 그게 전부입니다. 



그런 아내와 지내면서 늘 불만을 가지고 불평을 했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불평을 하면서 저는 힘들어했습니다. 아내는 어땠을까요? 아내는 더 힘들었습니다. 왜 그래야만 했는지에 대해서 적어 봅니다.  



1. 아내와 출근길을 동행하면서


"여보! 저기 봐요! 교복 입은 애들이 엄청 많이 지나가요. "

"그러게요. 우리 애만 한 애들도 있고 엄청 큰 애도 있네요."

"여보! 저어기 학생 보여요? 교복이 엄청 짧아요!"

"어디요? 아! 그러게요. 저기 애들 속에 걸어가는 애요?"

"걱정되네요. 우리 애도 저때쯤이면 저렇게 입겠다고 하겠지요? 걷지 못할 만큼 짧네요."

"그럴 수도 있지요."

운전하면서 등굣길 아이들 중에 치마가 정말 짧은 아이를 보며 아내에게 말했습니다. 등교하는 아이들 중에 그런 건 어떻게 잘도 보는지 저도 신기합니다. 'X눈에는 X만 보인다'일 수도 있고요. 이제 중학교 입학이 임박해져 가는 두 딸들을 보면서 순간순간 중2병 아빠로서 잘해야 한다는 '마음만' 바쁜 저에게는 그런 게 잘만 보입니다. 아내가 얼른 알아봐서 대화가 무난하게 이어갔던 상황입니다.  

  


그런데, 가끔.

"여보! 저기 봤어요? 엄청 재밌네요."

"어디요? 앞에 안 보이는대요?"

"아니. 아니요.. 저기 건물 3층이요. 유리창에 엄청 재밌는 그림들을 붙여 놨어요."

"나중에 애들하고 한번 가봅시다. 엄청 재밌을 것 같아요."

"아..... 아.... 그래요.... 남편. 나는 안 보여요. 그리고, 미처 못 봐요. 걷는 중이었잖아요."

"아니. 걸으면서 안 보여요? 신기하네요. 앞에 보이는 건물 3층인데 그걸 못 본다고요?"

"남편....... 안 보여요."

"아이고. 걷고 있고 앞을 보고 다니는데.. 앞에 보이는 건물 3층인데요? 이해가 안 되네.."

"남편! 나는 당신처럼 넓게 볼 여력이 없어요."


아내는 매번 이런 대화 때문에 지친다고 했습니다. 저는 매번 이해가 안 된다고 고개를 가로저었습니다. 그러면서 짜증을 내고 가끔은 화를 내기도 합니다. '눈앞에 있는데 못 보냐고!! " 



2. 둘의 대화를 보시면서 어떠셨을까요? 


매번 대화하면서 아내가 미처 못 본 것에 대해서 "못 봤어요? 왜 못 봤지요?"라면서 늘 갸우뚱거리기만 했습니다. 그럴 수 있다는 것은 한 번도 생각하지 못하고요. 아내는 길을 걸으면 앞과 필요하다면 옆을 봅니다. 가끔 하늘도 보곤 하고요. 저는요. 저는 앞, 옆, 위, 발아래, 심지어 가끔 뒤도 돌아봅니다. 길을 걸어 다니면서 온갖 것을 보고 다닌다는 말이 맞을 겁니다. 



그런 태도로 아내와 대화하다가 짜증 내고 화도 내는 것입니다. 전혀 짜증을 낼 상황도 아닌데 말입니다. 상대방이 관심이 가지 않거나 가진 에너지로 가능한 범위만큼만 보고 느끼고 살고 있다는 것은 전혀 인정하지 않았지요. 내가 보거나 느낀 것을 미처 못 느낀 아내에게 늘 불만을 표현했습니다. "그걸 못 본다고요?"   



그렇지만 일을 위해서 또는 어쩔 수 없이 맺어진 관계에서는 상대방에게서 그런 허점이 보여도 관대하게 대하면서 목적을 위해 늘 참았습니다. 일상 속에서 가장 가까운 아내가 그런 모습을 보이면 순간적으로 짜증을 내고 화를 냈습니다. 이 글을 적다 보니 온몸이 화끈거릴 정도로 창피함과 미안함이 느껴집니다.  오죽하면 아내가 '남처럼 대해달라'라고 했을까요? 


https://brunch.co.kr/@david2morrow/161


늘 "저거 못 봤어요?"라고 말할 때,  "나는 못 봤어요. 나는 당신처럼 넓게 보지 못해요."라는 말을 늘 했는데 못 알아듣고 지낸 것입니다. 저는 매일 재밌는 것, 특이한 것, 신기한 것을 보면 그저 느끼고 싶고 경험해보고 싶어 합니다. 그런 과정 중에 에너지를 쓰는 것이 아니라 에너지를 얻어서 더 큰 에너지를 사용하는 것 같습니다. 아내는 정말 하고 싶거나 진짜 호기심 가는 것은 최대한 에너지를 활용해서 즐깁니다. 정말 관심 가거나 꼭 하고 싶은 것이 아니면 때로는 무심한 듯 지나치면서 자신을 관리하는 안정적인 스타일입니다.  



매 순간 오감을 열어놓고 세상을 즐기려고 버둥거리는 저와 지내면서 아내는 버거웠을 것입니다. 같이 길을 걷다가 뜬금없이 남편이 "봤어요? 여보?"라고 말했으니까요. 봤냐고 물어보는 대상들이 건물 꼭대기의 구조물이거나 발아래 맨홀에 그려진 그림이거나 새로 생긴 카페 '안에' 처음 보는 커피 머신이나 레고블록들을 가리키기 때문입니다. 앞을 보고 길을 걸으면서 호기심 가는 것이 있으면 잠시 들여다보는 아내에게 매 순간 그런 것들을 물어봤으니 얼마나 피곤했겠습니까. 아내는 그런 피로를 견뎌주다 못해  "나는 당신처럼 넓게 볼 여력이 없어요."라고까지 말했을까요? 그렇다고 아내가 능력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필요한  것은 얼마든지 시야가 넓게 보고 배우면서 해냅니다. 다만! 매 순간 그렇지 않을 뿐인데 나와 다른 아내의 모습을 '늘' 틀렸다고 단언했습니다., "그걸 못 봤어요?"라면서 잘못된 것처럼 매도하기도 했던 것입니다. 



제가 대단한 사람도 아니고 능력자도 아닌데 말입니다. 그렇다면 저는 평범한 사람이면서 아내와 제가 다를 게 없다는 것입니다. 조금의 차이는 있겠지만 애초에 두 사람은 같은 수준의 사람인 것이고요. 그런 상황에서 어쩌다가 본 것을 아내가 미처 보지 못했다고 핀잔을 주고 짜증까지 냈었던 것입니다. 이 글을 적으면서 저의 그런 모습들을 제가 객관적으로 생각하다 보니 부끄러워집니다. 



그런 저의 관심과 부지런함이 만들어낸 산물이 "깨알프로젝트"입니다. 혼자서 잠시 생각을 하다가 길을 걷다가 보게 되는 것들을 적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아내와 걷다가 보는 것도 있는데 아내는 무심히 지나가고 저는 얼른 찍어서 음미하기도 합니다. 중요한 것은 아내가 '못 볼 수도 있다.'를 절대 인정하지 않고 아내가 예상 못한 시점에 피로감을 양산한 저의 모습을 반성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3. 그렇다면 지금은 어떨까요? 


당연하겠지만 그런 말과 분위기가 만들어지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여보! 저거 봤어요?"라고 했는데 "아뇨. 못 봤어요."라는 대답을 아내가 할 때면 "알겠어요. 재밌는 건데 못 봤으면 할 수 없죠모."라고 마무리합니다. 괜한 말과 행동으로 아내에게 피로감을 줬다는 반성을 했기 때문에 적극적인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어느새 또 실수를 하기도 합니다. 그러면 자책을 하기도 하고요.  










"남편, 나는 당신처럼 넓게 볼 여력이 없어요."를   쓰면서 느낀 소감은..


역시나 '미안함과 감사'를 가장 먼저 느낍니다. 

서로가 다르다는 것이 틀린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했는데도 또 다른 것에서 실수를 합니다. 최근까지도 "저거 봤어요?" "어디요?" " 저 흰 구름뒤 해가 멋지네요." "언제 하늘까지 봤어요? 난 못 봤어요."라고 대화하기도 합니다. 그런 대화가 싱겁게 끝나고 나면 '아! 맞다! 아내가 못 볼 수도 있는데... 괜히 물었네.'라고 혼자 속으로 반성을 하곤 합니다. 



평범함을 인정합니다. 

제가 평범한 사람이라는 것을 이제야 인정합니다. 출중한 능력이 있는 사람도 아니고, 큰 일을 도모할 사람도 아닌 평범한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합니다. 제 인생의 목표가 '한 번은 꼭 뉴스를 장식하는 사람이 되어보자'였습니다. 모르는 사람이 소개해준 여자와 결혼하는 시작 때문인지 저는 언젠가 그런 사람이 될 줄 알았습니다. 아내와 결혼하고 14년이 지나서야 인정했습니다. 인정하기 전까지는 늘 헤매고 다녔습니다. 이직을 할 때마다 이왕이면 색다른 일을 해서 독특한 경험이 가득한 이력을 만들려고 노력했습니다. 그 이면에 숨겨진 아내의 눈물을 모르고 지냈습니다. 

 

늘 새로운 것, 재밌는 것을 찾는다며 창문 밖만을 바라보는 남편과 소소한 일상을 감사로 여기면서 가끔 창문 너머를 바라보는 아내와의 삶을 불평했었습니다. 이제는 그런 불평보다는 안정감 있고 평탄한 삶을 위해 아내의 요구사항을 귀담아들어보려고 합니다.  



아내에게 물었습니다. '내가 고칠 것이 많아요? 할 말이 많아요?'라고 했더니 '만 가지'라고 합니다. 그 말에 당신도 '몇 천 가지예요.'라고 말하고는 이내 창피했습니다. 내가 '만 가지'를 고치면 자연스럽게 아내가 달라진다는 진리를 까먹고 또 감정적으로 '몇 천 가지~'라고 한 것입니다. 저는 여전히 감정적으로 대응하고 금세 부족함을 드러내곤 합니다. 

 


'편아! 제발 이러지 마요.' 에피소드를 적을 때마다 아내가 매 순간 느꼈을 피로감과 속상함에 대해 뒤늦게 알아가는 것이 많아집니다. 그럴수록 제 마음은 미안해서 무거워지지만 일의 실마리를 스스로 알아간다는 것에서 긍정적입니다. 이번 연재글을 적을 때마다 모두 저의 실수에 대한 글들이라서 적는 내내 수치스럽고 힘겹기도 합니다. 그런 감정들을 뒤로하고 꼭 짚고 넘어가야 할 산으로 여기고 열심을 내겠습니다.   



"남편, 조마조마해요."라는 글로 찾아뵙기로 하겠습니다. 또 뵙는 화요일까지 써놓은 글을 수정하면서 '미안함과 감사'가 공존하는 매일이 되겠지만 잘 적어보겠습니다. 공부 열심히 해서 원하는 모습이 되신 분들이 '공부법'을 알려주고 싶어 하고, 성공한 사장님들이 '사장되는 법'을 왜 알려주고 싶어 하는지 알 것 같습니다. 읽어주시는 분들 덕분에 '부족한 실수투성이'를 스스로 공개하면서 부단한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게 됩니다.



다음 주 화요일에 뵙겠습니다. 

여기까지 읽어주셔서 미리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바람 없이 연 날리는 남자 Dd 


출처ㅣ사진: Unsplash의 Joshua Ear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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