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아빠! 그래서 그랬어요. + 26

괜찮아요.


괜찮아요. 괜찮아요.......


아이들과 대화하다가 '운이 좋으면' 속 깊은 대화를 하게 될 때도 있습니다. 



'운이 좋으면'의 이유는 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어른의 시선으로 판단해서 아이들을 추궁하거나 혼낼 때면 아이들은 얼른 마음을 닫고 상황이 끝나기만을 기다립니다. 그렇게 되면 아빠는 아이들 잘못이나 실수를 더 꼬집거나 기어이 바로잡겠다고 하다 보니 상황이 악화될 때가 많습니다.   



그런 실수를 반복하다 보면 아이의 마음은 배제된 채로 어른의 생각만으로 대화를 집요하게 이어갔다는 것을 뒤늦게 느낍니다. 그러면 바로 후회하고 반성합니다. 그렇게 반복되는 상황을 지켜본 아내는 제게 정확한 피드백을 해줄 때가 많습니다. 그 피드백도 아빠가 기분이 좋으면 듣고, 기분이 나쁘면 안 들으려고 합니다.  



매번 좌중우돌 하고 가끔 급발진하는 아빠와 달리 자기의 기준으로 상황을 침착하게 판단하고 행동할 만큼 아이들이 훌쩍 커버렸습니다. 몸은 아직 자라야 할 상태이지만 마음은 이미 상당히 커졌습니다. 그러다 보니 쉽게 상처받기에 여차하면 속마음을 닫아 버립니다. 조심스럽게 노크해주지 않으면 속마음을 드러내놓지 않고 대화도 안 합니다. 아이의 기분이 괜찮고 아빠도 뭐든지 사랑해 주겠다는 얼굴과 자동차 타이어만큼 귀를 크게 여는 타이밍이 맞을 때면 진짜 깊숙이 숨긴 아이의 속마음을 듣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운이 좋으면'이라는 표현을 쓰는 것인데, 그런 날 들었던 대화를 번역해 보았습니다. 



비 오는 날 기분이 꿀꿀한 아이들을 위로하기 위해 편의점에서 간식을 사기로 했습니다. 아이들의 얼굴이 밝아지면서 후닥닥 모두 비를 피해서 들어갔습니다. 


"이거 살게요."

"그래."


"이거 사도 돼요?"

"안 돼!"  

"그거 말고 다른 거 해라! 그거는 아닌 거 같다." (언니, 오빠가 젤리 한 봉지씩 샀는데 막내는 몽쉘통통 한 박스를 집어 든 것이다.)

"그럼 이거 할게요."(다시 고른 것은  알사탕만 한 지구모양 젤리 1개이다.)

"아이고. 그건 너무 작네. 먹을 게 없어. 아까 거 골라서 같이 먹던가~"


"아니에요. 괜찮아요."


막내딸은 작은 젤리 1개만 그냥 사겠다고 한다. 언니, 오빠에 비해서 너무 작은 것이었다. 한 번 먹으면 없을 만큼 작은 젤리였다. 


"막내야~~~ 다른 거 골라라~"

"괜찮아요."



계산을 다하고 나오자마자 "먹어도 돼요?"라고 묻더니 어느새 아이들은 먹기 시작했습니다.  막내도 먹기 시작했는데 먹을게 금세 없어졌습니다. 



막내딸은 언니와 키가 비슷해지는 것과 아직 확실히 어립니다. 자신은 몸만 초등 3학년일 뿐이지 생각과 의욕은 중학교 1학년 오빠 수준으로 늘 맞추고 지내는 것 같습니다. 막내다 보니 눈치가 없다기보다는 그냥 순수하게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일들이 많습니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막내는 늘 혼납니다. 사실 혼날 일이 아니고 순수하게 있는 그대로 행동하는 것인데 눈치 보고 상황에 맞게 조절하는 오빠, 언니와 비교돼서 자꾸 혼나는 것입니다. 막내는 늘 억울해합니다. 잘못한 것이 없는데 혼난다고요.  



그런 막내딸의 마음을 이해해 주기보다는 이미 커가고 있는 오빠, 언니 기준으로 바라보며 모든 행동과 말의 수준을 기대하다 보니 막내딸을 혼낼 때가 많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막내딸과 단 둘이 앉아 있게 된 날이었습니다. 물론 막내딸이 상당히 기분 좋은 날이었습니다.  


"근데, 너는 왜 여차하면 괜찮아요..라고만 하니?" 

"그냥요."

"아빠한테 말해봐. 아빠가 뭔가 이해 못 하는 게 있는 거 같아서."

"아니에요." 

"말해봐. 그래야. 너의 마음을 아빠가 이해해 주고 챙겨주지..." 

"사.. 실... 은... 요....." 

"혼날까 봐 그냥 포기해요."

"........."


막내딸이 순수하게 말하고 행동하거나 어리광 피울 때마다 오빠, 언니 수준으로 행동하길 요구받으면서 늘 혼났기 때문입니다. 막내딸은 한번 해서 혼나면 아예 빨리 포기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제는 좀 컸다고 오빠, 언니 앞에서 혼나는 걸 자존심 상해하기도 합니다.   



괜찮아요- 또 혼날까 봐 그냥 포기할게요. 


라는 의미였습니다. 



아내가 한 말이 생각났습니다.

"막내는 아직 관심이 필요한 아이예요. 자유롭게 통통 튀도록 놔두고 싶어요. "



막내딸과 대화하다 보니 아내가 한 말이 이해가 되었습니다. 

'이런! 아기에게 기저귀 뗐으니 얼른 걸어라.'라고 요구한 셈입니다. '큰아들과 둘째 딸이 아직도 어린데 벌써부터 눈치 보고 행동하고 말하는 게 안쓰러워요. 막내딸만큼은 자유롭게 말하고 행동하도록 해주고 싶어요."라는 말이었습니다. 



기분 좋은 막내딸과 대화하다 보니 뒤늦게 알게 된 것이 또 생긴 하루였습니다. 또 뒤늦은 반성과 후회를 한 날이기도 하고요. 







삼 남매와 지내면서 아이들 했던 말을 하나씩 번역하다 보니 느끼는 것이 있습니다. 삼 남매와 '함께'살고 먹고 다니다 보니 '삼' '남' '매' 각자의 마음을 알아주는 시간은 부족했던 것 같습니다. 매번 뭉뚱그려서 '우리는~'이라는 전제로 '이해'와 '포기'만을 요구했던 시간이었고요. 



또, 일상생활에서는 막내딸에게 나이에 맞지 않게 오빠, 언니 수준의 '생활태도'를 기대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 보니 종종 혼내게 되고 여차하면 빨리 포기를 했습니다. 혼난 것은 아예 재시도 자체도 안 하게 되고요. 그런 생활은 부작용을 일으켰습니다. 학교나 다른 관계에서도 뭔가 애매한 상황이 되면 '쉽게 포기'해버리고 안 하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막내딸이 밖에서 '종종 쉽게 포기'한다는 말을 아내에게 몇 번이나 들으면서 '왜?'라고 반문하기도 했습니다. 그것에 대한 궁금증이 막내딸과 대화하면서 100% 이해가 되었습니다. 막내딸은 막내답게 자유를 만끽하도록 더 신경 써주려고 합니다.  



막내딸의 말을 번역을 마치면서 '어이쿠'라고 하고 '꼭'이라고 다짐하는 날이었습니다. 막내딸이 이제는 "괜찮아요."라면서 쉽게 자기 의견을 포기하도록 만들지 않을 것입니다. 아이의 말 한마디를 번역할 때마다 깨닫는 내용이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포기하면 안 됩니다. 포기하지 않아야 제가 정말 좋은 영향력을 주고 울타리 같은 아빠가 될 것입니다. 



오늘도 부족한 면을 드러내고 재다짐하는 아빠를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미리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큰사람(by 바람 없이 연 날리는 남자 Dd) 

출처:사진: UnsplashLynn Kintziger




이전 04화 아빠! 그래서 그랬어요. +27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