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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아! 그래서 그랬어요. +28

피곤하실까 봐서요!

아픈데.. 엄마 아빠 왜 안 깨웠니?
피곤하실까 봐서요...



막내 아이가 열이 높아서 몹시 아팠던 날이었습니다. 

밤새 아무것도 모르고 자고 일어났는데 학교를 가야 할 아이 얼굴이 이상했습니다.


"어디 아프니? "

"열나는 거 같아요."

"열? 열 좀 재보자."

"어? 38도가 넘잖아. 병원 가야겠다. "

"밤새 아팠던 거 아냐? "

"자는 동안 너무 추웠어요."

"? 열이 높으니까 그렇지... 왜 말 안 했어?"


"피곤하실까 봐서요."


"머어? "



아이의 말을 듣고 아무 말도 못했습니다. 아프다고 말만하면 케어를 받는 게 아이들인데 밤새 혼자 덜덜 떨며 견딘 것입니다.



매우 더운 날씨에 아이가 열심히 놀더니 열감기에 걸린 것입니다.  "아파요.. 와줘요..."라고 말하고 떼를 써야 하는데.... 아이가 정당한 표현을  것입니다. 그만큼 마음이 불편하다는 것이기도 하고요.



아이들이 아기일때는 살짝 찡얼거리기만해도 119처럼 달려가서 무한 관심과 사랑으로 보다듬어줬습니다. 악몽을 꿔서 무서워할 때, 낮에 힘든 일 때문에 계속 생각나서 잠을 못 잘 때 등등에 대해서 팔이 아픈 줄도 모르고 토닥거려 주면서 재웠고요.



아이들이 조금 커가면서 막내를 재우느라 조용하게 있는데 두 아이들이 잠이 안 온다며 투정 부리면 혼내기도 했고요. 아내가 힘들어서 손 하나 들지 못할 만큼 피곤해서 뻗었을 때 아이들이 투정 부리면 힘든 엄마 생각못해준다며 혼냈습니다. 어른들과 있을 때 뜬금없는 음식투정이나 사고를 쳐도 혼냈습니다.



아이가 아이답게 표현하는데 자꾸 상황을 이해 못 한다고 혼내고, 적당히 떼쓰라면서 혼내기도 했습니다. 그런 일이 반복되니까 아이들이 점점 '어른스러워졌습니다.' 아이가 아이답지 않게 상황에 대한 눈치를 보기 시작한 것입니다.


피곤하실까 봐서요= 혼날까 봐서요.


엄마 아빠가 중간에 깨서 열이 나는 자기를 챙겨주느라 피곤하실까 봐 걱정되는 것이 아니라 진짜 아픈데 밤에 엄살 부린다고 장난친것처럼 혼날까 봐서 말할 엄두를 못 낸 것입니다.



아이인데 어떻게 상황파악을 하며 아이인데 엄마가 힘들고 아픈것이 얼마나 인식되겠습니까? 그저 아빠이자 남편의 주관적인 판단으로 상황을 제어하면서 아이들에게 눈치가 있으라고 평상시 수시로 요구한 덕분에 벌어진 일입니다.  그렇게 세 아이가 지내왔습니다. 아빠의 과욕이 부른 대참사였습니다.



아이의 말을 듣고 얼마나 마음으로 울었는지 모릅니다.



"미안하고 미안해."



아이는 진짜 순결하고 야들야들한 새싹과 같아야 하는데 여차하면 혼내고 꾸중을 들었더니 '벌써' 비바람에 끄떡없도록, 상처받지 않으려고 늘 조심하고 선뜻 용기 내지 않는 딱딱한 선인장처럼 된 것입니다.





학교를 쉬게 하고 아이를 데리고 얼른 병원을 다녀왔습니다. 아이는 집에서 열이 38도를 훌쩍 넘기면서 축 늘어졌었는데 병원 가니까 열도 내리고 조금 나아진 모습이었습니다. 약국에서 약을 받고 나오면서 먹고 싶은 간식을 마음껏 사라고 했습니다. 밤새 몸과 마음이 아팠을 아이에게 위로와 사과를 하고 싶었습니다.



아이는 너무 좋아하며 "나만 사주는 거야?"라면서 매우 신나 했습니다. 점심을 먹고나면 쓴 가루약을 먹을 생각에 찡그리지만, 아빠랑 단 둘이 논다는 것과 먹고 싶은 간식을 아무런 제재 없이 획득했다는 생각에 얼굴이 엄청 밝았습니다. 학교 다녀 온 오빠, 언니에게 바로 자랑하는 모습도 귀여웠습니다. 그런 아이의 천진난만함을 훼손했다는 생각에 엄청 반성했습니다.



이번에는 막내딸 말을 번역해 봤습니다. 아픈 아이가 아침에 하는 말을 듣고 한동안 멍하게 앉아 있었습니다. 너무 미안했습니다. 가정의 질서를 잡고 늘 다른 사람에게 피해 주지 않고 이왕이면 선한 사람이 되도록 남매를 '가르친다며' 수시로 혼 냈던 것들의 부작용입니다. 이런 부작용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막내딸의 말을 번역하는동안도 엄청 미안했습니다.



아내말을 번역할 때보다 아이들말을 번역할 때가 더 마음 아픕니다. 아무렇지 않게 한 말들로 아이들이 변해 버린 것을 이제서야 깨닫기때문입니다. 깨닫게되니까 시간이 야속하고 모르고 한 행동들이 미웠습니다.



과욕에서 비롯된 무한 꾸중은 대참사를 낳고 아이들 마음에 가시 돋친 꽃씨를 뿌렸습니다. 그런 생각이 들때마다 섬뜩합니다. 마음 속에서 가시 돋힌 꽃들로 얼마나 상처받고 있을까...점점 더 미안해집니다. 아이들 말을 또 번역해서 수정을 거듭하는 한주내내 미안함을 느껴서  덜덜 떨 수도 있지만 잘 붙잡고 발행하겠습니다. 그것이 현실을 직시하고 변화하는 지름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칫 매우 안 좋은 아빠로 보일 수도 있지만 저의 부족한 단면도 저의 모습으로 인정하고 바짝 변화시키겠습니다.



덧붙여서:

막내 아이가 병원 가느라 학교 쉬고 간식 하나 맘껏 산 것을 부러워한 오빠와 언니가 말했습니다.

"나도 아프고 싶다. 학교 쉬고 아빠랑 놀면서 간식 사 먹고 싶다...."

'그 말을 들으니 또 마음이 무너져 내립니다...'



여기까지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미리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큰사람(by 바람 없이 연 날리는 남자 Dd)

출처: kristine wook. By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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