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 남매와 살면서 선택이 필요할 때 "뭐 하고 싶니?"라고 물으며 중학생이 된 큰아들에게는 '진짜 자기 선택권'을 부여하기 시작했습니다. 반대로 아직 초등생인 두 딸은 상황에 따라 "지금은 안될 것 같아!!"라고 제지하기도 합니다.
음식점 메뉴, 감상할 영화, 간식 종류, 휴일 가족이 즐길 아이템 선정 등등에 있어서 그런 기회를 제공하는 것입니다. 그런 선택의 상황에서 두 딸은 적극적으로 자기주장을 하면서 선점하듯 뭔가를 고르는데 큰아들은 늘 그런 분위기와는 정반대로 주어진 권한을 제대로 활용하지 않은 것입니다.
활용하지 못한다기보다는 안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점점 속이 답답하고 속상할 지경까지 이르고 있었습니다.
"우리 다 같이 중국집 가서 저녁 먹자!"
"아들, 어떠니?"
"저는 상관없어요."
"그러지 말고.. 괜찮니?"
"상관없어요."
"오늘 하루종일 대기할 일이 많은데 아들은 스케줄 있으면 따로 가라!~"
"없어요."
"없어? 없으면 같이 있어야 하는데. 친구랑 만나서 놀던가?"
"싫어요. 그냥 있을게요. "
"재미없잖아. 동생들과 붙어서 시간 보내는 게.."
"상관없어요."
늘 그렇게 대답하고 내색을 하지 않으려는 아들을 중2병의 시작으로 치부했습니다. 아무렇지 않게 그런 모습으로 치부하고는 조심스럽게 대하려고만 했습니다. 그런 상황이 이어지면서 마냥 중2병으로 치부하기에는 뭔가 석연치 않아서 아들에게 대화를 제안했습니다.
마침 아들이 좋아하는 상큼한 야채가 가득한 샌드위치와 대형 음료가 앞에 있어서 대화의 시작이 순조로웠습니다.
"맛있냐?"
"오랜만에 맛있어요. 좋네요."
"가끔 우리가 물어보면 매번 '상관없어요.'라고만 하더구먼. 무슨 문제 있니?"
"아뇨."
"그렇게만 대답하면 학교에서도, 사회에서도 너의 의견은 배려받지 못할 때가 종종 생기게 된다."
"괜찮아요."
"그렇지 않아."
"너의 의견을 확인하는데.. 정작 본인은 왜 매번 '상관없어요.'라고 하면서 그냥 의견을 말하지 않니?"
"......................."
"응?"
"잘못된 결정 해서 혼나고 싶지 않아요."
"책임질 일을 만들고 싶지 않아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심장이 멎었습니다. 귀 속에서 "삐이~~~"소리만 나면서 마주 보면서 먹고 있던 샌드위치를 꽉 붙잡기만 했습니다. 아무 생각이 안 나면서 당황스러움에 아들과 저만 시간이 멈춘 느낌이었습니다. 우리 둘만 회색빛으로 변한 것 같았습니다.
아들은 역시나 진짜 아무 생각이 없고 모든 의견에 동조가능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자기 의견대로 결정했다가 잘못되었을 때 그에 따르는 책임을 지는 것이 버겁다는 것입니다. 그런 마음의 부담감 때문에 가능하면 '상관없어요.'라고 자기 의견을 말하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들이 진짜 좋아하는 샌드위치를 오랜만에 먹다 보니 말했기는 했지만 실로 충격이었습니다. 아들이 그래도 속 시원하게 말해줘서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릅니다. 아직은 그런 아들과 살고 있다는 사실에 매우 감사했습니다.
상관없어요. - 책임질 일을 만들고 싶지 않아요. 혼나고 싶지 않아요.
두 딸은 뭔가 선택권만 주면 자기 것을 결정하려고 나서는데 큰 아들은 늘 "상관없어요."라고 말한 것은 '책임질 일을 만들거나 혼나고 싶지 않아서'라는 말이 마음이 많이 아팠습니다. 예전에 했던 말 중에 어릴 때부터 뭐만 하다가 혼나면 셋이 모두 모여서 혼나다 보니 아들은 언제부터인가 다 같이 혼날 일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그런 일이 생겨나는 것도 싫어서 두 동생들을 혼내기도 하고 윽박지르기도 한다고 했었던 말도 생각났습니다. 그런 말들도 생각나면서 미안한 마음에 찢어진 속마음을 붙잡고 아들에게 말했습니다.
"아들, 사실 너에게 선택권을 주는 것은 네가 중학생이고 충분히 결정하고 감당할만한 것들을 과감히 선택하고 즐기라는 의미에서 엄마 아빠가 하고 있는 노력이야. 혹 결정에 따라 틀리거나 잘못된 결과가 나와도 크게 문제가 되거나 혼날 일들은 없어. 엄마 아빠가 감당할만한 일들에 대해서 선택해 보라고 하는 거니까."
"네.."
"그러니까 다음부터는 뭔가 의견을 물어보면 솔직하게 당당하게 해 봐. 그래주면 좋겠다."
"네..."
그런 대화를 하고 나서 자기 전에 아내와 아들과 한 대화내용을 말할 때였습니다.
"아들이 그런 마음 때문에 늘 그랬대요."
"그것도 있고요. 언제부터인가 자꾸 선택하라고 물어보니까 갑자기 혼자 동떨어진 느낌이 들고 부담스러웠대요. 여동생들은 엄마 아빠가 계속 선택해주고 하는데 자기만 선택하라고 물어보니까 결정하기가 힘들었대요."
"그런 것도 있었네요...... 아들 생각을 좀 더 살펴서 뭔가를 해야겠네요. 본인이 원치 않는데 선뜻 중학생이라고 존중해 준다면서 갑작스럽게 '전격적인 대우'를 했더니 당황스러웠다보네요."
그렇게 아내의 말까지 듣고 보니 아들이 하고 있는 행동과 속마음, 불안감까지 헤아릴 수 있었습니다. 한편으로는 아내와 필요한 대화를 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했습니다. 아들과 아직은 그런 대화를 할 수 있다는 것에도 진심으로 감사를 느끼면서 행복했습니다.
이번에는 큰아들의 말을 번역해 봤습니다. 삼남매와 살다보니 아들, 딸, 딸이 각자 하는 말들이 다르고 그 말 속의 의미가 남다를때가 많습니다. 같은 느낌도 있지만 각자 마음 속이 정말 다르다는 것을 많이 느낍니다. 유명한 번역가분들같은 전문가는 아니지만 제 아이들의 말의 '진짜 의미'를 번역하면서 이 시간이 정말 소중함을 느낍니다.
아들은 제일 먼저 태어나서 엄마 아빠의 신혼생활부터 지금까지 늘 함께하면서 아빠의 실수를 제일 많이 느끼고 그에 따라 생각과 행동이 의도치 않게 조심성 있고 신중해지기도 했습니다. 그냥 가만있어도 불안감을 느끼기도 하고요. 혹여나 아빠가 화를 내며 모두를 혼낼 때면 극도로 힘들어하기도 했습니다. 아들이 아장아장 걸었을 때부터 느꼈던 아빠에 대한 무서움이 내재되어 있다 보니 지금은 조금만 혼내도 마음에 느껴지는 파장은 3배 이상이라고 하긴 했습니다.
그런 이유로 아들은 여차하면 움츠려 들고 상황에 대해 상처받지 않으려고 잠잠히 있는 편이기도 합니다. 그런 아들이 이제 슬슬 반항하면서 말대꾸하기 시작합니다. 자기 생각과 달리 판단되어서 혼나는 상황에 대해서 불합리하다며 화를 내기도 하고요. 뒤돌아가면서 투덜거리기도 합니다.
아들의 그런 행동에 "이 녀석이.. 이런 행동을!!" 하면서 괘씸하다가도 그렇게 표현해 주는 것이 감사하다고 느껴집니다. 앞으로도 아들과 더 잘 지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아들이 자기 전에 '오늘 감사했어요.'라고 안아주는 포옹에 그저 '뭘. 오늘은 특별히 해준 게 없는데.'라고 멋쩍어하면 아들은 아빠가 놀랄만한 답들을 하기도 합니다. '침대 사주셨잖아요.' '같이 축구공 차고 놀았잖아요.' '맛있는 거 먹게 해 줬잖아요.' '다 같이 새로운 간식 먹으며 앉아 있었잖아요.' '오늘도 추억하나 만들었잖아요.'라면서 그가 느낀 다양한 '그날의 깨알 감사'들로 아빠를 추켜세워주면서 다시 한번 포옹해 줍니다.
아들이 점점 더 중2병에 가까워지고 반발이 거세질 것입니다. 그런 것들을 유연하게 받아주고 포용해 주는 온유한 아빠가 되어보겠다며 혼자서 몇 번이나 주먹을 불끈 쥐어보면서 마무리한 글입니다. 이번에도 아이의 말을 번역하면서 얼마나 가슴으로 울었는지 모릅니다. 이런 깨달음 때문에 공개글을 쓰는 것이고 바짝 고쳐야 함을 잊지 않기 위해서 스스로 마음에다가 채찍길을 가하고 있습니다.
여기까이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미리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부족한 아빠가 부족한 모습을 드러내놓는 것은 용기를 내는 것이고 그것을 고치기 위한 몸부림이라는 것으로 여겨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즐겁고 재밌는 글이 아니고 눅눅한 내용이지만 이런 글들을 통해 많이 반성하고 변화하면서 가정 안에서 건강한 몸과 마음으로 살면서 좋은 글을 짓는 남자가 되도록 거듭나는 계기로 삼겠습니다.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다음 주 화요일 또 발행글로 뵙겠습니다. 글을 수정하는 내내 먹먹하고 미안한 마음을 붙잡고 글을 마무리하곤 합니다. 문제의 핵심에 직면하는 과정이라 생각하면서 열정을 다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