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과 영화를 보면서 아이들의 속마음을 알아가고 있습니다. 속마음을 영화를 함께 보면서 더 알 수 있다는 것이 짜릿할때도 있습니다. 이번 프로젝트가 저에게는 특별하고 감사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삼남매의 일상은 힘든 나날입니다. 학원을 갈 상황이 아니라서 자의반 타의반으로 스스로 공부하도록 가이드하고 있지만 어렵습니다. 놀고 싶지만 같이 놀고 싶은 친구는 학원 가서 밤에 오니까 아이들은 늘 '먼산 바라보기'같은 마음으로 집에 오곤 합니다. 그런 아이들을 위로하고자 금요일밤에 영화 한 편 보자고 제안했습니다.
영화 보기를 제안했지만 역시나 영화선정은 순탄하지 않습니다. 삼남매가 취향이 서로 너무 달라서 늘 접점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영화를 고를 때마다 싸우고 난리도 아닙니다. 함께 볼 영화를 고르다가 '교복 입고 껌 씹는~'한국 영화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이 영화 보자!! 재밌을 거야. 옛날 교복 입던 학창 시절이네!'라고 했더니 아이들은 "그래요!"라면서 호응했습니다. '써니'의 옛감성덕분에 이런 영화는 언제나 '오케이'사인이 납니다.
영화는 박보영의 걸크러쉬와 이종석의 바람기, 걸크러쉬와 야합이라는 명목으로 은근히 순정파인 김영광, 그리고 겉과 속이 다른 서울 전학생 이세영간의 '버라이어티 타임머신 러브 막장 영화'였습니다.
영화를 보면서 아이들이 아무렇지않게 내뱉는 말들을 통해서 아이들 속마음을 알아가고 있는데 이번 영화를 보면서 매우 당황했습니다. 아이들이 별 말을 하지않고 영화만 보는 것이었습니다. 저로써는 아이들의 또 다른 면을 본다는 것도 있어서 시간이 가면 갈수록 영화가 재밌지만서도 난감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말없이 몸만 움찔움찔)"
두 딸은 영화 중요장면마다 말이 없었습니다.
아이들은 이종석이 자기만의 방법으로 여학생들을 정복한다면서 멘트를 날릴 때마다
"..................................(움찔)"
박보영이 이종석을 향해 질투의 눈으로 지나갈 때마다
"...........................(움찔 찔끔)"
김영광이 터프를 씹어먹으면서 박보영에게 자기에 대한 사랑을 확인할 때마다
"..........(움찔)......(움찔)....."
액자 속의 새빨갛고 동그란 사과를 바라보듯 이세영의 자태를 지켜보는 이종석을 보면서
"....(움찔) (눈 꼬옥).....(움찔)..."
큰아들도 영화 내내 말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수많은 씬마다 미동도 하지 않고 의자에 깊숙히 앉아서 이따금씩 손가락의 애꿎은 살만 뜯고 있었습니다. 움직임이 거의 없었습니다.
그런 아이들이 한마디도 안 해서 속마음을 아는 시간이 안 될 것 같아서 처음에는 '어어.... 어..'라고 갸우뚱했습니다. 그러나 영화가 중반부로 들어서면서 저는 "아하~~"라면서 아르키메데스처럼 혼자서 깨달음에 따른 쾌재를 외쳤습니다.
"응..저건.....그거야!"
아이들의 한마디 -
"............................................" - 아이들은 이제 사랑의 감정을 알아가기 시작했다 - 피 끓는 청춘
아이들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끙끙~'거리고 '움찔'거리며 거의 말을 하지 않은 이유는 할 말이 없어서가 아니었습니다. 영화 속에서 나오는 박보영의 숨겨둔 사랑, 김영광의 짝사랑, 잊고 지낸 사랑을 다시 확인하게 된 이종석의 바람기 연기를 보면서 두 딸은 '아찔하고 오글거리는 사랑'을 심쿵하면서 느끼는 나이가 되었습니다. 예전에는 그런 것을 봐도 "뭐야? 저게?"라고 하던 두 딸은 이제 "움찔"거리면서 어쩔 줄 몰라했습니다. 그런 감정을 느끼고 수줍어하고 속마음이 들킬까봐 움찔거리면서 아무 말도 안하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큰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 말 않고 손가락만 뜯으며 영화를 집중해서 본 이유는 움찔거릴 만큼 아찔한 사랑을 아는 것도 있고, 남학생들끼리 치고받고 서로 우열을 가리는 상황들을 보면서 감정이입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무엇이 괴롭힘인지, 무엇이 정의인지, 무엇이 짝사랑인지, 자기 마음의 감정이 사랑인지 그냥 심쿵인지를 알아가는 확인하는 시간이었던 것입니다. 큰아들이 중1이지만 애송이라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마음속은 청년이 될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덩달아 느낀 한마디-
아! 아이들이 어느새 사랑을 아는 나이가 되어가네. - 피 끓는 청춘
영화를 보고 나니 이 영화를 잘 선택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아이들이 별 말을 안해서 속마음을 모를까봐 마음속으로 애걸복걸했던 것은 기우였습니다. 말없이 움찔거리는 아이들을 보면서 느낀 것이 오히려 더 깊은 감동과 진한 여운이 남게되어 참 좋은 영화였습니다.
이 영화의 포스터를 함께 공유해보고 싶습니다. 포스터만으로 이 영화를 보면서 아이들의 마음을 느낀 시간, 영화 속 오글거리거나 심쿵하게하는 장면들이 또 떠올라서 웃음이 나옵니다.
10년 전 영화라서 예고편을 공유해봅니다. 한번쯤 향수를 잠시 느끼기에 좋은 영화라고 생각됩니다.
https://youtu.be/LfVjazBVlOw? si=KVU2x2 kQ8 alC5 me0
'삼남매 속마음 알아내기'를 실패한 영화가 될까봐 조마조마했습니다.
정말 쓸데없는 기우였습니다. 아이들이 별 말을 안 하고 영화를 보니까 '어어... 이러면 안 되는데..."라면서 처음에는 혼자서 중얼거렸습니다. 그런데, 막상 영화를 다 보고 나니 아이들이 '설레고 심장이 터질듯이 쿵쾅거리고 두근거리는 그 마음'을 느끼고, '상대방을 꼬시기위해 던지는 오글거리는 멘트와 행동들'을 마치 자기가 당하는 것처럼 어쩔줄 몰라하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앉아 있지만 손을 비비꼬고 몸을 움찔거리면서 안절부절하는 모습들이 너무 귀여웠습니다. 특히, 초3 막내가 제일 몸을 심하게 꼬면서 눈만 말똥말똥거리는 것을 보는 것이 정말 예뻤습니다. 아이들이 어느새 '사랑의 감정'을 느끼고 움찔할 나이가 되어가는 것을 알게 되어서 뿌듯한 영화였습니다. 예전에는 "뭐야! 왜 저래!"라고 하던 아이들이 이제는 '몸을 베베 꼬면서 어쩔 줄 몰라합니다.' '괜시리 얼굴이 핑크빛이 됩니다.'
녹색 플라스틱그릇에 담긴 짜장면 한 그릇
덩달아 저의 어린시절을 떠올릴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그때 저의 마음도 다시 생각할 수 있어서 행복했습니다. 아버지의 월급날이면 짜장면 먹으러 시내 짜장면집에 가던가, 고깃집에 갔었습니다. 아버지 회사 회식을 따라가면 짜장면을 시켜 주셨습니다. 신문지를 깔고 책상에서 비비다보면 손가락의 힘이 약해서 옷에 다 튑니다. 먹다보면 입 주변이 시커멓게 짜장풍년입니다. 그럴때마다 아버지 동료분들이 한참 웃으시기도 했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창피하기도 했지만 짜장면이 너무 맛있었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추억'입니다.
우리는 '추억'을 먹고 '오늘'을 사는 것 같습니다.
아이들 마음을 덤으로 알기 위해서 영화를 보다가 과거로 흘려보낸 '추억'들이 다시 떠올랐습니다. 일을 하느라, 아이들을 양육하느라, 재정과 다양한 문제들을 고민하느라 기억 저편 가장 깊숙한 곳으로 밀려 보낸 '추억'들이 새록새록 떠올랐습니다. 그 추억들이 '새로운 활력'으로 바꿔져서 몸과 마음에 채워지면서 뭔가 리필된 느낌이었습니다. 한편으로는 이번 영화덕분에 이런 '추억'을 만들어주기 위해 평생 애써주신 부모님의 '사랑'을 다시 떠올리는 계기이기도 했습니다.
저의 부모처럼 저도 아이들에게도 '추억'을 많이 만들어주어야겠습니다.
나중에 '많은 추억'을 먹고 현실을 살아내도록 해줘야겠습니다. 재밌는 것은 이 영화 덕분에 '응답하라 1998'시리즈를 보게 되었습니다. 아이들이 과거의 우리네 모습에 정겨움과 재미를 느끼면서 자꾸 보자고 해서 또 '과거'로 여행을 이어가게 되었습니다.
여기까지 적어 보았습니다. 이번 영화를 보면서 아이들 속마음을 색다르게 알아감과 동시에 나의 부모님의 사랑, 그 사랑으로 만들어주신 '추억'을 덩달아 떠올려서 참 좋았습니다. 이번 글을 읽으시는 작가님들도 '그때 그 시절 추억'을 떠올려보시면서 잠시 '행복'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오늘도 미리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큰사람(by 바람 없이 연 날리는 남자 D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