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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런'은요. +18

깜장 초콜릿

아이들과 한동안 시리즈물을 보다가 오랜만에 진지한 영화를 봤습니다. 보고 싶은 것 취향이 제각각인 아이들이 여전히 고르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자꾸 공포물을 보고 싶다는 아이들에게 밤에 잠 못 잔다면서 말리고 있었습니다. 아내가 갑자기 영화를 추천했고 '이 영화를 추천한다고? 아이들이 이해가 될까?'라면서 찾아봤습니다. 


사실 아이들이 한동안 공포영화를 보고 싶어 했습니다. 초3, 초5, 중1의 다양한 연령대가 포진한 가족의 특성상 블록버스터급 영화를 잘못 보면 트라우마가 생길 만큼 피와 괴성이 난무하는 영화를 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자꾸 공포물을 보고 싶어 하는 이유는 주변의 친구들이 어른들 보는 공포물을 보고 와서 무용담처럼 자랑스럽게 말하는 것을 듣고 부러워서 하는 말이었습니다. 아내가 추천한 영화를 통해 스릴러, 미스터리물을 보면서 워밍업 해보자고 했습니다. 

 


아이들에게 약간의 설명을 해주고 '런'영화를 보기 시작했습니다.  

엄마와 아픈 딸만 사는 일상에서 일어나는 예상 못한 일에 대한 미스터리, 스릴러 영화였습니다. 

영화 시작은 매우 지루하고 평범한 일상의 서사가 이어지느라 아이들은 재미없어했습니다. 영화를 보면서 간식을 먹는 건지 간식을 먹는데 영화를 틀어놓은 건지 모를 정도였습니다. 게다가 영화 중반직전까지는 몰입하지 못해서 간식을 먹으면서 서로 번갈아가면서 싸우기도 했습니다. 마음속으로 얼른 영화가 도입부를 지나 본격적인 서사가 시작되었으면 좋겠다는 간절함이 북받치는 순간이었습니다.  



아내는 추천한 영화의 스토리를 알고 있기 때문에 저의 마음과 달리 크게 초조해하지는 않았습니다. 아내와 달리 저는 '세 아이들과 즐기는 전 세계영화제(TDGMF)' 위원장으로서 - 제가 아이들과 영화를 보는 이유 - 영화가 끝나고 나서 아이들의 관점에서 '이 영화 재미없네!'라는 말을 들을 때면 힘이 빠지기도 했습니다. 영화를 잘못 추천해서 행사를 진행한 총괄위원장 같은 마음 이어서입니다.  



평범하고 헌신적인 엄마의 평온한 일상은 연못 위의 백조 같습니다.  영화가 본격 진행되니까 수면아래에서 보이지 않게 수만 번의 발차기를 하는 백조처럼 엄청난 계획과 실행이 치밀하게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점점 집중해서 봐야 할 장면들이 시작되었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헌신적이고 평온한 일상의 엄마와 아픈 딸의 눈치작전이 시작되면서 긴장감이 흘렀습니다. 아이들은 점점 간식에서 손을 떼고 영화에 집중하였고요. 


"엄마가 저러면 안 되지. 보살펴주고 사랑해 줘야지" 


딸들이 그렇게 말하면서 점점 화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도 이내 초긴장하고 몰입하느라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습니다. 몸은 움츠러들고 긴장감을 견디지 못해서 눈을 가렸다가 다시 보기도 했습니다. 큰아들도 엄마의 기행을 보면서 


"에휴. 엄마가 왜 저래! 진짜 별로다."

아이들이 분개하면서 영화 속 엄마에게 화내는 상황에 아내도 "그래!! 저러면 안 되는 거야! 엄마가!! 너무 이상하다."라면서 동조하기 시작했습니다. 중반부를 넘어서면서 엄마와 딸의 기괴한 관계가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동안 수많은 영화를 감상한 아이들은 은근히 결말이 예상된다고 허탈해하면서도 이내 몰입하느라 정신없었습니다. 수시로 몸을 움츠리면서 긴장을 늦추지 못했습니다. 아내도 아이들이 분개하는 모습을 보면서 함께 분노했습니다.   



영화가 끝나갈 때 아이들은 '너무 나쁘다. 근데 영화라서 다행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이런 아이들에게 아내가 찬물을 끼얹듯이 한마디 해줬습니다.  


"얘들아! 저 영화는 실화 기반으로 했대!!"

"예? 뭐예요? 아이고!!! 저건 아니다. 난 다행이다." 


드디어 영화의 마지막을 보다가 '극적 반전'에 경악을 금치 못했습니다. (절대로 스포 할 수 없는 장면입니다) 아이들은 영화 마지막을 보면서 어디까지가 나쁜 짓이고 어디까지가 정당한 것인지 헷갈리기까지 했습니다. 이 영화를 보면서 섬뜩한 호러물보다 더 심장 쫄깃하게 긴장했습니다. 영화 중반부 이후 계속 긴장하면서 영화를 보았던 터라 화장실도 참고 있었습니다. 영화가 끝나자마자 모두 화장실로 달려갔습니다. 호러물은 아니지만 미스터리에 스릴러가 더해진 긴장도 100% 영화로 아이들에게는 '잘 본 영화'로 평가되었습니다. 단, 두 번 보고 싶지는 않다고 했습니다. 



엄마에게 정상적인 보살핌과 사랑을 받는 것이 순리라는 것을 아이들이 안다는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엄마와 그런 관계가 잘 형성되어 있기에 옳지 못한 관계에 대해 '아니다'라고 판단하는 것 같습니다.   


아이들 한마디
- 엄마가 저러면 안 되지. 보살펴주고 사랑해 줘야지" - 런
덩달아 느낀 저의 한마디
엄마와 올바른 애착관계를 형성하고 있어서 다행이다. - 런 


영화 포스터를 공유해 봅니다. 

출처. 인용: 씨네 21






그 어떤 영화 보다고 무서워하고 극도의 긴장감을 느낀 영화였습니다. 

피를 흘리고 잔인하게 죽이고 탈출해야만 하는 극강의 스릴러 무비보다 더 무서웠다고 하고요. 보는 내내 아내도 긴장하면서 숨죽여 봤던 영화입니다.

 


엄마를 절대신뢰하는 아이들이 기특했습니다. 

영화 속 엄마의 비정상인 딸 관리방법을 진작에 알아채고 그 이유를 알 때까지 엄마의 기행에 대해 분노했습니다. 그렇다는 것은 아이들이 엄마와 올바른 애착관계를 형성하고 있기에 그런 반응을 나타낸다고 생각했습니다. 아이들을 보면서 건강한 관계를 형성해주고 있는 아내에게 고마움을 느낀 영화입니다. 



좋은 애착관계를 망치는 아빠가 되지 말자.

종종 아이들이 불안해하고 눈치를 보게 만드는 행동을 아직도 하긴 합니다. 아이들의 모든 실수를 잘 받아주다가도 제가 피곤하거나 아내와 작은 불협화음으로 감정이 상할 때면 아이들의 작은 실수에 큰 훈육을 가하기도 합니다. 어른답지 못한 행동으로 가끔 그럴 때면 크게 반성합니다. 이번 영화를 보면서 엄마와 뿐만 아니라 아빠와도 정상적이고 사랑 가득한 관계가 잘 이어지도록 노력해야 함을 다짐해 봅니다.  



사실 이번 영화는 영화 줄거리를 적어야 아이들이 왜 무서웠는지, 영화 속 엄마가 어느 정도였길래 화를 내면서 정상적이지 않다고 말했는지 알 수 있는 영화이긴 합니다. 그렇지만 줄거리를 적어놓으면 이미 영화의 절반을 본 셈이 되어서 줄거리는 생략했습니다. 정상적인 관계를 잘 알고 있는 아이들을 다시 확인할 수 있어서 좋은 영화였습니다. 



여기까지 적어봅니다. 영화를 같이 보면서 아이들이 하는 말들을 통해 속마음을 더 많이 아는 시간이 되어서 매시간마다 늘 감동입니다. 아이들 말을 번역하고 영화 보면서 내뱉는 대수롭지 않은 말을 통해 알아가는 아이들 속마음은 제가 눈높이를 제대로 못 맞추고 있음을 계속 느끼게 하는 순간들입니다. 영화를 매개체로 아이들 말을 더 듣고 있는데 제게는 귀한 시간이 되고 있습니다. 이런 글을 여기까지 읽어주셔서 미리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큰사람(by 바람 없이 연 날리는 남자 Dd) 

출처:사진: Unsplash의 Mak Fle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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