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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기 Nov 13. 2020

어떠한 타인도 내가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친소 관계는 취향적이다.

친소 관계에서는 함께 하고 싶을 때 함께 하지 못하는 것이 가장 큰 아쉬움이다. 수험생 시절은 사소한 약속마저 거대한 일이었다. 커피 약속만 다녀오더라도 후유증이 이틀을 넘어섰다. 지금 여기서 행복할 수도 있고 시험이 끝나면 또 새로운 할 일이 생기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그 이치를 완전히 깨닫기엔 무지했다. 그래서 정말 힘들었고 시험을 마지막처럼 생각했다. 지금 느끼는 혹독한 감정과 통과 의례를 지나면 사랑하는 사람들과 행복을 소비할 카드를 손에 쥘 수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함께 하지 못하는 순간을 미래로 넘겼다. 그때 확실히 깨달았다. 내가 행복하지 못하면 나와 함께 하는 사람들이 행복하지 못하다는 것을. 그 어떠한 타인도 내가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이는 어느 한쪽을 위한 희생도 아니고 누구 하나를 위한 오만도 아니다.     

 

나와 가까이 지내는 사람을 매우 애정 있게 아끼는 편이다. 나와 친하다는 이유로 생긴 행복, 부러움, 질투, 근본 없는 소문의 원인에는 모두 내가 있었다. 나는 나를 좋아하는 사람을 좋아한다. 하지만 나를 좋아한다는 이유로 모두를 좋아하지는 않는다. 내가 친하게 지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골라서 만날 수도 없는 일이다. 그 와중에도 깊어지는 인연이 있다. 그 어렵게 닿은 인연을 어찌 함부로 대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친소 관계일수록 철저히 취향적이다. 그게 모든 관계의 시작이다. 나와 함께해서 행복하다고 말하는 상대가 있더라도 내가 행복하지 않으면 자연스럽게 온도를 내린다. 상대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예전에는 이 방점에 넘어졌지만 무시도 여러 번 하니 태도가 되었다. 이렇게 낭비를 줄이고 질을 관리하니 내가 좋아하는 사람에게 쏟는 에너지가 좋을 수밖에 없다. 내 에너지는 인지하기 어려운 전의식 preconsciousness적인 취향이다.     

 

내가 다행일수록 나와 가까운 사람들의 다행이 잦다. 분명 '나의 다행'부터 시작했으나 이 긍정적인 에너지는 주변을 타고 돌아 나와 연결된 사람들이 행복을 느끼고 그 에너지는 더 커지고 단단해져서 나에게로 돌아온다. 그리고 다시 순환한다. 언제 생길지 알 수 없고 손으로 만질 수도 없고 상대가 누구인지 정해진 것도 없다. 그러나 잦은 감동에 소홀할 수 없는 내 태도만큼은 분명히 할 수 있다. 나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더욱 잘 되도록, 나를 잘 되게 도와주는 사람들이 더욱 잘 되도록, 가까운 사람들을 취향껏 사랑할 것이다. 그렇게 평생 애정 어린 시선을 유지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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