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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dioholic Jul 13. 2024

기사식당 돼지불고기를 해보았다

불고기의 생명은 '기다림' 이 아닐까.

기사식당 돼지불백이 한창 인기였던 때가 있었다. 아마 무한도전 등의 예능에서 출연진들이 기사식당에서 불고기을 엄청 맛있게 먹는 모습이 방영됐기 때문으로 기억한다. 그 이후 연남동 기사식당 성지순례하듯 방문하는 이들로 문전성시를 이뤘다. 줄 서서 먹기 싫어하는 내 성상 사람이 줄어들 훗날을 기약하며 그 행렬에 합류하지 않았으나 기약한 그날은 아직 오지 않더라.


난 불고기가 요리하기 정말 어려운 음식이라고 생각했다.  아마 '불고기' 라는 세 글자가 가진 무게감 때문이 아니었싶다. 결코 저렴하지 않은 음식인 만큼 만들기도 어려울 거란 그런 부담감에 살짝 압도된 것이 아닐까. 하지만 소고기보다 다소 저렴한(요즘은 많이 비싸졌지만) 돼지고기로 만든다면 좀 더 접근이 쉽지 않을까? 그렇다고 돼지고기가 소고기보다 맛없는 고기도 아니니까. 뭐 그렇다고 내가 자발적으로 창의성을 발휘한 건 아니고... 역시 학원에서 배운 요리의 복습이다.


조리과정은 정말 그동안 이걸 왜 안 해봤나 싶을 정도로 간단하다.(가장 힘들었던 건 맘에 드는 고기를 사기 위해 마트와 정육점 사이의 먼 길을 종종걸음으로 오갔던 것이었다) 고기를 양념에 재우고, 양파를 갈색빛 날 때까지 볶아(유식한 말로 '카라멜라이징'이라고 한다지) 단 맛을 끌어낸 후에 고기와 함께 볶아내면 끝. 이게 다라고? 네, 이게 다에요. 그 후엔 그냥 데코레이션의 과정이랄까. 돼지고기와 잘 어울린다는 부추를 접시에 깔고 그 위에 고기를 얹으면 완성이다. 아마 기사식당에서 돼지불고기를 메인메뉴로 내는 것은 소불고기보다 저렴한 가격과 비교적 간단한 조리과정으로도 감칠맛 나는 고기요리를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시간과 체력이 생명인 기사님들에겐 그야말로 맞춤형 메뉴였을 것이다.


쉬워도 너무 쉽다


불고기 요리의 요체는 고기를 재우는 데 있는 것 같다. 양념이 고기에 푹 스며들도록 충분한 시간을 두고 재우는 것이 불고기의 맛을 결정짓는 키가 아닐까. 갈비찜도 그렇고 불고기도 그렇고... 결국 우리가 좋아해 마지않는 고기요리의 핵심은 '기다림' 일지도 모르겠다. 달디단 양념이 고기 표면에서 겉돌지 않고 서서히 깊은 속까지 스며들 때까지 기다려주는 그 시간이 바로 최고의 레시피인 셈이다. 학원에서는 처음 접하는 요리에 허둥대느라 고기 재우는 시간이 다소 짧았지만, 집에서 충분한 시간을 두고 고기를 양념에 재워보니 확실히 양념의 풍미가 고기를 씹으면서 입안에 번지는 느낌이 들었다. 뭐... 기분 탓일 수도 있고.




굳이 기사식당에 가지 않아도 그럴듯한 돼지불고기를 먹을 수 있게 됐다. 거기에 집에 있는 밥과 몇 가지 밑반찬만 식탁에 놓으면 그게 바로 돼지불백이 아니겠나. 막연히 어려울 거라 생각한 음식을 우리 집 부엌에서 뚝딱 만들어 내놓는 재미는 제법 쏠쏠하다. 아니 사실 쏠쏠하단 말로는 표현이 잘 되지 않는 즐거움이다. 어린 시절 엄마가 새로운 음식을 해본 뒤에 우리에게 맛이 어떠냐고 몇 번씩 물어보셨던 이유를 이제 좀 알 것 같다. 새로운 메뉴를 자식들이 맛있게 먹는 그 모습으로 하루의 행복을 찾으셨을 생각을 하니 그때 좀 더 맛있다는 말을 많이 해드릴걸 하는 그런 후회가 들었다. 이게 다 결국 요리를 직접 해봤기 때문에 깨닫게 된 그런 감정이겠지. 다음엔 또 어떤 요리가 나에게 많은 생각을 던져줄까.


오늘도 잘 먹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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