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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테이블 Nov 08. 2021

두 개의 문

문은 언제나

열림 뒤의 설렘과

닫힘 뒤의 아쉬움이

공존한다.


오래된 문

오래 드나든 사람들의

오래 쌓여 온 이야기들이


열리고

닫히고

겹치고

사라지고


내 아버지 드나드셨던

수천수만의 걸음들은

이제 저 오래된 은행나무 잎 되었나.



내 엄마 드나드셨던

수천수만의 걸음들은

아직 남아

은행나무 잎 사이사이를 돌아 나온다.



열린 문이 닫힌 문에게

말을 건넨다.


 "거기 괜찮습디까?"


이 문과 저 문 사이를 떠도는

소리 없는 대답


 "거기만 못하오."


서로 다른 거기에서

못다한 이야기

바람이 되고


은행나무 잎잎마다

수백 년 역사와 함께

내 아버지, 내 엄마 이야기를

소삭거린다.


은행나무야

해마다 주렁주렁 열렸던 이야기

땅 속에 묻었다가

다시 피어 올리지만


오래도록 쉼없이

처마를 받쳐온

저 굽은 추녀는

그 많은 사연들의 하중을

어찌 견딜까.







  친정집 근처 오래된 향교가 하나 있다. 20년도 넘게 지나다녔는데 어제 처음으로 들어가 보니 오백 년도 넘었다는 은행나무와 그 옛날 이곳을 오고 갔을 수많은 사람들의 사연이 향교 건물 구석마다 묻어있는 듯 용마루부터 처마, 서까래, 추녀, 대들보, 아궁이,  연통, 장독대... 하나하나 훑어보고 나왔다.


  내 시선이 처마 끝 추녀에 머물렀을 때 떠오른 기억 하나.


  추녀는 왜 항상 굽어 올라간 것인지, 궁금해하던 어린 나에게 목조건물 전문가이신 아버지가 말씀하셨다.


  "봐라. 처마 끝은 뭔 힘이 있겄냐.

   기둥 위에 딱 붙은 저그는 받쳐주는 힘이

   기둥 두께만큼 퍼져서 얼매나 든든하겄냐.

   근데 저 처마 끝은 아무것도 없잖어.

   땅에서 끌어내리는 힘을 뭔 수로 이겨내겄냐.

   요래 다른 서까래보다 두껍고 굽어 올라붙어있어야 버티는 것이다."


  '하중'이라는 개념을 알지 못했던 어린 나는 어렴풋이 아, 누가 끌어내리면 올라가면 되는구나.


  그때부터 세상 모든 이야기가 인생 이야기인 것을 깨달았던 것 같다.


  그리운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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