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턴 시절에는, 아무래도 메이저 대형 병원에서 근무해서 그랬겠지만 내과에 만성 질환 환자가 많았습니다. 환자분들의 표정도 어둡고, 입원했다가 퇴원해도 싹 낫고 가지 못하는..
그에 반해 정형외과 환자들은, 뭐랄까 생명의 힘이 느껴졌습니다. 인턴때 일입니다. 어떤 건장하고 잘생긴 외국인 남자 환자분이 손가락 펴는 힘줄 하나가 끊어졌습니다. 교수님이 수술로 힘줄을 이어주었는데, 바로 다음날 갑자기 손가락이 잘 펴지면서 너무나 기뻐하던, 웃는 얼굴로 연신 감사하다며 퇴원하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병아리가 알에서 깨어나서 처음 보면 엄마라고 생각한다죠. 이 에피소드는 마치 제게는 커다란 인생의 갈림길에서 그런 종류의 역할을 했는데요, 이후 미래에 제가 정형외과를 지원할때, 석사를 지원할때, 그리고 박사를 지원할 때 지원서에 인용하는 단골 소재가 되었습니다.
아무튼 이때부터 정형외과에 마음이 가기 시작했죠.
이타적이라고 해야할지 사랑받고 싶었는지 모르겠지만, 언제 어디서나 내 가까운 누구에게도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여담이지만 현재 제 주변에 발이나 발목 아픈 지인이 별로 없네요. 그에 비해 제 치과 친구는 제게 아주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업으로 하는 무언가는 아무래도 살면서 통달하게 되는데, 어르신들이 팔다리 통증으로 고생하시는 걸 보면 저는 그렇게 되고 싶지 않았습니다. 팔다리 허리 건강을 통달하기 위해서 정형외과에 가자! 라는 생각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물론 이는 훗날 약간은 맞지 않는 것으로 밝혀집니다. 남의 팔다리 고쳐주다 내 팔다리 망가진다는 정형외과 의사들끼리 우스개가 있습니다.)
그리고 세속적으로, 굶어죽을 걱정을 안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면서도 평생 재밌게 공부할 수 있는 직업을 가지고 싶었습니다.
이런 모든 것을 충족시켜줄 수 있는 그런 직업이 세상에 있을까요? 이세상에 완벽한 연인은 없듯, 아마 눈에 뭐가 씌었었나봅니다. 물론 지금도 저는 정형외과를 사랑합니다!
의대에 오긴 했지만, 사람이 죽고사는 심각한 문제를 어깨에 이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런 무거운 짐을 감당하기에 제 멘탈은 꽤 약하다는 것 정도는 저도 알고 있었거든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정형외과 전공의와 교수님들은 멋있었습니다.
흔히 속된 말로 '가오'가 있었다고 할까요 ?
그런 취향(?)은 아니지만 남자들에게 반했습니다. 수컷 냄새가 풀풀 풍기는, 근육질의 남자들이 우글우글하는 헬스장에 가 있는 느낌이었습니다.
거기만 들어가면 마치 그렇게 될 것만 같았죠.
아무튼 그래서 지금 이러고 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