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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종일 Oct 22. 2019

[걸어서 동네속으로] 아파트키즈의 주택 견학

오픈하우스 서울_성북동 뱅크하우스

서울 도시건축 비엔날레의 일환으로 진행됐던 지난 오픈하우스 서울 성공회 주교좌성당에 이어 오픈하우스의 정규 프로그램으로 성북동엘 가게 됐다. 대중교통으로 성북동 끝자락에 닿기 위해서는 4호선 한성대입구역에서 내려 버스를 하나 더 타고 가야 한다. 그것도 모자라 내린 후에는 산을 오르듯 가파른 언덕길을 올라야 한다. 가을날이 아니었던가? 한국 씨티은행 뱅크하우스 견학을 기다리면서 야무진 땀방울이 맺혔다. 


이런 곳에 살면 근심 걱정은 안 해도 될 것 같아 - 

한국 씨티은행을 위해 설계된 뱅크하우스는 1967년에 설계됐으며 날카로운 예각이 사용된 지붕이 눈에 띈다. 진행을 맡은 최호진 지음 건축도시연구소 소장님께서는 이렇게 비정상적인 구조의, 조형적인 요소가 강조된 지붕의 모습은 자연적인 요소를 받아들이는 의미가 담겨있다고 하셨다. 아마도 자연적인 의미란 자연과 조화를 이룬다는 뜻이 아닐까? 하여 날카롭게 솟아오른 뾰족한 지붕을 뒤집어 놓은 것 같다. 거기에 과하지 않게 나온 처마가 인상적이었다. 6-80년대까지의 작품 속에서 이런 조형적인 요소가 많이 등장한다고 하는데, 현존하는 개인주택은 딱 2 채라고 한다. 

내부 촬영이 불가하다는 안내를 듣고 밖을 열심히 찍었다. 현재 우리가 볼 수 있는 건물의 작은 디테일들이 김중업 선생의 작품에서 비롯됐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건축을 몰라도 이 건물이 60년대에 만들어졌다고는 믿기지 않는다. 크고 작은 석재를 촘촘하게 쌓아 올린 주택의 벽면은 바로 옆의 산세와 비교해도 전혀 이질감이 없었다. 산세가 미치는 입구 쪽의 나무들이 그 길고 얇은 가지를 뻗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는데, 그 침침한 조도가 좋았다. 서울 바닥을 마주한 정원 방면은 채광이 넘쳐흐르고 있었다. 집 자체의 모습도 대단하지만, 밀도 높은 어둠에서 빛까지의 스펙트럼이 아름다울 정도였다.

진행을 맡은 최호진 소장님의 설명. 몇 년째 하시는 것 같은데 열정이 대단하셨다.

방, 그리고 집은 누군가의 삶을 위한 공간이다. 재개발된 노원구의 아파트키즈로 자라온 나에게 단독주택에서의 삶은 환상에 가까운 이야기다. 나는 가끔 부부 싸움하는 이웃을 마주쳤고, 아파트의 벽에 가려져 경비 아저씨에게 하던 인사도 더 이상 하지 않게 됐다. 모두가 아파트에 살지만 아파트에선 모두가 외롭다. 무엇보다 이곳은 자연과 가깝지도 않고, 쉬지 않고 돌아가는 기계 소리로 정신이 없으니까. 남의 집에 들어가 본 것이 처음도 아니건만, 뱅크하우스에 들어서자 나도 모르게 편안한 기분이 들었다. 모든 공간이 용도에 따라 나뉘어 있었다. 2층의 테라스에서는 저 멀리 남산까지 볼 수 있었는데, 테라스 천장은 나무를 일일이 자르고 짜 맞춰 모양을 냈다. 이 정도 정성이 들어간 집이라면 천년만년 살 수 있을 것 같다. 

한 시간여의 프로그램이 끝나고 터덜터덜 정류장으로 내려오는 길, 이곳에 사는 사람들이 보는 풍경은 어떤 모습일까. 이곳에서 보내는 밤은 어떨까. 어떤 근심마저도 쉽게 걷어낼 수 있을 것만 같은 이 장관을 매일 보고 사는 건 어떤 삶일까. 내가 이곳에 산다면 구태여 밖으로 나갈 필요도 없을 것 같다.

버스를 타러 내려온 정류장. 여기서부터는 경이감보단 정겨운 마음이 든다. 가끔 친구들과 밥과 술을 먹으러 왔던 곳인데 요란하지 않고 침착한 동네의 모습이 좋았더랬다. 요란한 동네에 가면 늘 골치가 아프다. 


효율성을 위시하며 시멘트로 쌓아 올린 '칸'에서 살아온 아파트키즈에게 이런 널찍한 대저택은 유토피아와도 같은 공간이다. 특히나 이렇게 산 중턱 즈음에 자리 잡은 공간에서 멀리 - 서울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세상이 내것은 아니어도 조금은 우습게 보이기도 한다. 박한 인심과 경계심 넘쳐나는 서울 한복판에서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바삐 돌아갔던 일상이 오히려 꿈처럼 느껴질 정도니까. 


누군가의 취향과 숨결이 묻은 공간에 들어가는 건, 때론 조심스러우면서도 경이롭다. 새로운 동네를 가는 것만큼이나 새롭기도 하다. 타인의 세계에 발을 들이는 거니까. 내 세계도 덩달아 편안해지고 넓어지는 것을 느낀다. 조만간 서울 사람의 신분으로 서울의 에어비앤비를 이용해볼 작정이다. 잘 꾸며진 '호캉스' 또한 안 누려본 것 아니건만, 누군가의 주택은 색다른 신비감을 줄 것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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