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에서 상사가 어떠한 일을 지시하기 위해 부르면 팀원의 반응은 세 가지다. 귀찮다는 듯 대답도 하지 않거나 건성건성 “네~, 네~”만 연발한다. 매일 들고 다니는 다이어리도 가져오지 않는다. 마치 자신은 들으면 모두 기억할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이런 팀원은 지시한 일을 지시한 것인 줄도 모르고 아무것도 안하고 있다가 상사가 물으면 시켰던 일이냐고 되묻거나, 심지어 본인도 잊어버리고 있던 일을 마치 알고 있었는데 다른 일들을 하느라 못하고 있었다며 변명만 늘어놓는다. 그러면서 어떤 일을 지시했는지 되묻거나 급하게 그 일을 대충 해서 보고한다. 이런 사람들은 인사고과를 할 때 좋은 평가를 받는 것은 고사하고 거의 바닥을 깐다. 그래서 직장과 상사에 대한 불만만 많고 자신은 멀쩡히 잘하고 있는데 상사가 업무지시를 대충 해서 자신이 너무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말만 한다. 절이 싫은 중이 떠나야 한다는 말을 자주 하면서 수 없이 이직을 위한 기회를 엿본다. 그러나 생각보다 갈 곳이 없어서 그냥 지금의 직장을 다닌다. 운 좋게 이직을 해도 결국 상사에게 인정받지 못하고 또 다른 곳을 찾아 헤맨다. 악순환의 연속이다.
또 다른 팀원은 상사가 업무를 지시하기 위해 부르면 자신이 사용하는 다이어리를 가져온다. 상사가 지시하는 내용을 꼼꼼히 적는다. 별 달리 상사에게 묻는 것도 없다. 상사의 지시가 끝나면 자리에 돌아가서 무엇인가 열심히 한다. 하루 이틀, 일주일, 이주일이 지난다. 상사 입장에서는 그 일이 잘 되고 있는지 묻고 싶지만, 괜히 물어보면 마이크로 매니징 한다는 소리만 들을까봐 꾹 참는다. 상사는 임원에게 그 일의 결과를 보고해야 할 날짜는 얼마 남지 않아서 불안하기만 하다. 상사 입장에서 정말 오래 기다린 그 일이 끝난 모양이다. 그 팀원은 상사에게 지시를 받은 일들을 처리한 결과를 보고한다. 그러나 이들이 가져온 결과를 보면 참으로 아쉬운 경우가 자주 있다. 직장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들은 조직에서 매니저 위치까지 오르기 대체로 힘들다. 상사는 기본적으로 실무업무를 하지는 않지만 다양한 일들을 책임지고 있기 때문에 업무를 지시할 때 생각보다 꼼꼼히 지시하기 힘들다. 머리가 복잡하기 때문이다. 또한 물리적으로 시간이 부족하기도 하다. 매일 반복되는 경영진 보고, 회의 등으로 시간이 없다. 이런 이야기도 많이 듣는다.
마지막 팀원은 상사가 업무를 지시하기 위해 부르면 자신이 사용하는 다이어리를 가져온다. 여기까지는 두 번째 팀원과 똑같다. 그러나 차이가 있다면 상사에게 지시를 받으면서 질문이 많다.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을 정확히 확인하는 질문을 한다. 언제까지 해야 할 일인지, 어떠한 결과물이어야 하는지 물어보는 것이 정말 많다. 그런데 그렇게 바빠 보이는 상사는 그 팀원에게는 친절하게 답변한다. 뭔가 억울함이 느껴진다. 자신에게는 꼼꼼히 친절하게 알려주지 않으면서 그 팀원만 편애한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진작에 제대로 알려줬으면 이 고생은 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게다가 그 팀원은 상사하고 전생에 애인이었는지 일하는 중간에도 무엇이 그렇게 즐거운지 깔깔거리며 상사와 웃기도 하고 칭찬을 듣기도 한다. 전자결제를 올리면 어지간해서는 반려가 되는 일도 없고 한 방에 무사 통과다. 부럽기만 하다. 당신은 어느 팀원에 속하는가? 직장에서 인정받지 못하고 상사로부터 싫은 소리를 자주 듣는 입장에서 주위에 인정받는 사람을 보면 부럽기도 하고 약이 오르기도 한다. 게다가 일은 별로 하지 않는 것 같은 사람이 인정까지 받으면 혹시 상사와 친척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왜 이들은 적게 일하고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일까? 그 해답의 중심에 일하는 프로세스가 있다.
인정받는 사람은 상사로부터 지시를 받는 방법부터 다르다. 지시를 받을 때 그 일의 배경과 목적을 생각한다. 이 부분이 이해되지 않으면 반드시 상사에게 질문한다. 그런데 상사도 그 일의 배경과 목적을 명쾌하게 설명하지 못할 때도 많다. 직장에서 상사와 부하의 관계는 다양하지만 대체적으로 네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똑똑한 상사와 똑똑한 부하의 조합이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거의 보기 어려운 조합이지만 이런 조합이 될 때 엄청난 성과를 만들어내고 직장에서 초특급 승진을 거듭한다. 이런 조합 때문에 직장에서 이른 바 ‘라인’이라는 것이 생기기도 한다. 왜냐하면 똑똑한 상사는 똑똑한 부하를 잘 알아보기도 할 뿐 아니라, 그만큼 귀하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에 계속 함께 다니려고 하기 때문이다. 똑똑한 상사와 멍청한 부하의 조합도 있다. 직장에서 경력이 많지도 않은데 이런 저런 부서들을 짧은 기간동안 여러 번 이동하는 사람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런 사람들은 대체로 멍청한 부하라는 의미다. 똑똑한 상사는 멍청한 부하를 어쩔 수 없이 받은 경우가 많다. 그래서 빨리 다른 곳으로 보내는 것이다.
그런데 멍청한 상사는 거의 없다. 대부분의 상사는 그 자리에 주사위 굴려서 간 게 아니다. 그런데 부하 입장에서 상사가 멍청해 보이는 경우가 많다. 왜 그럴까? 앞서도 언급했지만 상사는 책임져야 하는 일의 가짓수가 많다. 케이스 웨스턴 리저브 대학의 부부 심리학자 로이 바우마이스터와 다이앤 타이스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심리실험을 진행했다. 한 그룹은 초콜릿만 먹도록 하고, 다른 그룹은 무만 먹도록 하고, 마지막 그룹은 아무 것도 먹지 못하도록 했다. 일정 시간이 지난 후, 이들에게 각각 풀 수 없는 퍼즐을 풀도록 했는데 초콜릿만 먹도록 하거나 아무 것도 먹지 못하게 한 그룹은 평균 19분동안 퍼즐을 풀다가 포기했는데, 무만 먹도록 한 그룹은 평균 8분만에 퍼즐 풀기를 포기했다. 이를 ‘자아의 고갈(ego depletion)’ 효과라고 불렀는데, 인간의 의지력은 한정되어 있고, 의지력의 양은 쓸수록 줄어든다고 설명했다. 실험결과와 같이 상사들은 책임져야 할 일의 가짓수가 많기 때문에 의지력의 양을 상당히 쓸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상사는 부하에게 꼼꼼하게 업무를 지시하고 싶어도 그러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결국 부하 입장에서는 상사가 멍청하게 보이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직장에서 이런 상사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멍청한 부하가 조합되면 대부분 망한다. 그나마 망하면 상사는 그간 직장에서 공헌했던 일들이 쌓여 있기 때문에 살아남을 가능성이 높은 반면, 멍청한 부하는 살아남기 힘들다. 결국 함께 망하지 않으려면 똑똑한 부하가 되어야 한다.
똑똑한 부하는 무엇이 다를까? 여러가지 특성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이 멍청해 보이는 상사가 미처 챙기지 못한 일들을 챙기는 사람이다. 앞서도 잠시 언급했지만 바쁜 상사가 해야 할 일 중에 직장에서 중요한 일들은 자신의 생존을 위해서라도 직접 챙기고 상대적으로 덜 중요한 일들은 팀원들에게 맡기고 알아서 잘 처리해 오기를 바란다. 그래서 이미 의지력의 양을 많이 소모한 상사를 대신하여 미처 챙기지 못한 일들을 챙겨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