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은 숲이요, 나무는 나무요.

by 까칠한 여자


직급에 따라 각자 위치에서 해야 할 몫과 역할은 상이하다고 생각한다. 원활하게 시스템을 운영하기 직급체계가 있는 것이고, 각자 역할이 나누어져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상위 직급으로 갈수록 세세한 부분보다는 전체를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경력이 쌓인 만큼 보는 시야도 넓어져야 하며, 다각적 접근을 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각자의 위치에서 직급에 맞게 그 몫을 잘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될까? 그 조직은 아마도 여러 갈등 상황에 놓이게 될 것이다.


부장이 차장 역할에 매여 있다면 그 조직은 발전해 나가기보다는 도태될 수 있으며, 전체를 볼 수 없기 때문에 위기사항이 발생 시 대처를 잘 해낼 수 없을 것이다. 또한 과장이 대리 역할에 매여 있다면 대리들은 사원일 때와 차이를 알지 못한 채 중간관리자로서 역할을 제대로 수행해낼 수 없게 될 것이다.


직급에 따라 각자가 해야 하는 몫과 역할은 분명히 존재한다. 그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서 꼰대로서만 존재한다면 그 조직 내 소통은 단절된 채 수많은 갈등 상황들로 인하여 그 관계는 언제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서로 간 이해관계를 좁히지 못하게 될 것이다.


보고병에 걸린 상사가 있다. 보고받지 못한 귀신이 붙었나 할 정도로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걸 보고받기 원한다. 직급에 따른 보고체계가 존재하기 때문에 보고해야 할 사항과 굳이 보고까지 하지 않아도 될 사항도 있다. 하지만 굳이 보고되지 않아도 될 사항까지 보고받기를 바란다. 이러한 보고병에 걸린 상사 때문에 이중, 삼중 일을 하게 되는 경우가 있으며, 또 하나의 다른 서류가 만들어지는 경우도 있다. 가만히 앉아 모든 걸 보고받기만 원하는 상사 너무너무 꼰대스럽다. 보고를 통해 자신의 위치를 확인받고자 하는 사람인 것처럼 ‘난 보고받는 사람’인데 ‘왜 보고를 안 하지’란 인식이 깔려있으며, 말 끝엔 항상 '보고해주세요'가 붙는다. 보고할 사항이 있거나 주요한 결정 사항이 있다면 말하지 않아도 보고를 하게 되어 있다. 하지만 사람 심리가 그렇다. 보고하라 보고하라 하면 하기 싫은 거. 자발적으로 보고하려고 했는데 하라 하라 하라 하면 하기 싫은 거 억지로 보고를 하게 되는 상황 말이다. 큰 그림을 보아야 할 상사가 큰 크림 대신 세세한 사항들 보고만 받기를 원하니 계속 갈등 상황만 유발되고, 발전은 커녕 우물 안 개구리가 되는 것 같다.


모든 것을 ‘보고화’ 한다는 건 그만큼 본인 스스로 아는 것이 작기 때문일 수도 있으며, 그만큼 팀원들을 못 믿기 때문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고착화된다면 서로 간 이해관계는 좁혀지지 않은 채 점점 멀어지게 될 것이다.


직급체계가 괜히 있는 건 아니다. 직급체계를 없애는 기업도 있지만 직급체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은 필요에 의해서라고 생각한다. 숲을 봐야 하는 직급은 나무가 아니라 숲을, 나무를 봐야 하는 직급은 나무를 보며, 직급 체계에 맞게 주어진 역할을 잘 수행해 나갔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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