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각은 인간이란 존재에게 불완전함을 상기시키고 때론 겸허함의 감정을 유발한다. 하지만 인간은 이에 얌전히 순응하지 않았다. 대자연 속에서 미약하고 초라한 자신의 위치를 깨닫고 하나의 종으로써 진화적 불안 요소를 최대한 극복하려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는 우리의 조상과 우리는 모든 걸 기억하고 떠올릴 수 없는 불완전한 뇌를 가졌다는 것이다.
수렵채집 시대를 벗어나 정착 생활을 시작하며 농경 시대를 맞이한 인류는 몇 천 년의 시간이 더 흐르고 난 뒤에야 거대해진 집단 사회를 효율적으로 이끌고 유지하기 위해선 지식을 저장해둘 필요가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된다. 수를 표현하는 쓰기와 기록 행위를 시작하면서 이를 발전시켜 문자를 발명했고 이 문자들을 모아 글로, 그리고 문서나 책으로 발전시켰다.
지배 계급은 기록한 문서를 사회를 효율적으로 조직하고 운영함과 동시에 계급 내 사회적 지위를 강화하는 수단으로 사용했다. 상위층은 결코 책 없이는 자신의 왕권 강화도, 국가를 형성하고 존립하는 일도 수행하지 못했을 것이 틀림없다. 그로부터 한참의 시간이 흘러 15세기 중반 발명된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는 소수의 지배 계층만이 독점해왔던 지식을 일반 계급도 접할 수 있게 만들어 훗날 종교개혁, 계몽사상의 도화선이 되었다.
뉴턴은 ‘내가 세상을 멀리 볼 수 있었던 것은 거인의 어깨 위에 있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의 말은 만일 앞선 세대가 부지런히 쌓아온 지식과 기술이 없었다면 자신의 과학 이론의 탄생도 없었을 거라는 말과 일맥상통한다. 뉴턴 역시 혼자만의 사고가 아닌 선조들의 가르침, 그리고 그들이 남긴 수많은 기록의 유산과 동행하며 위대한 업적을 이룩했을 것이다.
위와 같이 계급 사회, 금속활자나 뉴턴의 사례만이 아니라 인류의 모든 역사는 책과 함께 꾸준한 진보의 과정을 거쳐왔다. 나무 재질의 책은 머나먼 과거부터 정치, 사회, 경제 등 모든 분야에 있어 현대 인간 문명의 모습을 갖추기까지 부지런히 우리를 이끌고 지탱해온, 없어선 안 될 우리 정신의 시초이자 근원이다.
그런데 종이책이 과학의 발전에 힘입어 생겨난 다양한 종류의 매체에 밀려나 전통적 지위를 잃어가기 시작했다. 이미지나 영상이 그 자리를 꿰차고 들어왔다. 지식과 정보를 다량으로 짧고 빠르게 소비하는 시대가 도래했다. 자연스럽게 나무 재질의 책은 조금씩 밀려나고 있다.
삶의 고단함에 지친 현대인들에게 이 정신없이 바쁘게만 돌아가는 현대 사회 속에서 짬을 내어 조용히 앉아 책을 붙드는 행위는 힘들게만 보인다. 이 틈을 오디오북이나 전자책이 파고들기도 했다. 스마트폰의 발달로 종이 만화책이 웹툰에 밀려났듯이 종이책 역시 전자책이나 오디오북의 성행으로 인해 위태로운 처지다.
짧고 빠르게 소비하는 지식과 정보는 휘발성이 매우 강하다. 이미지든 영상이든 마찬가지다. 콘텐츠를 쉽고 어렵지 않게 습득할 순 있어도 내용의 깊이 면에선 턱없이 부족하다. 그에 반하여 인류의 위대한 스승들은 온 힘을 다한 사유를 바탕으로 깊은 지식과 지혜를 종이 위에 꾹꾹 눌러 담았다. 그리고 책으로 엮어 널리 후손들에게 전파했다. 지금도 우리의 정신을 구성하고 지배하는 건 성경, 탈무드, 논어, 손자병법 등과 같이 오래전 그들이 써 내려간 것들이 대부분이다.
전자책이나 오디오북으로 지식을 습득하는 것도 나쁘다고 볼 순 없다. 다만 전자책은 전자파로 인해 눈이 피로함을 느끼기 때문에 집중력을 떨어뜨리고 단시간에 정보를 습득하긴 유리해도 장기기억으로 남기기엔 종이책이 훨씬 유리하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오디오북의 경우도 대부분 운전을 하거나 어딘가로 이동 중일 때처럼 집중을 방해하는 환경에서 사용되는 경우가 많아 좋은 방법은 아닌 듯하다.
반면 종이책은 완전한 집중을 요한다. 충분한 시간도 투자해야 한다. 그렇게 형성된 이 행위는 몰입이자 독서가 된다. 독서를 통해 여기저기 무질서하게 흩어진 지식의 파편들이 체계적으로 분류되고 합쳐지며 생각의 가지가 뻗어 나간다. 더 나아가 새로운 사상이 발현되고 여기저기서 발현된 사상들은 충돌하며 더 나은 사상에 자리를 양보한다. 그렇게 역사는 흘러간다.
앞서 우려를 표하긴 했어도 가끔 일주일에 한 번씩 대형서점을 방문할 때마다 많은 사람으로 북적이는 광경을 보면 무수한 각종 플랫폼과의 경쟁 속에서 종이책이 여전히 건재함을 과시하는 것만 같아 한편으로 다행스럽기도 하다.
망각하는 동물이 인간이라면 책을 읽는다는 건 인간이 인간임을 망각하지 않기 위한 작은 실천이라고 말하고 싶다. 이왕이면 그 실천에 있어 빳빳하고 부드러운 감촉을 지닌 종이책이 수단이라면 더할 나위 없다. 글을 쓰거나 책을 붙들고 있을 때마다 느끼는 점은 초라하고 부족한 고작 이만한 분량의 글을 매일 아닌 며칠에 한 번 쓰기에도 벅찬 역량을 지닌 나로서는 거르지 않고 매일 쓰고 또 책으로 엮어내는 이들이 그저 존경스럽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