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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네카 Jan 15. 2021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을 읽고 나서

  사피엔스에서 차가운 시선으로 인류가 어떻게 지구를 지배할 수 있게 되었는가에 관해 저술했고 호모 데우스에서 인간이 맞이하게 될 기술적 미래의 디스토피아를 낱낱이 파헤친 유발 하라리의 마지막 세 번째 역작을 고르는 일은 나에겐 너무나 쉬운 일이었다.


  역시 그는 독자를 실망하게 만드는 법이 없다. 특유의 블랙 유머와 재치는 이 책에서 더욱 빛을 발하고 빈틈없는 논리 전개와 독자를 위한 눈높이를 고려한 세심한 은유를 섞어 이해를 돕는다. 전작에서 인류의 과거(사피엔스)와 미래(호모 데우스)를 개관한 그의 시선은 이제 우리 앞에 높인 현재에 머무른다.


  테러범들의 심리를 거대한 항아리 안에서 윙윙대는 모기와 같다거나, 소의 귀에서 온종일 머물며 귀찮게 간지럽히는 파리의 경우에 빗댄다. 매우 미약하고 하찮은 힘을 수단으로 이용하여 거대한 국가를 어떻게 궁지에 몰아넣고 이득을 취하려 하는 테러범들의 심리를 묘사한 관점이 신선하게 느껴졌다. 다만 그들이 핵무기와 같은 위협적인 무기를 손에 넣게 될 경우는 다르다고 주장한다.


  

  트럼프의 자국 우선주의와 영국의 브렉시트로 인해 자유민주주의 이데올로기의 쇠퇴가 가시화되었고 더욱 가속화되고 있으며 이 사례가 전 세계적인 민족주의의 부활로 이어질 것을 우려한다. 핵전쟁, 생태계 파괴, 기술적(생물학적) 급변화 이 세 가지 거대한 이슈는 전 지구적인 협력 네트워크 없이는 불가능하다.


  특히 생태계 파괴 사례 중 하나인 이번 미증유의 코로나 팬데믹 사태에서 전 지구적인 협력이 왜 그렇게 중요한지가 여실히 드러났다. 전염병이 퍼지기 시작한 초창기 전 세계 각국은 협력 없이 빗장을 걸고 자구책을 모색했다. 각자도생의 방책이 효력이 없어지자 전 세계 확진자 수는 셀 수 없이 늘어났다. 그 와중에 미국과 중국의 정치적 갈등과 감정의 골만 더욱 깊어져 서로를 향한 혐오가 세계 기류를 지배했다.


  이처럼 초창기 대처는 미흡했음에도 세계는 백신 개발에 있어 유례없는 협력을 발휘하여 전염병 창궐 기간 1년 이내로 백신을 개발할 수 있었다. 영국과 이스라엘, 프랑스 등의 국가들은 이미 백신 접종을 시작했다. 지구 공동체 네트워크가 기필코 필요한 이유를 여기서 찾을 수 있다.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역시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국가, 민족, 종교, 공동체, 은행 같은 인간을 둘러싼 모든 허구의 표상에 둘러싸여 살아가는 우리의 위치를 돌아보게 만든다. 


  이 모든 허구의 이야기들을 해체하고 나면 인간에겐 무엇이 남는가? 영화 매트릭스에서 주인공 모피어스는 인공지능이 장악한 가상 세계의 매트릭스가 아닌 현재 세계에 발 딛고 서 있지만 그 세계 역시도 인간이 만든 가상 세계에 불과하다는 주장. 결국 매트릭스를 벗어나도 그 후엔 더 큰 매트릭스와 마주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지적한다.


  조지 오웰은 전체주의 국가의 폐단을 1984에서 적나라하게 묘사했다. 그래서 그런 국가 체제를 피할 수 있는 방식을 고민할 수 있다. 그러나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에서는 무엇이 문제인가를 명확하게 알 수가 없다. 치밀한 생물학적 조작으로 인해 계급이 나뉜 사회임에도 모두는 불평불만 없이 행복하다. 


  전쟁은 오래전 이야기고 가난도 궁핍도 없다. 모두가 최상의 만족감에 차 있고 가끔 신경질적 반응을 유발하거나 불쾌한 일이 생길 땐 ‘소마’ 라는 약물에 의지하면 말끔히 해결된다. 모두가 행복하고 문제나 골칫거리가 없는 사회라면 뭐가 문제란 말인가? 앞으로 마주하게 될 문명의 디스토피아에 대해 함께 고민해볼 수 있는 더할 나위 없는 좋은 사례다.


 

  마지막 챕터에서 하라리는 명상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실제로 빌 게이츠나 저커버그를 비롯한 세계적 CEO들 역시 명상을 즐겨 한다는 사실은 익히 알려져 있다. 자신의 정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고 그 실체를 관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많은 과학자가 명상 기법에 관심은 보여왔음에도 이 도구를 간접적으로 사용한다는 사실에 하라리는 아쉬운 감정을 드러낸다. 현재 뇌 연구에서 사용하는 도구와 방법에 명상을 접목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개인적으로 명상에 대해선 편견이 있었다. 단순한 주술적 주문이나 자기최면처럼 보였던 게 사실이다. 하라리의 책을 읽고선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충분히 시도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는 쪽으로 기울었다. 


  방대한 21가지 주제를 다뤘음에도 날카로운 통찰과 이야기를 매듭짓고 풀어나가는 그의 능력과 방식에 다시 한번 감탄했다. 일반인들이 평소 접하기 쉽지 않은 어려운 소재임에도 쉴 새 없이 나의 호기심과 흥미를 유발했다. 이 책이 모두의 지적 세계를 한층 더 확장하고 깊게 만들어줄 것이라 확신한다. 그래서 주저 없이 모두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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