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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네카 Nov 04. 2020

모든 공간은 겹쳐져 있다.


  서울의 한 번화가에서 친구와의 만남을 기다리는 도중 늦게 도착한다는 연락을 받아 예기치 않았던 약 30분의 시간 공백이 생겼다. 서울 시민도 아닐뿐더러 자주 방문하지 않는 장소여서 호기심이 일었는지 가벼운 산책도 할 겸 차분히 발걸음을 뗐다. 특정한 카페 체인점을 지나치자 문득 몇 년 전 헤어졌던 여자친구와의 추억이 떠올랐다. 그 당시 카페에서 그녀와 마주 앉은 나는 그녀에게 나의 진심을 어느 시점에 어떤 방식으로 전달할지에 대해 머릿속에서 버거운 투쟁의 시뮬레이션을 수차례 반복하고 있었다.


  마침내 어설픈 나의 고백 끝에 그녀와의 연애가 시작되었고 그 시절 난 주체할 수 없을 만큼 행복했다.(하지만 서로 깊이 빠져든 만큼이나 서로에게 너무나 빨리 식어버려 관계가 오래 지속되진 못했다) 서로 화기애애한 대화를 나누며 서로를 알아가던 찰나, 건너편의 테이블에 앉은 두 남녀는 우리가 있던 자리까지 들릴 정도로 큰 소리로 험한 말을 쏟아냈고, 말다툼 도중 한 명이 자리를 박차고 떠나 버렸다. 남들이 볼세라 흐느끼며 우는 표정을 애써 감추며 자리에 앉아 있던 한 명도 뒤늦게 자리를 떠났다.


  그들의 격렬한 다툼은 이제 막 사랑을 시작한 우리의 설렘과 강렬하게 대비되어 유독 기억에 남는다. 문득 그때의 생각이 났다. 그 커플은 헤어졌을까. 아니면 화해하고 다시 만남을 이어갔을까. 그들에게 그 장소는 고통과 슬픔으로 가득 찬 공간이었을 것이고 다시는 떠올리고 싶지 않을 상처의 말들로 새겨진 차가운 자리일 터다. 반면 우리의 대화는 앞으로의 봄날과 서로에게 변하지 않는 사랑만을 약속하는 아름다운 문장들로 그 공간을 가득 메웠다.


  친구의 전화 진동이 울렸고 나는 추억에서 현실로 급하게 빠져나왔다. 함께 저녁을 먹으러 가는 길에 모든 공간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공간은 절대 독립적이지 않으며 저마다의 다른 추억과 무수한 사연, 순간들로 겹쳐져 있는 듯했다. 만남과 이별, 승리와 패배, 탄생과 죽음, 환호와 절규, 다툼과 화해. 밀도에 밀도가 더해져 무한한 우주처럼 보였다. 한 공간 속에서도 다른 기억과 추억으로 살아가는 우리. 내가 발 딛고 서 있는 여기와 앞으로 머물게 될 다른 공간은 어떤 곳일까. 그리고 그 안에 겹쳐진 사연들은 무엇이 있을까. 자못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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