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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맑음 May 17. 2021

길고양이 치타가 임신을 했다(2)

꽃향기에 심취한 치타_모델에 재능이 있는 듯 ㅎㅎ

미성년의 딸이 임신을 한 사실을 알게 된 엄마의 기분이 이러할까?


온통 걱정과 염려뿐이다.

주변 사람들은 ‘원래 일 년 정도만 되어도 임신할 수 있어.’라고 하는데,  당연한 일인 것처럼 말하는 게 무신경하게 느껴져서 마음이 좀 불편했다.

몸집에 비해 부풀어 오른 배가 커서 땅에 닿을 것 같고, 저 작은 몸으로 어찌 출산을 잘할 수 있을지, 안 보이는 약 2주 동안 도와주지 못하니 애가 탔다. 출산하는 장소는 어디인지, 깨끗한 곳인지, 안전한 곳인지 너무 궁금했다. 찾으려 동네를 한 바퀴 돌아다녀 보아도 도통 보이지가 않았다.


더 적극적으로 대처했어야 했는데, 미리 중성화를 시키지 않은 게 후회가 되었다. 길고양이니 책임 의식을 느끼지  못했던 것도 사실이고, 또 수술을 해서 장기를 들어낸다는 게 좀 끔찍하게 생각되고 과연 고양이를 위하는 것인지 마음에 딱 동의가 되지 않고 실감이 되지 않았다.


발정기를 처음 겪어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길래 설마 임신이 될까 생각했는데......

뉴스 기사를 통해 보는 사건 사고 중에 미성년의 임신 성공률이 높은 이유가 짐작이 되기도 한다.
호기심이 가장 큰 원인이 아닐까?


그러다 승무원 시절 비행을 하면서 겼었던 충격적인 일 중의 하나가 떠올랐다.

뉴욕으로 가는 보잉 747-400 (고래 모양으로 머리 부분에 조정석과 비즈니스 석이 이층에 있다.)에서 '비즈니스 주니어'(서비스 리드를 하는 시니어와 식음료 준비를 하는 갤리의 중간 다리 역할) 업무를 맡은 비행이었다.

당시에는 입국카드를 승무원이 직접 배포하고 서류 작성을 돕다 보니, 어떤 승객이 시민권이나 영주권이 있는지 나이와 직업까지도 파악이 되었다. (미주 입국 시 입국 서류 작성 미비율이 일정 %가 넘어가면 항공사에 벌금을 매겼다.)


두 번째 식사 서비스 후이자 착륙 전이라 잦은 화장실 이용이 있는 시점. 화장실 옆에 대기하며 승객 분이 나올 때마다 청소를 하는데, 시민권자였던 셔츠에 조끼까지 차려입은 클래식 정장입은  전문 직종의 40대 남성 손님이 화장실에서 나왔다. 차례를 기다리는 손님께 양해를 구하고 들어가려는데, 세면대 주변 사방에 물이 튀어 있는 광경에 적잖이 놀랬다. 깔끔한 성격답게 착륙 전 단장을 위해 세수를 한 것 까지는 좋은데, 뒤처리에는 병인 손님이었다.


아랍인(어느 교파인지는 잊어버렸다.)들이 기도를 위해 화장실에서 목욕하느라(절차라고 한다ㅜㅜ) 바닥에 홍수를 만든 이래 두 번째로 많은 물이 사방에 튀어 있었다. 사실 기압차로 수도꼭지에서 물이 나올 때 좀 튀기는 한다. 그런데 깔끔한 용모의 이미지와 상충되니 더 당혹스러웠다고나 할까? 잔뜩 어지르고 나왔는데 바로 앞에 승무원이 청소하려고 대기하고 있는 걸 보면 좀 당혹스러울만한데, 이미 그 공간은 나와는 상관없다는 듯 당당한 표정과 걸음으로 지나가는데 마음이 좋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 착륙 후, 승객이 놓고 간 물건이 없는지 확인하는 중(이는 보안과도 연관이 있다.)에 Seat pocket 하나가 볼록 튀어나와서 꺼내 보았더니, A5 크기의 예쁜 노트가 조각조각 찢어진 채 버려져 있었다. 화장실에서 강한 인상을 남겼던 손님의 자리다.


해외 공항에서 들어올 때는 현지 청소 용역 직원이 청소를 하는데, 한국인처럼 빠르고 꼼꼼하게 보지 않는다.

청소 미흡으로 다음 편수에서 고객 불만으로 이어질  수 있는 상황이라 "아~!! 이건 뭐야! 버린 거야?  왜 여기다 버렸어~!!" 약간의 짜증 섞인 말로 동료들에게 정보 공유를 하고, 갤리(주방) 안으로 가지고 왔다. 쓰레기통이 주방에 있어서다. 밝은 데서 보니 예쁜 색 볼펜으로 아기자기하게 쓴 여학생 글씨가 눈에 들어왔다. 


'아니 이걸 왜 버렸지?' 조각을 맞추어 보니,
문체가 중학생 정도 되어 보이는 여자아이의 일기 형식 편지였다.

내용인즉슨 원조교제... 헐~!!


호텔 주차장을 배회하다가 만났고 근교와 일본 여행을 다녀왔고 하나에 500엔짜리 복숭아를 사 먹었다는 등의 내용이 있었다.

능력 있어 보이는 어른이자 자신이 필요로 하는 기본 의식주를 제공해 주는 사람에게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가출 소녀의 마음이 글에 그대로 묻어나 있었다.


마지막 항공기 점검을 하고 서둘러 비행기에서 내려야 되기 때문에, 짧은 시간 안에 많은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적힌 전화번호로 연락해 이렇게 살지 말라고 잡아주어야 하나? 그런데 내가 요구하는 삶의 기준을 이 아이가 감당할 수 있을까? 괜히 힘만 빼고 지치진 않을까?'

부정적이 생각이 들었다.

나의 힘으로는 감당할 수 있는 선을 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시에 분노와 짜증 났다.

이미 찢겨 버려진 노트를 쓰레기 통에 던져버렸다.
동시에 그 아이의 인생을 쓰레기 통에 던져 버린 것만 같아 죄책감이 들었다.


길고양이는 먹이만 주면 된다지만, 집을 뛰쳐나와 호텔을 전전긍긍하며 의식주를 해결하고 어른의 쾌락에 잠깐 이용되고 버려지는 이런 '인간 길 고양이'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10여 년이 지난 지금 생각해도 마음이 아프다. 

어쩌면 그 소녀는 나의 연민이 전혀 필요가 없는 삶을 살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사춘기를 거치는 새로운 세대는 계속되고, 뉴스를 보면 온라인 사업이 가속화되어 가출 소녀들 뿐만 아니라 어린 10대를 성으로 유혹하며 꾀는 일도 온라인으로 이루어진다는 현실이 경악스럽다.


우리는 성에 대해 제대로 인식하고, 인생을 제대로 배울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 뉴요커에게도 톨스토이 부활의 주인공처럼 회개하고 여성과 성을  다시 인식하는 계기가 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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