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맑음 May 12. 2021

길고양이 치타가 임신을 했다

길고양이 치타_3월 7일 임신 발견한 날 (산책 후 돌아오는 길에 더워서 힘들었는지 그늘 속 차가운 대리석에 몸을 깔고 누웠다.)

상가 앞 터에 자리 잡은 치타는 어렸을 때부터 상가 주인의 보살핌을 받고 있다. 숙식이 제공되니 아주 편한 자리를 차지한 셈이다. 길고양이 중에 가장 어린 고양이라 귀여워서 낙점된 것 같다.


나이는 아마도 1년 정도??


3주 전에 발정기 겪는 걸 처음으로 목격했는데, 그때 임신했나 보다. 사실 당황스러워하는 모습이 역력하길래 설마 어린것이 벌써 임신하려나 했는데, 한 번에 임신에 성공했나 보다.


몇 마리를 임신했을까? 궁금하다. 아빠 고양이는 누구인지도... 아마도 얼룩무늬가 젖소 같다고 이름 지어진 젖소인 것 같다. 아빠 고양이도 예뻐서 새끼들이 예쁠 것 같다.

젖소는 아마 태어난 지 2년 정도 된 것 같다.


길고양이 젖소_전투적인 눈빛만 봐도 수컷티가 난다

치타는 꼬리가 말려 있는데, 근친 교미를 통해 태어나서 그런 거라고 TV에서 본 적이 있다. 그렇지만 치타도 내 눈엔 너무 예쁘다. 치타는 내가 근처 학교 운동장에 산책 가면 꼭 총총총 발랄한 발걸음으로 따라온다. 어느 때는 지나가는 여학생들이 ‘쟤 좀 봐. 꼬리가 없어~!’하고 놀라면서 비하하는 듯한 느낌으로 말을 뱉고 가면 치타도 움찔하는데, “저~꼬리 있어용, 똥그라케 말려 있어서 그래용.’하고 귀여운 척을 하며 대신 대답해 준다.


다시 3주 전, 늦은 저녁밥을 챙겨주러 나갔는데, 치타가 발정하며 괴로워 하자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젖소가 달려들었다. 본능에 충실한 젖소의 모습에 깜짝 놀랐다. 항상 배가 주린 길고양이인데, 먹을 것을 내팽개치고 달려들다니...... 

작년에 상가 아저씨가 치타 TNR(길고양이 중성화 사업)을  신청했는데 예산 초과로 못 받았다고  했다. 올해 다시 신청하려고 했는데 날씨가 따뜻해지자마자 바로 이런 일이 생긴 것이다.


젖소가 달려드는 모습이 마치 적군의 허를 찌르는 공격이었다고나 할까? 치타에게 올라타서 목덜미를 물고 두 뒷다리로 역시 치타의 뒷다리를 꾹꾹 누르며 제압했다.  사람이 바로 옆에 있는데도 상관을 하지 않는 것 같았다. 교미하는 걸 눈앞에서 목격하는 줄 알고 순간 너무 당황스러웠지만 어떻게 말려할지 몰라 자리에서 일어나질 못했다. 성공하는 듯하더니 내가 정신을 차리고 손에 들고 있던 사냥 놀이용 갈대로 젖소를 때리자, 순간 틈을 타서 치타가 도망갔다. 치타를 쫓아 어둠 속으로 두 마리가 같이 사라졌다.


동물의 교미를 직접적으로 본 건 성인이 되어서 처음이다. 초등학생 때 시골 할머니 댁에서 개들이 붙어다는 걸 봤는데, 그때는 그게 교미인 줄 잘 몰랐다. 동네 아주머니가 대낮부터 그러고 돌아다닌다고 재수 없다면서 세숫대야의 물을  '촥~!!' 끼얹었는 걸 보고, 오히려 아주머니의 화에 기가 눌리고 동물을 함부로 대하는 것에 좋지 않은 느낌을 받았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집 아주머니 댁에 당시 안 좋은 사연이 있었나 생각해 본다.

우리나라는 성교육이 거의 없다고 해도 될 정도였고, 어른들 세대 역시도 교육을 받지 못해 무조건 가리고 터부시 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교육의 방향이 대놓고 피임을 강조하는 쪽으로 치우치는 건 아닌지 걱정이다.


단순히 생물학적인 접근이 아니라,

어른에게도 아이에게도 사랑은 소중하니 때를 지키고, 그  대상을 잘 선택할 수 있는 지혜를 지니라고 가르치는 목소리는 아주아주 작은 것 같다. 특히 어린아이 일 수록 분별하고 자신을 지킬 수 있는 힘을 가지도록 정확하고 분명하게 말해주는 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아무튼 본능대로 움직이는 짐승을 보고 나니 자동적으로 나의 머릿속에서는 인간과 동물이 비교되기 시작했다.


‘사람은 생각을 온전하게 하고 의지를 강하게 해서 본능을 컨트롤할 수 있게 창조되었다면, 동물은 그저 본능에 충실하도록 창조되었구나. 뇌의 작용의 힘이 다르고 뇌에 담는 생각의 힘이 다르구나. 역시 아무리 똑똑하다 한들 고양이는 고양이만큼, 강아지는 강아지만큼이었어. 본능이 이끄는 대로 살면 짐승과 다를 게 없다고, 사람들 스스로 시인하며 ‘짐승 같은 X/Y’하는구나.’하고 말이다.



길고양이가 사람은 쳐다보지 않고 먹이만 쳐다보는 것처럼, 인간도 우주와 지구와 인간을 살피시는 자는 쳐다보지 않고 자기 위안과 먹는 문제에만 빠져 살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해 본다.


어쩌면 짐승과 다르게 머리가 하늘을 향하게 창조되었음은 생각의 안테나를 뻗어 ‘창조주 여호와’를 생각하라 함이 었을지도 모른다.

보이지 않아서가 아니라 생각하지 않으면 모르는 것. 그것이 바로 차원의 세계임을 깨닫는다.



치타가 아직 어미 역할을 하기엔 어리다고 생각되어 걱정이 된다.


동네 고양이 중에 제일 어린 고양이니 말이다. 서열이 낮아서 다른 고양이들에게 영역 침범을 많이 당한다. 내가 가면 다른 고양이들을 공격했다가 다시 나의 다리 사이로 들어와 등을 대고 앉는다.  뒷배를 믿고 덤비는 것이다. 그러나 밤늦은 시간에 들리는 고양이들이 싸우는 울음소리. 아마도 치타가 공격을 당해 된통 당하는 듯한 소리다. ㅜㅜ (그러니까 덤비지 말라 그랬잖아....ㅜ)


요즘은 임신해서 걸신들린 것처럼 먹어댄다.


영양 보충하라고 캔을 할인 앱에서 구매해서 먹이고 있는데, 하루 종일 굶었다가 처음 먹는 것처럼 허겁지겁 먹는 모습이 안쓰럽다. (상가 캣 대디 분이 세 끼를 챙겨주고 있다고 했다.)


젖소가 냄새를 맡고 쫓아와 자기도 달라고 머리를 들이민다. “젖소야, 치타는 임신했잖아~!!”라고 변명을 해보지만, 젖소의 당당한 요구는 계속된다. 어느 때는 시무룩한 표정으로 꼬리를 내리고 건사료도 먹지 않고 주차된 차 밑으로 들어가 숨는다. 어떤 감정은 없되 늘 요구는 당당했던 아이가 기운이 없어 보여 마음이 안쓰럽다.


타이밍이 안 맞아 사료를 못주는 날엔 젖소가 1층에서 야옹하고 울어댄다. 다행히 건물에 불평을 하는 사람은 없지만, 조마조마하기도 하다. 저녁 시간이라 주변이 조용해서 소리가 제법 선명하게 들리기 때문이다. 어떤 날은 대범하게 건물 현관을 들어와 집 현관문 앞에서 조용히 기다리고 있다.

 ‘헉! 깜짝이야!! 너 스토커니..?’


치타와 내가 사냥 놀이하며 놀고 있으면 엉덩이를 우리 쪽으로 하고 경계태세를 하며 거리를 두고 얌전히 앉아 있는다. 사냥놀이에는 흥미가 없는 듯하여 치타만 놀아줬는데, 언젠가 한 번은 엄청 질투를 하며 치타를 갑자기 공격해서 당황스러웠다. “아니 젖소야, 너는 사냥놀이도 싫어하고 내가 가까이 가는 것도 싫어하잖아!....”

내가 관찰한 바로는 서로의 길고양이 공동체 생활에서 역할에 불균형이 오면 바로 응징에 들어가는 것 같다.
본인은 다른 길고양이 대적하느라 힘든데, 치타가 전혀 도와주지 않고, 인간과 놀고 있으니 응징한 것 같았다.


그 뒤로는 젖소의 애정공세가 더 적극적이 되었다. 궁둥이를 들이밀고, 내 다리를 뱅뱅 돌며 몸을 비벼댄다.

아마도 길고양이로 오래 살아서 표현하지 못했던 감정이 이 날 폭발한 것 같다.
치타의 삶이 더 좋아 보이긴 했나 보다.


동물도 사랑받고 싶어 하는 본능이 있다는 걸 알게 되어 다시 한번 모든 창조물에 사랑이 들어있음에 감탄을 했던 날이기도 했었다.

인간도 창조주를 사랑하고 사랑받고 싶은 마음은 본능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이전 01화 길고양이 '치타' 예찬론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