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을 소모하는 일

축알못의 축구팬 권하기(3)

by 도리

2019년 1월, 우리나라가 아시안컵 8강전에서 탈락했다. 지난 대회 기록이 8강이었던 우리의 목표는 우승이었다. 우승을 꿈꾸던 팀에게 8강 탈락이란 너무 가혹한 것이었다. 우리에게 8강은 당연할 뿐이었다.

출처: 채널A

솔직히, 올라갈 운이 아니었다 싶다. 운 좋으면 하나라도 들어갈 것들이 정말 하나도 안 들어갔다. 그렇게 잘 찬 프리킥도 골문 옆으로 스치고 한 골 넣은 것도 간발의 차로 오프사이드에 걸렸다. 아쉽고 답답해 가슴이 턱턱 막혔다.


나는 오히려 베트남 축구를 재밌게 봤다. 우리나라 축구는 조마조마해서 못 보겠을 정도였다. 일단 남의 나라인 데다가, 베트남에게는 8강이 '진출'이지 '당연'이 아니었으니까. 우리나라라면 8강에서 떨어진다고는 상상도 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베트남처럼 딱 제3자 입장에서 잘 되길 응원하는 그 정도의 거리가 재미있지, 꼭 이겨야 하는데 지고 있는 '우리팀'을 직면하는 건 너무 고통스럽다.


우리의 8강전은 카타르를 상대로 고전했다. 안 그래도 계속 불안했는데 급기야 카타르가 골을 넣었다. 그 다음부터는 충격적인 결말을 대면할까봐 무서워서 눈뜨고 보지를 못했다. '못 이기겠다.' 하면서 애써 마음을 눌러 담았다. 상처받고 싶지 않아. 미리 한 발 떨어져 '딱히 관심 없는 척'하면서 흘끔흘끔 시청했다.

최선을 다해 감정이입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했건만 패배로 끝나니까 가슴이 못내 먹먹해졌다. 그리고 며칠을 간다. 아아, 독한 토너먼트의 세계여.

출처: Pixabay

축구팬이 된다는 건 기꺼이 경기의 결과에 따라 감정을 감수하겠다는 뜻이다. 이건 라이트한 축구팬이라도 피해갈 수 없다. 매번 이길 수는 없으니까. 올해 1위라고 내년 1위를 장담하지는 못한다. 필연적으로 우리는 상처를 받게 된다. 각오를 단단히 해야 한다.

용기가 필요하다. 마음이 찢어질 걸 알면서도 보는 용기!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하고 싶다.


감정 소모에는 시간의 낭비도 세트로 따라붙는다. 90분으로 끝나는 게 아니다. 패배하면 최소 며칠은 '그 골이 들어갔어야 해.' 하고 자책하며 시간을 보내야 하고, 내 의견이 전혀 반영되지 않을 것임을 알면서도 감독의 전술과 선수의 기량에 대해 선 평론을 해대야 한다. '계속 이런 식이라면 더 이상 응원 안 할 거야.'라는, 구단도 알고 나도 아는 거짓 협박을 하느라 시간을 낭비하는 나를 발견한다. 이 얼마나 인생에 도움 안 되고 쓸데없는 일인가. 쓸데없는 일에 돈 투자해, 시간 투자해.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재차 힘주어 말하고 싶다.


대신에, 그 투자에 대한 수익은 100%다. 패배가 있어야 승리가 기쁘기 때문이다. 내가 패배를 감당할 용기를 낸다면 승리는 분명히 그 이상의 기쁨을 제공해주더라는 것이다.

안 좋을 때도 있을 때 행복이 행복으로 다가온다. 좋기만 한 것은 '당연한 것'이지 '행복한 것'이 아니니까.

축구의 미학(프리츠 지몬 외, 초록물고기)

<축구의 미학>이라는 에서 K.슈프렝거가 그랬다. 통계적으로 승률이 60%일 때 관중이 경기장을 찾아온다고. 오히려 그 이상이면 그냥 집에 있는다고 한다. 왜 그러겠는가? 그만큼 재미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40%의 패배의 확률을 감당하고 경기를 볼 때 60%의 승리를 행복으로 누리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모든 구단은 최소 그 수준의 승률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한다. 팬들에게 '행복'을 주어야 보러 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승률이 낮은 팀은 2부리그로 강등되는 '자연도태'의 굴욕을 겪게 된다. 2부리그에서 승률을 극대치로 끌어올려야 1부리그로 라올 수 있다.


특히 축구는 매 경기 치열하게해야 한다. 축구에서 절대 우위란 없기 때문이다. 90분 동안의 수많은 볼터치에서 어떤 변수가 일어날지 모른다. 약 팀이 기적의 승리를 이뤄내는 도 심심찮게 일어난다. 우리도 90분의 정규시간이 다 끝난 후 추가시간 동안 2골을 넣어 독일을 이겼지 않은가.


감정과 시간은 낭비되어야 한다. 그런 게 삶을 더 풍요롭게 만든다.

하지만 인생을 낭비하는 것은 너무 위험하다. 생과 사를 오가며 행복할 필요는 없으니까. 행복은 취미에서 찾자. 결국은 오늘도 축구 보자는 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