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 나는 축구장을 혼자 자주 간다고 했었다. 저번 주에는 웬일로 남자친구가 통화하다가 슈퍼매치 얘기를 꺼냈다.
“주말에, 슈퍼매치던데?”
“오! 갈 거야?”
“그래, 가자. 별 일 없으면.”
※남자친구 : 해축덕후로 국축은 순전히 나 때문에 보는 인물
신난 나는 남친의 마음이 바뀌기 전에 예매를 해버리려고 인터파크에 들어갔다. 당연히 내가 좋아하는 W석의 벤치석을 선택, 그런데 결제하려고 보니 오만원을 훌쩍 넘는 돈이 나오는 게 아닌가. 벤치석은 원래 이만팔천원이니까 두 장이면 그 돈이 맞긴 맞았다.
‘혼자 갈 때는 몰랐는데 지정석이 꽤 비싸구나.’ 하며 자유석으로 눈을 돌려보았다. W석 자유석이 1,200석정도가 남아있었다. 만팔천원. 두 장이면 삼만육천원, 이 정도면 괜찮은 것 같네.
사실 결제하면서도 조금 불안했다. 미리 좌석을 정하고만 가봤지 자유석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자리가 여유가 있으니까 크게 어렵진 않겠지. 원하는 데를 골라서 앉을 수 있으니까 더 좋을 수도 있을 거라고 낙관했다.
경기는 일요일 2시였다. 여유있게 간답시고 12시에 만나서 버스를 탔다. 1시 10분쯤 아주대에서 잠깐 내렸다. 치킨을 주문하고 기다렸는데 너무 오래 걸렸다. 결국 1시 50분쯤이 되어서야 경기장에 내렸고, 또 경기장 정반대쪽으로 걸어가서 종이티켓으로 교환하고, 다시 반대쪽으로 걸어와서 1A 게이트로 입장했다. 간단한 소지품 검사까지 마치고 경기장에 들어선 게 58분.
왼쪽사진: W석과 N석 / 오른쪽 사진: E석이 보인다.
와, 깜짝 놀랐다. 관중석 전체가 꽉 차 있는 게 아닌가. 관중석이 비어 보이지 않게 2층에 쳐 놓았던 통천도 다 걷히고 사람들로 가득했다. 내가 예매한 W석 자유석도 마찬가지였다. 예매할 때 분명히 1,200석이나 여유가 있다고 했는데. 바글바글 난리도 아니었다. 여러 명의 무릎에 민폐를 끼치며 한가운데로 쭉쭉 들어가야 그나마 자리가 있는 걸 보자 암담해졌다. ‘진짜 서서 봐야 되나.’ 생각하고 있는데 맨 뒤에 앉은 두 사람이 일어나 나가는 게 눈에 들어왔다.
“어! 여기다, 여기!”
원정석인 S석. 나는 W석과 S석이 만나는 모서리 부분에 앉게 되었다.
바깥쪽 자리를 구했다는 횡재에 정신없이 허둥지둥 앉았다.
그런데! 서서히 정신을 차려보니, 이 곳은 적진의 바로 옆이 아닌가!
원정석에 서울 팬들이 한가득 차서는 응원전을 펼치고 있었다. 당황했지만 크게 상관은 없을 것 같았다. 그냥 이런 자리는 처음이라며 신기해하기만 했다. 경기가 시작됐고 우린 순조롭게 치킨을 먹으며 경기를 관람했다.
이렇게 꼭지점에서 경기를 본 건 처음이었다. 선수들이 반대쪽 꼭지점에 몰려 있으면 무슨 상황인지 잘 파악이 안 됐다. 전반 16분, 무슨 상황인지는 모르겠는데 서울에 페널티킥이 주어졌다. 서울 팬들이 옆에서 큰 소리로 환호했다. 노동건이 골대 앞에서 준비하고, 박주영이 페널티킥을 찼다. 골이 들어갔다. 서울 팬들이 일어나서 깃발을 흔들고 춤을 추고 노래를부르고 난리가 났다! 하얀색 펜스 하나를 사이에 두고 사람들의 표정은 극명히 달랐다.
하.. 어쩌자고 여기를 앉았을까 하는 생각이 엄습했다. 진짜 얄미운 게 아닌가! 물론그들은 나를 신경도 안 쓰겠지만! 내가 거기 앉아 놓고 짜증내는 것도 웃기지만! 심사가 얼마나 꼬이던지. 옆에서 남친은 왜 유럽에서 축구보다가 싸우는지 알겠다고 했다. 나는 크게 네 번 고개를 끄덕였다.
설상가상 후반에 한 골을 또 먹혔다. ‘또 지나보다.’라는 우울한 예측이 우리를 감쌌지만 펜스 옆 세상은 완전히 반대였다. 서울 팬들의 분위기는 그렇게 경쾌할 수가 없었다. 우리의 세트피스 상황에는 부부젤라를 불며 ‘우~’ 하는 야유를 보냈다. 내 마음과 같지 않은 사람들 옆에서 축구를 보니까 자꾸 불쑥불쑥 울컥함이 올라왔다. 특히 우리 바로 옆쪽에 있던 한 서울팬이 무슨 군가 부르듯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르며 율동하는 걸 보고 진짜 약올라 죽는 줄 알았다!
패색 짙던 수원에도 다행히 한 골이 선사되었다. 염기훈이 프리킥 골을 넣은 것. 역시 염기훈! 나와 남친은 이 때다 싶어 온갖 함성을 질러댔다. 이번엔 서울 팬들이 정지화면처럼 가만히 있었다. 더 이상의 골은 터지지 않고 1:2로 경기가 끝났지만, 그 골마저 없었다면 너무 우울할 뻔했다.
다녀와서 블로그에 직관후기를 썼더니 이웃님이 슈퍼매치는 원래 사람이 많아서 세 시간 전부터 게이트를 오픈한다고 말해주었다. 그래도 줄이 길다고. 그런데 나는 용감하게도 경기시간에 딱 맞춰 갔으니 자리 선택권이 없을 만도 했다.
내가 예매한 자리는 W석 자유석이었는데, W7, W8, W9 블럭 중 아무데나 앉을 수 있는 거였다. 내가 원래 가는 벤치석은 W6 블럭. 'W6'과 'W7, W8, W9'의 차이를 내가 너무 간과했다. 크흑..
내가 W석을 선호하는 이유는 N석(수원팬 서포터즈석)에서 열정넘치게 응원할 체력이 안 돼서, 그냥 평화롭게 보고 싶어서였다. 그런데 W석 구석에 앉게 되어 오히려 기력을 더 소진하고 왔다.
왠지 다음 번에는 N석도 가 볼만 하겠다는 용기가 생긴다. 적진의 데시벨을 듣느니 우리팀의 데시벨을 듣는 게 훨씬 낫겠지. 아무튼 다음엔 W9엔 절대 안 앉을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