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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크 Sep 19. 2024

26화 능력에 비례하는 인간관계랄까

공부에 매진하던 학창 시절을 제외하고는 늘 주위에 사람이 있는 편이었다.


대학교 시절에는 궁금하다는 이유로 심리부터 철학까지 , 그리고 정답을 내는 방식보다는 토의하고 협동하는 것을 좋아해서 팀플이 있는 강의만 듣다 보니 교내 여러 방면에 사람이 있었고 더욱이 방송국 활동을 하며 이 범위는 더욱 넓어졌다.


회사에 들어와서 이 관계들은 조금 정리가 되었지만 또 회사에서 만나는 사람들, 회사 업무로 인해 만나는 외부 사람들 그리고 스스로 시작한 회사 외 활동이나 스포츠 등으로 나의 일정과 관계를 물 샐 틈 없이 촘촘했다. 


회사에서 나름 인정받는 인재 그리고 이직을 통한 끝없는 상승은 이런 관계에 더욱 불을 지폈다.


"실장님. 잘 지내셨어요? 꼭 한번 뵙고 싶은데 시간 좀 내주세요"

"선배님. 이직하신 곳에서 행복하신가요. 저도 좀 끌어주세요"

"안녕하세요? 소개받고 제안드리고 싶은 게 있는데 회의 한번 가능하실까요?"

"언제 꼭 저희 회사로 오셔야죠. 자리 마련해두고 있겠습니다"

"이번 저희 행사에 초청드리고 싶은데 시간 되실까요?"


전 직장 동료들의 넋두리도 반가웠고 알고 지내던 대표들의 업무 제안이나 행사 초청도 너무 감사했다. 

그렇게 연락을 하며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내 인생의 큰 기쁨이기도 했다.


하지만 내가 추락을 거듭할수록 이런 관계를 쉽게 정리가 되었다.

나를 꼭 보고 싶다던 사람들은 바빠졌고 끌어달라던 후배들은 본업에 다시 몰두했다.

별 볼 일 없으니 업무 제안이 들어올 일도 만무했다.

자리를 비워둔다던 회사 관계자는 어색한 웃음소리만 내었다.


신기하고도 허탈했다. 업무적으로 그렇게 주위에 바글바글하던 사람들이 한순간에 모두 사라지다니.


첫 회사 때부터 내가 롤모델이라며 따라다니던 후배가 있었다.

이리저리 여러 조직을 떠다니며 본인 노력에 비해 회사가 인정을 안 해준다며 매번 분개하던 후배였다.

그렇게 나서지 않고 티를 내지 않아도 인정받는 내가 부러웠던지 그 후배는 늘 나에게 고충을 털어놓곤 했다.

나는 내가 듣는 그 후배에 대한 안 좋은 평판을 애써 무시하고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조언을 해주며 잘되기를 바랐다.


내가 이직을 하자 그 후배는 더 자주 연락을 하기 시작했다.


"선배님 회사가 너무 힘드네요. 이번에 또 조직 없어지고 저는 붕 떠요"

"선배님 저 아예 다른 업무를 하게 되었어요. 조직에서 버림받은 느낌이에요"


이런 일이 몇 번 반복되고 후배는 마침내 본심을 털어놓았다.


"회사에서 제 미래가 없어 보입니다. 저도 이직하고 싶어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나의 단점 중의 하나인 오지랖이 발동되었다.


"우리 회사에 내가 맡은 조직 팀장이 퇴사를 했는데 생각 있으면 말해"


후배는 정말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이직을 결정했다. 

나는 적어도 후배 한 명의 길을 열어준 것 같아 스스로 만족했다.


또 다른 기회로 회사를 떠난 나에게 후배는 또 집요하게 연락을 해왔다.


"선배님 가시고 새로 온 조직장이 벌리는 일이 너무 많네요. 매일 야근 중입니다. 인신공격도 받고 있고요"


그리고 얼마 있지 않아 후배는 우울한 목소리로 비보를 전했다.

내가 그 회사를 떠나고 얼마 있지 않아 후배의 다급한 전화가 걸려왔다.


"선배님.. 저 내일 안에 짐 싸라네요.. 몇 달 치 월급 줄 테니까 나가라고.. "


회사의 급작스런 통보에 갈 곳이 없어 사우나에 앉아있다는 후배의 말에 죄책감이 들었다. 후배가 나 때문에 불행해진 것 같았다.


어느 날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안녕하세요. 00 서치펌입니다. 혹시 이직 생각 있으신가요? 탄탄한 회사의 팀장 포지션입니다. 연차가 조금 높기는 하신데 회사에서 이력을 굉장히 마음에 들어 해서요"


번뜩 후배가 떠올랐다.


"제가 지금 이직하기는 좀 그래서.. 혹시 다른 사람을 추천해도 되는 걸까요?"

"네? 특이한 경우이기는 한데.. 네 추천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나는 후배의 이력서를 보냈다. 


"아.. 이 분 플랫폼에 구직 중으로 이력서를 올려두셔서 보긴 봤는데.. 연차에 비해 업무 성취도를 너무 과도하게 써두셨고.. 첫 회사 레퍼런스 체크를 좀 해봤는데 부정적인 평이 많더라고요.. 일단 고민 좀 해보겠습니다"

"그래도 괜찮은 친구입니다. 면접 기회는 꼭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잘 좀 부탁드립니다"


결국 후배는 면접을 보았고 다행히 합격을 했다.

오퍼레터를 받은 날 후배는 거의 우는 목소리로 고맙다며 전화를 했다.

나 역시 다행이라는 말과 함께 내가 할 도리는 이제 다했다며 앞으로 잘 되길 바란다는 덕담을 했다.


그 이후 나는 앞선 글들에서 밝혔듯 추락을 거듭했다.


어느 날 전 회사 동료의 전화를 받았다.


"00 이가 너 이직한 회사 따라간 친구인가?"

"응. 왜?"

"어제 우연히 술자리 하는데 너 믿고 이직했다가 인생을 망칠뻔했다, 다른 회사에서 만났더니 무능한 사람이었다 별소리를 다하더라고. 한 소리 해야 되는 거 아냐?"


충격이나 배신감보다는 현재의 상황과 맞물려 헛웃음이 나왔다. 

내가 지금도 한자리 차지하고 있었으면 나올 리 없는 말이었다.


가만히 있어도 나를 찾아오고 미소 짓던 사람들. 

나는 그게 내 자리로부터 나오는 기회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나 스스로의 힘이라고 착각했다. 


손에 쥔 것이 없어지자 그것만 바라보던 사람들이 사라졌다.


하늘 높이 날던 날개가 꺾이자 발버둥 치는 것 오직 나 혼자였다.


몰락해 가는 가짜 슈퍼맨 곁에 남아있을 사람은 그 누구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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