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개의 두바이 쫀득 쿠키. 우리는 막차를 탄걸까

by 지크

묵직한 침묵이 내려앉은 사무실.

썩 좋지 못한 분위기 속에 우리는 다시 작업대 앞에 섰다.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는 절박함이 우리를 한 곳으로 몰아넣었다.


"일단 해보자. 유튜브에 널린 게 레시피니까"


누군가 내뱉은 확신 없는 이 한마디가 시작이었다.


머릿속 시뮬레이션은 완벽했다. 버터에 녹진하게 녹인 마시멜로에 코코아 파우더를 섞어 쫀득한 '겉옷'을 준비한다. 동시에 '속재료'의 핵심인 카다이프 면을 바삭하게 볶아, 그 비싸다는 '피스타치오 스프레드'와 버무린다. 이 속을 둥그렇게 뭉쳐 마시멜로로 감싸고, 마지막으로 초코 파우더에 굴리면 끝.


글로 쓰면 참 쉬운 이 과정의 목표치를 잡기 위해 우리는 근처에서 구할 수 있는 경쟁사들의 '두바이 쫀득 쿠키'를 사 왔다.

한 입 베어 문 순간, 셋 다 약속이나 한 듯 미간을 찌푸렸다. 맛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인정하기 싫지만, 너무 맛있었기 때문이다.


"진짜 안에 카다이프랑 피스타치오가 킥이기는 하다"


"엄연히 따지면 쿠키는 아닌데, 이 쫀득하고 바삭한 조합이 실패할 리가 없지"


사악한 단맛과 다채로운 식감의 조화. 두바이 쫀득 쿠키에 대한 평가는 만장일치였다.

동시에 우리의 어깨는 더 무거워졌다. 최소한 이들만큼은 맛을 내야 한다는 가혹한 기준이 생겨버렸으니까.


기세 좋게 첫 테스트 제품 제작에 돌입했다.

여러 시행착오 끝에 그럴듯한 모양의 결과물이 나왔다. 우리는 떨리는 손으로 조심스레 쿠키를 3등분 했다.


"......"


입에 넣는 순간, 셋 다 표정이 일그러졌다. 아까 맛봤던 경쟁사 제품과는 차원이 다른 거북한 맛이었다.


"야, 이거 맛이 왜 이래? 겉은 왜 이렇게 축축해?"


"안쪽은 너무 눅눅하고... 그냥 기름 덩어리인데? 느끼해서 못 먹겠어"


작업하기 편하자고 손과 작업대에 발랐던 식용유가 화근이었다. 게다가 마시멜로를 부드럽게 하겠다고 넣은 버터의 양도 과했다. 천상의 맛은 온데간데없고, 기름 범벅의 괴물만이 남아 있었다.


우리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


"식용유 줄이자. 우리 편하자고 요령 피우면 안 될 것 같아. 마시멜로 녹일 때 버터도 확 줄이고"


그렇게 밤을 새워가며 조금씩 맛의 영점을 잡아갔다.

마침내 우리만의 레시피가 완성되었을 때, 우리는 한 가지 결단을 내렸다.


"우린 후발주자잖아. 무조건 재료를 아낌없이 넣자. 특히 피스타치오는 경쟁사보다 두 배는 때려 넣어. 그래야 살아남아"


만족할만한 맛이 나오자마자, 우리는 빠르게 역할을 나눠 '생산 모드'에 돌입했다.

하지만 이 작업은 반나절이 지나기도 전에 작업실을 곡소리로 가득 채웠다.


'쫀득함'을 유지하기 위해 쉴 새 없이 마시멜로를 저어야 하는 작업은 고역이었다.

굳어버리는 성질머리 고약한 재료와 씨름하느라 전완근은 비명을 질렀다.


"와, 이거 계속 섞으니까 팔이 감각이 없는데...?"


섬세함이 필요한 포장 작업도 만만치 않았다.


"요 작은 거 계속 쳐다보면서 감싸니까 눈이 빠질 것 같아"


"허리 좀 펴고 싶다. 포장 좀 더 편하게 할 방법 없을까? 허리가 너무 아파"


뭐든 쉬운 길은 없다지만, 스스로 의구심을 품고 시작한 일이니 몸이 고된 만큼 마음도 지쳐갔다.

이 끈적이는 노동의 끝에 정말 달콤한 보상이 있기는 한 걸까.


그렇게 3일간의 사투 끝에 500개의 제품이 탄생했다.

우리는 이 녀석들을 차에 싣고 첫 팝업 스토어가 열릴 동탄 백화점으로 향했다.


고속도로 위, 차 안의 공기는 작업실보다 더 무거웠다.

운전대를 잡고 있던 동료가 어렵게 입을 열었다.


"사실 요즘 밤새 두바이 쿠키 자료 찾아보고 있는데..."


"...... 어, 그런데?"


"파는 데가 많기는 하더라. 프랜차이즈부터 개인 카페까지 다 뛰어들었어. 온라인 판매도 엄청나고"


그의 말에 나는 애써 외면하고 있던 불안감을 마주했다.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 대답은 내 가장 깊은 공포였다.


"또 컵빙수 꼴 날까 봐 그게 제일 무섭다. 유행 다 끝난 판에 들어가서 삽질하는 걸까 봐"


뒷좌석 동료는 아무 말 없이 창밖 먼 산만 바라볼 뿐이었다.


화려한 대박을 꿈꾸는 게 아니었다. 그저 이번 달 월세 걱정 없이, 다음 달 재료비 걱정 없이 살고 싶은 마음뿐. 남들처럼 평범하게 먹고사는 것이, 우리에겐 왜 이리도 버거운 욕심인 걸까.


500개의 쿠키가 담긴 트렁크가 오늘따라 유난히 무겁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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