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부터인가 핸드폰 화면에 뜨는 이름들이 짧게는 3년, 길게는 10년 가까이 내 기억의 저장소 깊숙한 곳에 잠들어 있던 이들인 경우가 많이 생겼다.
"너 두쫀쿠 만든다며? 그거 요즘 줄 서도 못 구한다는데 나도 좀 맛볼 수 있을까? 돈은 낼게!"
반가움보다 먼저 든 생각은 소문이 참 무섭도록 빠르다는 경탄이었다. 좁은 주방에서 카다이프를 볶고 피스타치오 스프레드를 배합하며 만든 이 '두바이 쫀득 쿠키', 일명 두쫀쿠가 끊어졌던 인연의 실타래를 다시 잇는 매개체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가장 먼저 연락이 온 건 대학 시절 학식을 같이 먹던 짝꿍이었다. 인스타그램 단면 샷을 보고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며, 돈은 얼마든지 낼 테니 제발 몇개만 사수해달라는 그의 말에 웃음이 터졌다.
"에지간히 건강 챙기는 척 하더니 결국 악마의 유혹에 넘어갔구나"
"돈 앞에 장사 없지 안그래?"
농담 섞인 안부 속에서 우리는 10년 전 강의실의 공기를 다시 공유했다. 두쫀쿠를 매개로 우리는 그 긴 세월의 공백을 단숨에 뛰어넘었다.
소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두쫀쿠가 잘 팔린다는 이야기가 돌자, 이번엔 삶의 변곡점에 서 있는 지인들이 조심스레 노크를 해왔다. 첫 직장에서 같이 야근하며 고생했던 동기와 후배들은 퇴사 고민을 털어놓으며 내게 이야기를 듣고 싶다고 말했다. 단순히 우리의 성공이 부러워서가 아니라, 자기만의 길을 개척해나가기 앞서 어떤 가능성을 보고 싶어 하는 간절함이 느껴졌다.
"어떻게 시작하게 된거야? 운영은 어떻게 해?"
"이미 인기 있는거에 편승한거지 뭐. 일단 지금은 주로 파트타이머들로 운영하고 있어"
카페 구석 자리에서 만난 동기는 두쫀쿠를 한 입 베어 물더니 식감의 디테일에 감탄하며, 우리가 이 결과물을 만들기 위해 보냈을 고독한 시간들을 위로해 주었다. 사업의 비결을 묻던 대화는 어느새 서로의 불안과 꿈을 나누는 깊은 고백으로 이어졌고, 두쫀쿠는 서먹함을 없애주는 훌륭한 안주가 되어주었다.
가장 놀라운 변화는 비즈니스라는 이름으로 다가온 새로운 확장들이었다. 각자의 분야에서 전문가가 된 옛 인연들이 이제는 파트너로서 손을 내밀기 시작한 것이다.
작은 모임 플랫폼을 운영하는 친구가 늦은 밤 연락을 해왔다.
"혹시 우리 웰컴 디저트로 너희 두쫀쿠를 좀 쓰고 싶은데 괜찮을까?"
"좋지. 혹시 브랜딩 하고 싶으면 스티커 없는 버전으로 보내줄테니까 너희 브랜드 스티커 붙여도 괜찮아"
"와 정말 고맙다"
디자인을 전공한 뒤 연락이 뜸했던 후배는 브랜드 패키지를 제안하며 포트폴리오를 보내왔다. 마케팅 회사에 다니는 지인은 숏폼 영상 기획안을 짜보겠다며 나보다 더 열을 올렸다. 예전엔 그저 술 한잔 기울이던 사이였던 우리가 이제는 서로의 커리어를 존중하며 미래를 논하는 사이가 되었다는 사실이 묘하게 뿌듯하고 든든했다.
심지어는 작은 오해로 헤어진 옛 연인의 메시지도 도착했다. 우연히 백화점에 갔다가 장사진을 친 매장을 호기심 있게 서성이다 나를 발견했다는 것이었다.
"겨우 몇개 사는데 성공했어. 여전히 열심히 살고 있네"
두쫀쿠가 아니었다면 우리는 영영 서로의 이름을 지우고 살았을지도 모른다. 두쫀쿠는 사과를 전하기에 세상에서 가장 달콤하고 부드러운 핑계가 되어주었다.
매일 밤 주문서를 정리하며 늘어가는 통장 잔고를 확인하는 일은 분명 보람찬 일이다. 하지만 두쫀쿠를 시작하고 나서 내가 얻은 가장 큰 수익은 숫자로 치환되지 않는 소중한 마음들이었다. 끊겼던 연락이 닿고, 어색했던 안부가 진심 어린 응원이 되며, 화해의 계기가 마련되고, 혼자 걷던 길에 든든한 동료가 생기는 경험들.
이 작고 달콤한 디저트가 아니었다면 내가 어떻게 그 많은 얼굴을 다시 마주하며 웃을 수 있었을까. 돈은 쓰면 사라지지만, 다시 연결된 사람의 온기는 내 마음을 오래도록 따뜻하게 데워준다.